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자본
김상은 지음 / 좋은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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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공감도 자본이 될 수 있다니 처음에는 조금 묘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자본이라고 하면 돈이나 건물, 주식 같은 것부터 떠올리게 된다. 요즘에는 지식 자본이니 인적 자본이니 여러 표현이 사용되긴 하지만 공감까지 자본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마저 돈으로 계산하는 책은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심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여기에서 말하는 공감 자본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기술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가진 이야기와 태도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와 관계로 쌓이는 과정에 가까웠다.

특히 예술가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책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은 누구나 자신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시대이니 완전히 남의 이야기 같지는 않았다.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리는 일도 어떻게 보면 아주 작은 전시일 수 있으니 말이다.

책 설명 -

책은 168페이지 정도이고 일반적인 자기계발서보다 얇은 편이다. 크기도 148mm×210mm라 손에 들고 읽기에 크게 부담이 없다. 무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느낌보다는 필요한 내용을 빠르게 찾아 읽는 실용서에 가깝다.

표지는 하늘색과 노란색이 강하게 나뉘어 있고 제목이 아주 크게 들어가 있다. 공감이라는 말에서는 따뜻하고 잔잔한 색을 먼저 떠올렸는데, 의외로 꽤 선명하고 현대적인 느낌이다. 서점에 여러 책과 함께 놓여 있어도 제목만큼은 확실히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책은 예술가의 세계관과 서사에서 시작해 브랜딩, 스토리텔링, 체험 마케팅, 로컬 콘텐츠, 굿즈, 디지털 포트폴리오와 인터뷰까지 다룬다. 각 장의 끝에는 자신의 작업과 방향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워크북도 들어가 있어 그냥 읽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

내용에 비해 분량은 얇지만 다루는 범위는 꽤 넓다. 그래서 한 주제를 아주 깊게 파고드는 전문서라기보다는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해 어떤 부분을 생각해야 하는지 전체적인 지도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서평 -

책의 중심에는 “기술은 감탄을 만들고, 서사는 공감을 만든다”는 문장이 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을 보면 감탄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노래를 아주 잘하는 가수는 많고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도 많다. 그런데 유독 오래 기억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노래를 부르는지, 왜 계속 같은 대상을 그리는지,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작품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진다.

예전에는 실력만 있으면 언젠가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을 꽤 쉽게 믿었다. 골방에서 열심히 만들다 보면 세상이 어느 순간 천재를 발견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세상도 꽤나 바쁘다. 누군가 골방 안에서 열심히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찾아다니며 발견해 줄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책의 프롤로그에도 골방의 천재가 왜 재고가 되는지 묻는 내용이 나온다. 조금 냉정한 표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와닿았다. 좋은 것을 만드는 일과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달하게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능력이다. 그런데 창작자 입장에서는 알리는 일을 괜히 속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나만 잘하면 되지 굳이 나를 포장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나 역시 홍보나 브랜딩이라는 말을 들으면 약간의 거부감부터 생기곤 했다. 내용보다 포장만 요란한 물건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듯 하다. 실제로 형편없는 것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도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브랜딩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을 속이는 작업이 아니다. 자신이 왜 이 일을 시작했고 무엇을 반복해서 말하고 싶은지 정리하는 과정에 가깝다. 흩어져 있던 작업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회사에서 했던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분명 열심히 했는데 막상 누군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결과물은 남아 있지만 그 일을 왜 했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다. 아무리 많은 일을 했어도 설명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없었던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사는 예술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닌 듯 하다. 직장인에게는 경력이 되고, 자영업자에게는 가게의 이야기가 되며, 평범한 개인에게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 된다. 꼭 거창한 고난과 극복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매일 비슷한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는 그 꾸준함 자체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책에서 흥미로웠던 또 하나는 완벽함보다 진솔함이 중요하다는 부분이다. 요즘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이미지와 영상이 너무 많다. AI를 이용하면 웬만한 글이나 그림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다. 예전에는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만으로도 시선을 끌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 오래 기억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듯 하다.

오히려 조금 서툴더라도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긴 작업에 마음이 갈 때가 있다. 반듯하게 만들어진 광고보다 가게 주인이 직접 적은 삐뚤빼뚤한 안내문이 더 기억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서툴기만 하면 안 되겠지만, 완벽한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는 공감이 갔다.

