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에 조선사 -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있어서 역사의 시작은 수업이었다.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당연하게 학생이 되어야 했듯이, 역사도 학교의 과목으로 존재했기에 당연하게 배워야 했다. 그 당시에 역사는 수업과목이었고 시험을 쳐야 했기에, 열심히 암기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왕을 외우고, 연도를 외우고, 업적을 달달 외워야 하는 게 일이었다. <단박에 조선사>책의 소개 부분에 방송인 김제동 씨가 한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위화도가 섬인지 땅인 지도 모르고, 그저 1392년 위화도 회군만 줄기차게 외웠습니다. 세종이 어떤 마음으로 한글을 만드셨는지 짐작해볼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고종으로 치달아야 했습니다"

그저 단순하게 외웠던 암기의 역사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역사를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에 <단박에 조선사>를 펼쳤다.

전에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책에서는 부단히도 "역사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쓰는지 알아야 한다. 먼저 역사가를 공부해봐라"라는 말이 들렸다.

역사란 역사가의 주관적인 기록이기 때문이다.

<단박에 조선사>를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독자가 작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부분은 책의 표지에 달려있는 날개 부분에 쓰인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심용환'으로, 학력부터 소개하는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의미심장한 문구로 자신의 소개를 시작한다.

" 역사 앞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삶, 가치 있는 과정을 만드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까"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라는 말이 참으로 멋지다. 이 작가가 세상에 나온 배경은 더 멋지다.

"국정 교과서 사태로 잘못된 정보가 sns를 통래 퍼져 나갈 때,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으로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아 화제가 되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문구와 추천사를 써준 김제동이란 인물과 연관 지어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미약하게나마 추측해보고 다짐해본다.

이 책만큼은 최대한 꼼꼼하고 깊이 있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사는 객관적이지만 역사가는 주관적이다"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역사에 대한 지식을 넣어주는 첫 타자는 교과서였고, 그다음은 가르침을 주는 역사 선생님이었다.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는 역사 선생님의 말씀은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다"였다. 지금 우리가 보는 역사 책들은 그 당시 실제를 기록한 역사라고 볼 수 없다. 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은 그 당시에 권력을 쥐고 있었던 세력가들이었기에, 자신들이 듣기 좋게 역사를 바뀌어서 기록했을 수가 있다. 공민왕 시절에는 우리나라가 원나라에 지배받던 시기였기에, 공민왕의 권위를 추락시키기 위해서 원나라가 의도적으로 나쁜 카더라 소문을 퍼뜨리고 그것을 역사에 기록하게 만들었을 거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진실이라고 믿도록 강요된 기록들만을 보는 거다. 한 인물의 긍정적인 기록을 보는 자는 애찬론자가 되고, 부정적인 기록을 보는 자는 비판론자가 되는 거다. 단지 그뿐이다.

역사 자체가 진실이 아닐 거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은 그 당시 학생이었던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기에 언젠가는 새로운 진실이 알려지게 되는 날도 올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박에 조선사>에서는 공민왕이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설명이 들어간다

" 오늘의 현실이 복잡다단한 맥락을 가지면서 전개되듯 과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민왕의 좌충우돌이 어떤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무엇을 남겼는가는 그러한 맥락을 알 때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러한 사실성이 오늘 우리의 현실 문제를 성찰하는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고요. 무엇인가를 암기한다는 것은 기껏해야 '과거'에 머물 뿐입니다. 이제는 맥락 가운데 얻어진 '성찰'을 통해 현재를 넘어 미래와의 대화를 해야 할 때인 거 같아요 -30p"

<단박에 조선사>책에서는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왕조 실록의 역사를 허탈하고 무용한 시도라고 말하고 있다. 왕조 실록을 통하는 역사는 반복되는 역사이며, 군주의 영웅 놀이를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역사를 보는 관점을 바꾸고, 독해 방식을 바꾸면서 재해석해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나에게 새로운 역사의 관점을 심어줄듯하여 매우 흥미가 돋았다.

"조선사의 시작은 어디인가"

제목이 <단박에 조선사>이기에, 책의 첫 시작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시작할 줄 알고 책을 펼쳤으나, 책은 공민왕부터 시작한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나온 공민왕에 다소 놀랐으나, 찬찬히 읽다 보면 이해되는 대목들이 나온다.

그 당시에 고려는 원나라의 '사위의 나라'라고 불리는 부마국이었으나,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던 시기였고, 이에 공민왕이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하면서 뒤이어 정도전과 혁명파가 사회에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가치관을 심어준 맹자 사상의 <역성혁명>이 나올 때도 그리 놀랍지 않다.

맹자는 중국인이고 중국 사상이며, 유교의 핵심 가치로까지 끌어올렸으나, 유학이 영향을 미친 동아시아 역사를 두루 살펴보아도 맹자의 역성혁명을 실천한 사건은 발견되지 않는데, 조선의 건국이 역성 형명의 과정을 그대로 밟았다고 하는 내용은 놀라웠다.

"한 가지 사건에 여러 가지 다양한 해석들"

분명 사건은 하나인데, 다양한 해석이 달리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역사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선택이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양한 역사가의 해석을 모두 읽어봄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중에서 자신만의 주관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의 건국을 바라보는 내 시각에 위화도회군은 혁명이었으며, 이성계는 영웅이었다. 교과서와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 해석을 하나로 믿으며 의심해볼 생각도 하지 못했고,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믿었다. 가장 처음 놀라웠던 것이 티브이에 북한 사람들이 나와서 이성계에 대해 말했을 때였다. 북한에서 이성계는 영웅이 아니고, 나라를 배신한 반역자로 배운다고 했다. 처음에는 놀랐으나, 가만 생각해보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책에서는 " 위화도 회군을 최영에 대한 배신, 조선의 건국을 정몽주의 절개 정도로 본다면 4월 혁명부터 6월 항쟁까지 시민주권과 민주주의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는 분명 거리가 있게 됩니다. 38p"

이 말은 그동안 작가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뜻일까? 과거에는 이렇게 배웠다는 뜻일까?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해석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맥을 잡아보자는 작가의 말처럼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서 적극적으로 해석해보고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역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역사의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작가가 말하는 '역사의 무식자'는 어떤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을까? 무식자란 알지 못하는 자가 아니었던가?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 자신의 역사 이야기를 펼치려면 우선적으로 역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우선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역사의 무식자인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무식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역사를 알고 있는 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기본적인 설명은 해주지 않아서 조금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도 나왔었다. 어려운 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의 기본기를 배우고 단순 암기는 하고 있으면서 전체적인 맥락은 제대로 몰랐던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역사의 하나의 관점만 알고 있던 자에게는 이 책은 자신의 시야의 틀을 넓히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의미 있는 책으로 다가올듯했다. 단순히 공부만 했던 자에게는 재밌게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책으로 다가올듯했다. 이점에서 방송인 김제동 씨는 이 책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듯했다. 그의 추천사가 이 책의 본질을 그대로 말해주는 듯하다.

책 머리에 3년여의 노력을 통해 이 책이 나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말은 3년 동안 책을 써 내려갔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와 '라디오'에 나오면서 했었던 역사적인 발언들을 묶었다는 뜻인지 궁금해진다. 이유는 <단박에 조선사>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 책을 읽는 것처럼 딱딱하지 않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듣는 듯이, 혹은 역사 강의나 지식방송을 듣는 듯이 책 속의 말이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들리며 재미지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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