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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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은 예전에 독서모임 활동을 하면서 한번 읽었었던 책이었다. 그 당시에 자유론을 읽었을 때, 책 속에 나오는 내용들이 잘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을 펼치는듯해서, 평소에도 상식처럼 잘 알고 있었어야 되었던 거 아니었냐고 스스로를 다그쳤었다. 어쩐지 이 상식 같은 이 이야기들을 실천하고 있지 않고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서, 깨달음을 갈구하듯 '자유론'을 천천히 읽어보았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기본 상식을 채운다는 느낌과 아직도 내 시야는 편협하고 좁으며,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끼며 마음속에 필독서로 올려두었던 책이었다.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 중에 한 권인 '자유론'을 [현대 지성 클래식] 시리즈 중에 20번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도덕경'을 시작으로 만나게 된 '현대 지성 클래식'시리즈는 '믿을 수 있는 고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널리 읽혀 내려오는 고전 책들을 전집으로 발행해 내고 있다. 최근에는 '걸리버 이야기'도 읽으며 인간 세상에 대한 풍자를 마음껏 맛보았는데, 이렇게 '자유론'까지 만나니 현대 지성 클래식이 대단히 고맙고 감사하다. 시리즈 책들이 전체가 숲의 초록을 띄고 있어서 표지들이 단정하고 파릇파릇하며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을듯해서, 표지부터 정이 샘솟기에 책꽂이에 가장 좋은 자리에 현대 지성 시리즈들을 나란히 줄 세워 꽂아두었다.

'자유론'은 유명하고 인기있는 고전중에 하나이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해낸 책이다. 같은 자유론일지라도 출판사에 따라서 책이 나오는 형태가 틀린데, 표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에 그냥 스쳐지나가더라도 번역은 그냥 스쳐갈수가 없다. 자유론을 번역해놓은 책들 전부가 말을 길게 하고, 말을 꼬아놓은듯 문장구성이 이상한데, 그건 존 스튜어트 밀 본인이 자유론을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게 적어놨기에 번역해놓은 글이 전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끼는듯하다.

이번 자유론은 현대지성 책을 받고 종이책을 읽음과 동시에 외출했을때 밖에서도 이어서 읽고 싶어서 전자책을 찾아서 읽었는데, 타 출판사의 타 번역자의 글이 더 복잡하게 느껴지는듯해서 그냥 현대지성 자유론을 들고다니면서 읽었다.

보통 책을 읽을 때에는 책 앞부분에 간단하게 들어가는 말을 넣고 본문이 나오고, 본문이 끝나면 책의 뒷부분에 번역자의 글과 같은 해제와 원작자의 생애와 같은 연보를 넣는데, 현대 지성의 자유론은 해제부터 시작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연보가 나오고, 이런 내용들이 책의 한부분을 많이 차지하고 나서 제대로 된 본문이 나온다.

순서대로 읽지 않기에 책을 펼쳐서 바로 본문인 자유론의 서론부터 읽기시작했는데, 애초에 책의 구성이 본문이 앞에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온 인류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강제력을 동원하여 그 한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은 권력을 장학한 한 사람이 강제력을 동원해서 인류 전체를 침묵시키는 것만큼이나 정당하지 못하다. 어떤 의견이 특정한 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서, 인류가 그 사람이 그 의견을 갖는 것을 막는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사적인 침해에 그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사적인 침해가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 가해지느냐, 아니면 다수에게 가해지느냐에 따라 그 심각성은 달라질 것이다.

-자유론-

시작은 어쩌면 '서가 명강' 시리즈 중에 첫 번째 책인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으면서 였을 것 같다. 서울대 법의학과 교수님이신 유성호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 평소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형태와 실제 현실적인 죽음의 형태는 많이 다르므로, 현실적인 죽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거나 문서로 남겨둘 것과 이왕이면 남기고 싶은 말을 평소에 조금씩이나마 해두고 글의 형태로 남겨두는 것을 권하는 내용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현실적으로 접하는 이가 말하는 죽음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고,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작가의 말은 글이 되고 책이 되어서, 죽고 나서도 전해지고 읽히며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될 수가 있기에, 나도 우리 아이에게 내 마음을 글이라는 형태로 남겨보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글을 남기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인성적으로 선한 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때 읽고 있던 데미안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함과 밝음만 보려고 하는 것은 세상의 절반만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악과 어두움도 세상이기에 모두 함께 바라보아야 한세상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 작가의 말은 나에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주었기에, 선한 이야기도 남기고 악한 이야기도 함께 남겨야겠구나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런 내 생각 또한 '자유론'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을 쓰면서 사람에게는 사상의 자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자유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옳은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옳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 틀린 것이 될 수가 있고, 틀린 것 또한 시간이 지나서 옳은 것으로 바뀔 수가 있는데, 내가 지금 현재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 내가 진실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내가 틀릴 가능성에 대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내용을 보고,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해주려고 하는 말들이 진정으로 옳은 말들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살다 보면 인간관계와 같은 삶의 노하우들을 누군가 말해주었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타인은 말 그대로 타인인뿐 말해주지 않기에 이런 이야기는 부모인 내가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왜 해주지 않는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자유론'에서는 자신의 말에 무제한적인 복종을 바치는 것을 보는데 익숙한 자들이 자신은 옳다고 확신을 갖는다고 한다. 자신에게 복종을 바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은 절대적인 군왕이나 높은 신분계급, 높은 지위, 혹은 권위적인 부모들을 말할 수가 있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위에 있고, 나는 옳으며, 내가 진리라고 믿어버리게 되면 다른 사람은 틀렸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들며, 내 의견에 동의하는 자들만을 "내 세계"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아이에게 말해주려고 했던 것도 내가 옳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내 세계를 아이에게 심어주려 했던 것임을 깨닫고, 이것도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은 언제나 나에게 깨달음을 건네주고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며 시야를 넓히라고 말하고, 늘 묻고, 늘 의심하고, 늘 깨어있으라고 말해준다. "아이의 자람에 부모는 걸림돌일 뿐"이라는 푯말이 떠오르면서, 언제나 아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부모는 너는 시작부터 끝까지 축복받은 존재이므로,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말밖에는 달리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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