다만 진정성까지 하나의 전략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복잡한 마음도 들었다. 진정성이 잘 팔리기 때문에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연 그것도 진정성일까. 솔직한 실패담이나 아픈 기억이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기 위한 콘텐츠가 되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보다 왜 보여주는지를 스스로 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관심을 얻기 위해 계속 더 강한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까지 홍보 재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공감을 얻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것을 공개해야 공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로컬 콘텐츠에 관한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지역의 오래된 공간과 역사에 예술을 더하고, 예술가의 작업이 골목과 상점에 새로운 이미지를 입히는 과정이 소개된다. 예술이 미술관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근래에는 오래된 시장이나 낡은 공장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보기 좋게 꾸며놓은 관광지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곳의 원래 이야기와 새로 들어온 창작자의 시선이 잘 연결되면 공간을 바라보는 느낌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반대로 지역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유명한 카페와 기념품 가게만 잔뜩 들어오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리가 되어버린다. 결국 로컬 브랜딩도 멋진 간판을 만드는 일보다 그 장소에 이미 존재하던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는 포트폴리오와 인터뷰 부분은 꽤 현실적이다. 작업을 잘 만드는 능력과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능력은 다르며, 준비된 소개 자료와 일관된 메시지가 작가의 첫인상을 결정한다는 내용이다.

뭔가를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보면 알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보는 사람은 대부분 모른다. 왜 이런 색을 사용했는지, 왜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지 친절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취향이 특이한 사람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설명한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말없이 알아주기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암튼 이 책을 읽고 나니 공감 자본이라는 말이 처음보다 덜 낯설게 느껴졌다. 공감은 순간적인 좋아요의 숫자라기보다 한 사람이 계속 보여준 태도에서 생기는 신뢰에 가까웠다. 한 번의 화려한 홍보보다 오래 같은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 더 믿음직한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평을 마치며 -

책을 덮고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나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럭저럭 답했지만, 왜 그것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하다 보니 오래했고, 먹고살아야 하니 계속했다는 말도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조금 아쉽다.

그렇다고 당장 멋진 인생의 문장을 만들어낼 생각은 없다. 억지로 세계관을 만들고 평범한 경험을 대단한 서사처럼 꾸미다 보면 오히려 이상해질 듯 하다. 우선은 내가 반복해서 선택하는 것과 자주 마음이 가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천천히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

예술가나 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작업을 세상에 어떻게 보여줄지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꼭 창작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해온 일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공감은 달라고 요청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고,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듯 하다. 결국 평소에 어떤 태도로 무엇을 계속 보여주었는지가 조금씩 쌓여 만들어진다. 그러고 보면 자본이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다만 통장 잔액처럼 숫자로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뭐, 그래서 더 오래 쌓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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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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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동화책을 마지막으로 제대로 읽었던 때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때에는 책장에 꽂힌 동화책을 별생각 없이 꺼내 읽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동화라는 말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어린이용이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이제 와서 피터팬이나 피노키오를 읽고 있으면 괜히 누가 볼까 조금 민망할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제목부터 대놓고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것도 2편이다. 1편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꽤나 많았던 모양이다.

지친 영혼을 위한 동심 처방이라는 부제도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몸보다 마음이 지쳤다는 말을 더 자주 듣는 세상인데, 약도 아니고 동화로 처방을 한다니 조금 궁금해졌다. 암튼 어릴 때 읽었던 이야기가 지금은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 생각하며 책을 펼쳐본다.

책 설명 -

책은 228페이지이고 128×188mm의 B6 크기라 손에 들고 읽기 편한 편이다. 너무 크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서 가방에 넣어 다니며 한두 편씩 읽기에 괜찮다. 동화를 다룬 책이라 두껍고 커다란 그림책을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일반적인 에세이에 가까운 모습이다.

책은 함께할 때 빛나는 우정과 사랑, 진심의 아름다움, 자유로운 상상, 모험, 성장이라는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그 안에 행복한 왕자, 피터 래빗, 정글북, 소공녀, 벨벳 토끼, 피터팬, 삐삐 롱스타킹, 피노키오, 은하철도의 밤 등 모두 22편의 동화가 담겨 있다.

