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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타인들 - 소중한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관계심리학
조반니 프라체토 지음, 이수경 옮김 / 프런티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밀한 타인들>의 부제는 '소중한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관계심리학'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 책의 작가 조반니 프라체토는 과학자이며 인문심리서 <감정의 재발견>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관계에 관한 자기계발서 정도로 생각했다. 실제 책의 목차를 보더라도 '관계의 선택', '관계의 유지', '관계의 균열'...으로 나와있어 관계에 대한 심리이론이나 처세술에 관한 내용으로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사실상 소설책이었다. 책은 8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장의 제목이 모두 '관계의 00'로 되어있어 관계의 단계별 심리학적 분석으로 보여지지만 각 장마다 별개의 단편 소설이 있었다. 작가는 '이야기식 서술과 과학적 사실을 오가며 인간관계의 다양한 지점을 논한다'고 표현했지만 나에게 이야기식 서술은 소설이었고 과학적 사실은 나래이션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등장하는 관계는 모두 사랑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인 '6장 관계의 재발견' 외에는 모두 육체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그래서 관계 중에서도 특히 연애에 관한 책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연애의 관계라는 것이 다소 파격적이었다. 상상의 연인, 불륜까지는 어쨌든 어색하진 않는데 동성애, 양성애로 넘어가면서는 이국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양성애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의 자유처럼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매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퀴어축제(Queer Festival)가 열린다. 인상적인 것은 퀴어축제를 할 때마다 엄청난 경찰인력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반대편에는 기독교 단체가 주관하는 반퀴어(反Queer)시위가 열려 팽팽한 긴장감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이 책 '7장 관계의 보상'에서는 2015년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시기가 배경으로 나온다. 그때 어른, 아이, 이성애자, 동성애자 할 것이 없이 국민 모두가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내어 관용가 포용으로 서로의 개인적 취향과 감정을 존중해주는 모습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이미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캐나다, 미국 등 많은 국가들에서 성소수자들의 동성애 결혼을 인정하는 추세이니 이런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그 나라 중 하나가 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이 책에서 나오는 동성애와 양성애의 관계에 부정적이기 보다는 참신하고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커플이 술을 마시다가 같이 화장실을 가서 소변기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오는데 커플이라면 당연히 이성이라고 떠올리는 문화 속에 있는 나로서는 그 장면이 빨리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려졌음에도 약간 어색한 익숙치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치, 동성애자는 바로 옆에 서서 오줌 눌 일도 생기겠네'하는 생각은 생각해보면 너무도 당연한 생각이지만 머리 속에 그려볼 일이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같이 소변기 앞에서 볼일 보며 연인에게 오늘 눈 오줌 중에 최고라고 말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그리고 '숫총각'이 '남자'와 '섹스'를 하는 상상을 했다는 문장에서, 미처 아직 이 책이 동성애를 다룰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전에는, 순간 내가 글을 잘못 읽었던지 아니면 오타가 아닌가 한참을 다시 읽어본 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시간강사와 대학생이라서 그나마 충격이 경감되지만 남자 학생과 남자 선생님과의 사랑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사실상 남자라는 것만 빼면 어느 남녀간 사랑 못지 않게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남자와 남자간에도 저런 정서를 나눌수 있구나'하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상상해보게 되니 머리의 어떤 막혔던 부분이 뚫어져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유럽의 상당수의 국가가 이미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동성애는 일상적인 부분일 것이고 당연히 그가 쓴 소설에도 그런 문화적인 부분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 세계적인 감각이 길러지고 새로운 것에 오픈 마인드가 되는 것 같다.
'8장 관계의 의미'에서 자유롭고 뜨거운 사랑을 하지만 끝내 에이즈로 연인을 잃게 되는 이야기와 '6장 관계의 재발견'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서는 죽음을 통한 친밀한 관계의 종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1장 관계의 선택'에서는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골드미스가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의 아우성을 못 이겨 가상의 남자친구를 만들어 거짓말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나라의 부모님이나 외국의 부모님이나 이런 면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 중간에 목소리가 등장해 심리학, 통계학, 진화론, 천문학까지 끌고와서 관계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전지적 작기시점의 나래이션이 등장한다. 그리고 철학자, 심리학자, 극작가같은 여러 인물들의 말이 인용되어 있어 소설 속 이야기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 볼만하다.
<친밀한 타인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성, 이성, 양성, 부모자식 같은 여러 관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나는 지금 어떤 친밀한 관계 속에 있고,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고 종국에는 끝낼 것인가' 하는 나를 둘러 싼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 책을 통틀어서 나는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외로움은 사람을 죽인다." '친밀함'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담고 있는 이 책이 가장 큰 도움을 줄수 있는 사람은 바로 '외로운' 사람들이 아닐까. 만약 지금 외로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참고 삼아 친밀한 관계를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너무 늦어 외로움에 죽기전에.
"난 우리가 인생이라는 걸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뜻대로 안 되고, 마음에 안 들고, 아쉽고, 뭐 그런 것들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우린 다 나약하고 상처받는 존재야. 그걸 기꺼이 인정하자고.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은 서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으며 살자. 그것 말고 중요한 건 없어. 우리, 포기하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약속하자. 후회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