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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평점 :
핸드폰 화면에 "다산북스 열독 응원 프로젝트" 택배가 인수되었다는 메시지를 담은 팝업창이 떴다. 택배가 온다는 메시지는 언제나 선물을 받는 것과 같은 기쁨을 안겨주지만, 이번 메시지는 기쁨과 함께 설레이는 두근거림도 안겨주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3주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벤트로 이미 첫째 주의 소설책을 마무리했고, 둘째 주의 소설책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둘째 주의 소설책이 유난히도 기다려지는 이유는 둘째 주의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만'이였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택배 어플에 들어가서 내 소설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몇 시에 도착할 거라는 배송 메시지를 받고, 택배 배송을 완료했다는 메시지를 받고서, 기대에 부풀어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현관문을 열고 바닥에 놓여있던 택배 포장 비닐을 손으로 집어 올렸을 때, 포장 속에 들어있는 책이 굉장히 얇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최근 '베어 타운'과 '우리와 당신들'의 엄청난 벽돌 책을 감당하고 난후라, 이번 책이 두껍더라도 즐겁게 읽어보자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렸었다. 어쩌면 벽돌 책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책이 얇은데 양장본으로 두껍게 처리가 되어있으며, 이 얇은 책 속에 책갈피 끈도 들어있다. 얇지만 쉽게 읽을 수는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무심코 긴장하게 되었는데, 가만 보니 제목이 '일생일대의 거래'로 제목이 심상치가 않다.
가장 놀라운 건 표지에 있는 처음 보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얼굴이었는데, 이 책이 그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표지에 자신의 얼굴을 실었을까 생각하니, 이 얇은 책은 최대한 집중해서 읽을 수 있게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조용하고도 고요하게 읽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책을 처음 보았던 건 '오베라는 남자'였다. 도서관에 꽂혀있던 수많은 책들 가운데 파스텔톤의 부드럽고 따뜻한 표지가 눈에 들어왔었다. 책을 빌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오베라는 캐릭터 설정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고집불통 꼰대 할아버지.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와서 그대로 책을 덮어 버리곤 반납해버렸다. 그렇게 '오베라는 남자'는 나에게 거부감만을 안겨준 채로 다시 빌리지 않은 책 목록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에 우연찮게 '브릿마리 여기 있다' 책을 읽게 되고 할머니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는 깊게 빠지게 되었다. 그 후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책도 찾아서 읽어보았고,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책도 감명 깊게 잘 읽은 책으로 내 속에 남아있게 되었다. 그 후 프레드릭 배크만이라는 작가의 팬이 되고 그의 신간이 나오는 족족 읽어보고 깊이 빠지게 되었다.
그가 소설을 쓰는 방식 또한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나 이해하기 어려운 공동체 심리나 소외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오베라는 남자는 왜 꼰대처럼 늙게 되었는가, 같은 건물에 살지만 서로 남남인 것 같은 개개인의 사람들은 어떤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는가, 브릿 마리는 왜 자신의 집을 떠나는가, 노인의 치매를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는가.
그리고 다 같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하는가.
이는 마치 인자한 아버지가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한 어린아이에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풀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깊게 설명해주기 위해서 소설로 풀어서 써준 내용 같다.
그 부분이 이번 책에서도 표현되어 있다
" 나는 자식 농사에 실패했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쳐주어야 하는데,
너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다."
그의 책은 모두 아들에게 쓰는 선물 같았다. 모든 책이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 애정이 듬뿍 담긴 메시지였다.
이번 책도 물론 그랬다.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만도, 소설 속의 주인공인 아빠도 아들에게 사랑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쩐지 책을 펼치는데 설레고 두근두근 대는 감정이 들었다.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이리라.
책 속의 내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한 통의 편지이다.
초반 부분은 추억을 회상하며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 그리운 마음이 드는데, 중반으로 넘어가게 되고 스토리가 파악이 되면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된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 결국은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맺히고 다시 책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서 한 번 더 읽게 된다.
그리곤 생각해본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크리스마스 직전의 어느 날 밤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은 그가 팔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조금 지쳐있었다고 표현하는 그.
그는 그 고요한 밤에 잠든 가족들을 쳐다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행복한 꿈을 꾸며 잠들어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이번 책이 유난히도 내 마음을 흔들고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이유는 나도 작가와 같은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서다.
아이의 탄생을 바라보며, 성장을 바라보며, 내가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나와는 다른 아이의 모습들과, 내가 기대하고 바라게 되고, 그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지 나를 위한 일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삶의 모든 순간과 살아가는 우리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어쩐지 두근대는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삶을 제대로 생각해보고 싶거든 죽음을 생각해 보라는 말이 있다. 죽음이란 모든 것과 헤어지는 것. 아이와의 헤어짐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아픈데, 나는 내 일생을 건 제안을 할 수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