한 편의 동화를 길게 분석하는 방식은 아니다. 동화의 줄거리를 간단히 되짚고 그 안에서 지금의 어른이 생각해볼 만한 의미를 꺼내 보여주는 구성이다. 한 장씩 끊어 읽어도 흐름이 어색하지 않아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서평 -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대체로 착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동화 속 인물들은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한다. 집을 떠나고, 길을 잃고, 가진 것을 빼앗기고, 누군가와 헤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결말만 기억했지만 어른이 되어 보니 그 과정이 먼저 보인다. 행복해지기 전에 이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 싶은 이야기도 꽤 많다.

책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행복한 왕자는 특히 그랬다. 왕자는 자신의 몸을 장식하던 보석과 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아름답고 화려했던 동상은 점점 볼품없이 변하지만, 그제야 누군가의 삶은 조금 나아진다.

어릴 때에는 착한 왕자와 착한 제비의 슬픈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지금 읽으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결국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점이 먼저 느껴졌다. 마음으로 걱정해주는 것은 쉽지만 내 시간이나 돈, 편안함을 실제로 나누는 것은 꽤나 어렵다.

나이를 먹을수록 손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빨리 배우는데,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마음은 점점 잊는 듯 하다. 물론 무조건 희생하며 살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는 행복한 왕자가 되기 전에 그냥 지친 왕자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내가 지키려는 것 중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벨벳 토끼의 이야기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사랑을 많이 받은 장난감 토끼가 시간이 지나며 낡아지고 초라해지지만, 그 사랑을 통해 진짜가 되어가는 이야기다. 요즘은 새것과 완벽한 모습을 너무 쉽게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물건도 조금 낡으면 바꾸고, 관계도 불편해지면 멀리하고, 사람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실망한다.

하지만 오래 곁에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흠집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흠집 하나 없는 관계는 어쩌면 아직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관계일 수 있다.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도 남아준 시간 덕에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공녀에서는 상황이 변해도 잃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진 것이 많을 때 친절하고 여유로운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문제는 내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다. 마음이 힘들면 다른 사람에게 건넬 친절부터 줄어든다. 나 하나 버티기도 힘든데 남의 사정을 살필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힘든 순간에도 스스로를 완전히 잃지 않는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밝고 착하게 살라는 말은 현실적으로 조금 부담스럽지만, 적어도 힘든 상황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게 두지는 말자는 정도라면 기억해볼 만하다.

피터팬이나 삐삐 롱스타킹을 다룬 부분에서는 상상력이 단순히 어린아이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어른이 되면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현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그 말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안 될 이유를 먼저 찾고, 괜히 했다가 실패할까 걱정하며 익숙한 자리에 머문다.

나 역시 예전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계산부터 많이 한다. 시간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드는지, 실패하면 손해는 무엇인지부터 따진다. 그러고 나면 처음에 재미있어 보였던 일도 금세 귀찮아진다. 뭐 아주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된 것 같지만 사실은 겁이 많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 동심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과는 조금 달랐다. 손해를 계산하기 전에 누군가를 믿어보는 마음, 결과를 확신하지 못해도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 이미 굳어버린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상상력에 가까웠다. 아이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면서 버린 것 중 다시 주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은하철도의 밤은 행복에 대한 생각을 남긴다.

행복은 보통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모습으로 떠올리기 쉽다. 더 좋은 집, 더 많은 돈, 편안한 생활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말은 대체로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쉽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얻는 것만으로 행복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 무엇을 지키며 사는지, 내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흔적으로 남는지도 행복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동화는 이런 질문을 어렵고 거창한 말 대신 익숙한 이야기로 건넨다. 그래서 부담 없이 읽다가도 가끔 책장을 멈추게 된다.

서평을 마치며 -

동화를 다시 읽는다고 해서 갑자기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돌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세상일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고, 계산하는 습관도 꽤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피터팬처럼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수도 없고 삐삐처럼 하고 싶은 대로만 살 수도 없다.

그래도 모든 것을 현실이라는 말로 정리하며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금 낡아도 소중한 것을 버리지 않는 마음, 두려워도 한 걸음 움직이는 용기,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건네는 태도 정도는 어른이 된 뒤에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예전에 읽었던 동화 몇 권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았던 이야기와 지금의 내가 보는 이야기는 분명 다를 것이다.

책장 어딘가에 오래된 동화책이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없다면 도서관 어린이 코너에 가야 할 텐데, 괜히 직원이 이상하게 보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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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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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초한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으레 어릴 적 만화책으로 보았던 영웅들의 뻔한 무용담이나, 장기판 위에서 한과 초가 맞붙는 낡은 이미지부터 떠오르곤 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명언이나 위인 등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인위적으로 숭상되기 위해 후대에 의해 과장되게 포장되고 만들어진 느낌을 종종 받기 때문이다.

항우의 압도적인 무력과 유방의 처세술이라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이분법적 구도가 왠지 모르게 진부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굳이 찾아서 읽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세상일이 단편적인 선악이나 능력의 유무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영웅들의 호쾌한 승리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번뇌와 조직 내의 암투,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서점 매대에서 '초한지 인생공부'라는 다소 직관적이면서도 무거운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인물들의 흥망성쇠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와 통찰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여 책장을 넘겨본다.


책 설명 -

 책은 거의 400페이지 정도로 꽤나 페이지수가 많고 일반적인 소설책 넓이보다 조금 넓다.

지하철에서 한손에 두고 읽기는 좀 무리한 크기이고 두손으로 공손히 받치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크기인데 저자가 담아낸 내용의 진중함을 생각하면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표지는 그냥 딱 동양화가 생각나는 여백의 미가 강조된 느낌이랄까.

전체적인 색감이 옅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느낌이라 좀 더 색감이 강해도 좋았지 않았을까 한다.

내지는 활자가 너무 작지 않아 읽기에 부담이 적고, 각 장이 넘어갈 때마다 인물들의 핵심 명언이나 원문 구절을 배치해 둔 배려가 눈에 띈다.

딱히 삽화 같은 그림들은 없지만 텍스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깔끔한 편집은 마음에 든다.


서평 -

 초한지의 핵심 서사는 결국 항우와 유방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세계관의 충돌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가장 크게 다가왔던 부분은, 가문과 무력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천재적인 리더 항우가 왜 결국 촌부 유방에게 천하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었다.

흔히들 유방의 친화력이나 부하들을 믿고 맡기는 용인술을 승리의 원인으로 꼽지만, 이 책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인간 본성과 조직 역학에 대한 이해를 파고든다.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현실과 과거 상사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항우는 스스로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타인의 조언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오만함은 결국 유일한 책사마저 내치게 만들었고, 그것이 그의 시야를 좁게 만드는 독이 되었다.

반면 유방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너무나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은 싸움도 지략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했기에, 장량이나 한신 같은 천재들이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겼던 것이다.

 "승리하는 조직은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채워나가는 리더가 만든다"라는 대목이 유독 파고들듯이 뇌리에 박히는 문구였다.

마흔 중반의 입장으로써, 그동안 나는 나 스스로 모든 업무를 통제하고 해결해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곤 했다.

후배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며 애를 썼고, 그로 인해 스스로의 체력과 정신을 갉아먹는 시간도 무척이나 많았다.

하지만 유방의 리더십을 보며, 진정한 어른의 역할이란 결국 내 그릇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이들이 그 안에서 춤출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책 속에는 항우와 유방 외에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천하통일의 일등공신이었으나 결국 토사구팽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명장 한신의 이야기도 꽤나 서늘하게 다가왔다.

책은 한신의 죽음을 단순히 유방의 냉혹함으로만 몰아가지 않는다.

한신은 전쟁터에서는 무패의 신화였을지 모르나, 권력의 속성과 인간관계의 복잡한 역학이라는 더 큰 판을 읽는 눈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만을 과신한 나머지 때를 기다릴 줄 몰랐고, 물러서야 할 때를 알지 못해 화를 자초했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자는 끝까지 살아남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만 믿고 교만해진 자는 결국 도태된다"라는 책 속의 문구는 나에게 뼈아픈 경고처럼 들렸다.

사람들은 항상 언젠가는 무엇을 할 것이고, 때가 되면 내가 인정받을 것이라는 말을 쉽게 내뱉고는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고 겸손이라는 미덕과 결합될 때에만 온전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깊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발버둥 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모사꾼 장량의 처세술이다.

천하를 통일한 후 권력의 중심에 서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는 모든 공을 내려놓고 표연히 야인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과연 내가 이것을 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다고 해서 무엇이 바뀔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아는 그의 지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손에 쥐려고만 아등바등하는 현대인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뭐 책의 내용이야 초한지가 가진 방대한 서사 구조에 저자의 에세이를 덧붙인 형식이라 하루에 서너 개의 챕터를 마음 가는 대로 잡아서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단순한 역사 교양서를 넘어 지금 당장 나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천천히 여러 번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이런 책 한 권 정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서평을 마치며 -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뭘 하든지 배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곤 했다.

세상일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의 응어리가 지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책 한 권의 몇 개의 문구 덕에 그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 든다.

 삶이라는 험난한 전쟁터에서 때로는 항우처럼 주변을 살피지 않고 저돌적으로 돌파해야 할 순간도 있겠지만, 최후까지 살아남아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유방처럼 자신의 그릇을 비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고전을 읽으라고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 깊은 뜻을 이제서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구나 책을 읽기는 한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면 남는 구절이 몇 개나 있을까.

내 경우에는 여러 권을 돌아가면서 읽는 편이라 딱히 기억에 남는 문장이 없는 것 같았는데, 이 책만큼은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꽤 많았다.

정말 나중에 천천히 볼 수 있는 책이 생긴다면 필사라는 것도 해보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초한지 말고 다른 고전은 뭐가 있을까..

새 책은 비싸니 중고 서적이라도 구매하러 헌책방에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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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단단하게, 법정의 말 - 내려놓음의 마음 공부 고요하고 단단하게
권민수 엮음 / 리텍콘텐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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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개인적으로 종교 서적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누군가의 신념이 너무 앞에 나와버리면 괜히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안 읽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복잡해질 때가 많아지니 종교를 떠나서 사람 마음을 좀 다독여주는 책이라면 슬쩍 손이 가곤 한다.

이 책도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고요하게, 단단하게.

뭔가 요즘 세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말 같아서 오히려 더 끌렸다.

다들 시끄럽게 살고, 빠르게 살고, 남과 비교하느라 바쁜데 혼자 고요하고 단단하게 살라니 말은 참 쉽다.

그래도 법정 스님의 말이라면 뭔가 허투루 흘려듣기엔 아까운 문장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넘겨보게 되었다.

책 설명 -

책은 280페이지 정도이고 손에 들면 묵직하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제법 알차게 들어있다.

표지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딱 봐도 조용한 책이라는 느낌이 난다.

화려하거나 눈에 확 띄는 표지는 아닌데 오히려 그래서 마음에 든다.

괜히 법정 스님의 말을 다루는 책인데 표지가 요란하면 그것도 좀 이상했을 듯 하다.

구성은 꽤 잘 짜여 있다.

법정 스님의 문장이 먼저 나오고 그 아래에 엮은이의 해설이 붙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우리의 고민들’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냥 좋은 말을 모아놓은 어록집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그보다는 조금 더 친절하다.

문장만 툭 던져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장을 지금의 삶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까지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비움과 자유, 두려움과 신뢰, 일과 삶, 관계, 슬픔의 치유, 자연의 가르침, 단련과 실천으로 나뉘어 있는데 목차만 봐도 요즘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흔들리는지를 아주 잘 알고 만든 느낌이다.

서평 -

법정 스님의 말은 이상하게 소리가 크지 않다.

누군가를 훈계하는 말투도 아니고 인생을 정답처럼 정리해주는 문장도 아니다.

그런데 조용한 문장인데도 꽤 오래 남는다.

읽는 순간보다는 읽고 나서 설거지를 하거나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식이다.

그게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법정 스님이 말하는 건 대단한 성공이나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다.

덜어내는 것, 늦추는 것,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남 탓을 조금 덜 하는 것.

말로 쓰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이걸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렇다.

피곤하면 괜히 말이 거칠어지고, 남과 비교하다가 마음이 허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쓸데없이 예민해진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으면 새삼 내가 별로 고요하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좀 웃기긴 하다. 제목부터 이미 내가 아닌 사람의 상태 같다.

인상 깊었던 건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을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찾게 만드는 점이었다.

행복도 누가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태도에서 자라고, 불행도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은 아주 뻔한 말 같으면서도 막상 들으면 뜨끔하다.

사람은 자꾸 상황 탓, 환경 탓, 타인 탓을 하고 싶어지니까.

그런데 법정 스님의 문장은 그걸 조용히 잘라낸다.

네가 지금 어디를 보고 사는지부터 다시 보라고 한다.

사실 이런 말이 제일 아프다.

대단한 위로보다 더 정확하게 들어오니까.

관계에 대한 내용도 꽤 오래 남았다.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인간관계는 넓어졌는데 정작 마음은 더 좁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까울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커질수록 서운함도 커진다.

책에서는 인연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하고, 상처를 오래 붙들수록 내가 먼저 지친다고 말한다.

용서는 남을 위한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는 문장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용서를 무슨 성인군자처럼 해야 하는 일로 생각했는데, 결국 나를 위해서라도 놓아야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미워하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그 체력도 아깝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행복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은 완벽한 하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하루 속에서 기쁨을 알아차리는 태도라고 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괜히 마음이 좀 느슨해진다.

늘 뭔가를 더 이뤄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행복도 결과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법정 스님의 말은 그 방향을 바꿔놓는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시선이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결국 어떤 세상을 사는지는 오늘 내가 고른 시선이 정한다는 문장도 같은 맥락일 텐데, 이건 정말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온 질문들도 꽤 괜찮았다.

내 감정의 시선으로 남의 말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 어떤 평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가,

검색과 강의로 많이 보고 듣고 있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요즘은 워낙 남의 생각을 쉽게 보고 듣는 시대라 내 생각 없이 아는 척만 하며 살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읽게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을 슬쩍 점검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읽다가 몇 번은 그냥 책을 덮고 멍하니 있게 된다.

뭘 대단히 반성했다기보다는 그냥 내 말투나 표정이나 태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책이 의외로 많지 않다.

법정 스님의 말은 따뜻하지만 물렁하지는 않다.

위로는 해주는데 마냥 감싸주기만 하지는 않는다.

결국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은 말을 잘하는 데서가 아니라, 옳다고 믿는 걸 오늘 한 번이라도 몸으로 실천해보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이건 참 뻔한데 가장 어려운 말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표정과 말투와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아마 그래서 더 자주 이런 책이 필요한 것 같다.

읽고 나면 당장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함부로 살고 싶지는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평을 마치며 -

책을 다 읽고 나니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마음속 먼지가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삶이 복잡할수록 자꾸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답,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데 정작 필요한 건 이런 조용한 문장 몇 개일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님의 말은 세상을 이기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게 지금 같은 시기에 더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괜히 잘 살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게 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덜 거칠게, 조금 덜 시끄럽게, 조금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읽고 나서 당장 산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거나 무소유를 실천해야겠다는 거창한 결심이 드는 건 아니다.

다만 말 한마디를 조금 덜 날카롭게 해야겠다는 생각,

비교를 조금 덜 해야겠다는 생각,

지금 가진 평온을 좀 알아차려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 정도면 이런 책 한 권이 할 일은 충분히 다 한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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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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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시작하기 전 잡담 -

다자이 오사무를 처음 만난 건 <인간실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꽤 불편했다. 지나칠 정도의 자기혐오, 끊임없는 변명, 도망치듯 흘러가는 문장들.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자주 멈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줄거리는 흐릿해지는데, 문장 몇 개는 계속 남아 있었다. 별일 없는 날 문득 떠오르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 괜히 다시 펼쳐보게 되는 문장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조금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자이 오사무를 ‘작가’가 아니라 ‘문장의 기억’으로 묶어낸다는 발상 자체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책 설명 -
책은 두툼하지 않다. 손에 들었을 때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와 무게다. 표지는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는데, 제목처럼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다. 구성은 명확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실격>, <사양>, <달려라 메로스>, <여학생>, <어쩔 수 없구나> 등에서 문장을 뽑아내고, 그 문장에 대한 최소한의 해설과 여백을 남긴다. 설명은 많지 않다. 오히려 독자가 문장을 먼저 읽고, 느끼고, 머물 수 있게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친절한 구성인가 싶었다. 하지만 몇 장 넘기다 보니 이해가 됐다. 이 책은 다자이를 설명하려는 책이 아니라, 다자이의 문장을 ‘다시 만나게’ 하려는 책이다.

서평 -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은 언제나 날것이다. 다듬어진 위로보다는 날카로운 고백에 가깝다. 이 책에서도 그 특징은 그대로 드러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라는 문장은 여전히 강력하다. 단 한 문장인데, 그 뒤에 이어질 모든 실패와 고독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이런 문장을 굳이 해석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독자가 그 문장 앞에 잠시 멈추도록 만든다.
우리는 요즘 너무 빠르게 읽는다. 의미를 곱씹기보다 요약을 원하고, 감정보다 결론을 찾는다. 그런데 다자이의 문장은 그런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읽는 순간 불편하고, 다음 문장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한다. 이 책은 그 불편함을 그대로 유지한다. 괜히 위로하지 않고, 괜히 미화하지 않는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그의 문장이 왜 이렇게 무거운지 이해하게 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 사실을 부끄러워했고, 좌익 운동에 가담했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흔히 말하는 ‘불행한 천재’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비극적인 생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연대기적 설명도 최소화되어 있다. 대신 작품 속 문장을 통해 그 사람을 느끼게 한다.
그 선택이 꽤 현명하다고 느껴졌다. 다자이를 동정하거나 미화하는 대신, 그가 남긴 문장과 독자를 직접 마주하게 만든다.

<인간실격>의 문장들은 여전히 자기연민으로 가득 차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읽어도 호감 가는 인물은 아니다. 타인을 경멸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가장 불쌍한 존재로 설정하는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다자이 문장의 힘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의 가장 추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꺼내놓는 태도. 그 솔직함 하나만큼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다.
이 책은 그런 문장들을 그대로 내보인다. “이렇게까지 말해도 되는 걸까?” 싶은 문장 앞에서도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독자가 판단하게 둔다.

<사양>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또 다르다.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을 ‘해질 무렵’에 비유한 시선은 참 묘하다. 완전히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시간. 끝나가고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빛. 이 책에 실린 <사양>의 문장들은 체념과 각오가 동시에 묻어난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쨌든 살아내야만 한다”는 문장은 다자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건조한 위로처럼 느껴졌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하니까 산다는 태도. 요즘 말로 하면 참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문장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달려라 메로스>에 이르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다자이 오사무가 쓴 이야기 중 드물게 ‘신뢰’라는 단어를 곧게 바라보는 작품이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메로스의 모습은 여전히 교과서적이지만, 이 책에서 뽑아낸 문장들은 의외로 담담하다. 과장된 영웅주의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믿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조용히 짚는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다자이는 자기 이야기를 할 때보다 남의 이야기를 빌릴 때 더 단단해진다는 점이었다. <여학생>이나 <직소> 같은 작품에서도 그런 인상이 강하다. 특히 <여학생>의 문장에서는 고독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이 감정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니다”라는 인식에 이르는 순간, 문장은 한결 넓어진다. 그 지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다자이의 문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는 점이다. 한 장 한 장 넘기기보다는, 한 문장에서 멈추게 된다. 필사 공간이 있는 구성도 그런 의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굳이 필사를 하지 않더라도, 손으로 문장을 따라 쓰고 싶어지는 책이다. 문장을 옮겨 적는 동안, 그 문장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감정으로 남는다.
요즘처럼 빠르고 매끈한 문장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렇게 삐걱거리고 불완전한 문장은 오히려 귀하다. 다자이의 문장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너만 이런 게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 정도면 충분한 역할 아닐까 싶다.

서평을 마치며 -
이 책을 덮고 나서 다자이 오사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전히 그의 세계는 어둡고, 인물들은 비겁하고, 문장들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왜 그의 문장이 오래 남는지, 왜 지금도 읽히는지.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은 다자이를 입문서처럼 소개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이미 다자이를 한 번쯤 읽고, 문장 하나쯤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삶이 버겁고, 괜히 모든 게 귀찮아지는 날, 이 책을 펼치면 다자이의 문장이 조용히 말을 건다.
괜찮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살아 있는 한, 이런 마음도 함께 안고 가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그 담담함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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