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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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심장에 수를 놓는다...' 그 표현에 단정짓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전해졌다. 어떤 가슴 찡한 사연이 담겨있다는 은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은유가 아니라 직유였다. 심장, 즉 우리 몸. 우리 몸에 수를 놓는 것, 그렇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문신에 대한 이야기다.


문신과 타투는 문자 그대로는 같은 말일지 몰라도 그것이 풍기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문신은 나이 있으신 세대들의 단어로 음지에서 힘을 쓰시는 분들이 하실 법한, 그래서 목욕탕에서 '문신'이 있는 분들이 계시면 으레 자리를 비켜드려야 하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하지만 타투는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개성이나 멋을 표현하기 위한 악세사리 정도로 인식된다. 책에서도 50대인 시미는 '문신'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20대인 화인은 '타투'라는 단어로 이내 받아친다. 과거에 문신을 한 사람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었지만 이제는 타투한 사람은 흔히 본다. 특히 노출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목, 손목, 발목, 허리 등에 타투를 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리고 전통적으로는 남성들이 많이 했지만 지금은 여성들에게서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나도 전에는 '문신'에 대해 보수적인 느낌이 있었지만 이제는 '타투'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아 개인의 취향으로 느껴진다.


과거는 아프고 현실은 초라하고 미래는 불안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양극화는 심해지며 불평등과 부조리는 커져간다.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헌법적 계급은 사라졌을지언정 경제적 계급, 사회적 계급은 엄연한 현실이다. 인간성은 상실되고 허무와 위선이 판친다. 사람들의 열망은 커져가지만 해소할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너무 암울하게 말했나.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고자 이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깊은 불안과 불만을 느끼며 살고 있고 그 공허험에 허덕이며 믿고 기대고 싶은 의지처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져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교육수준은 높아짐에도 수천년전에 탄생한 종교의 맹목과 기복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또 일반인들의 시각에서 부러움의 대상인 연예인, 정치인, 경제인 같은 유명인들이 프로포폴이나 마약 투여로 경찰에 수사 중이라는 뉴스가 흔한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준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사람들의 그런 불안한 마음을 '타투'로 위로해준다. 외롭고, 두려울 때 나를 지켜줄 수호신. 소설 중에 나오는 화인의 새러맨더, 운전기사 M씨의 파도, 작곡가의 표범과 같은 인물들의 '타투'는 그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했을 때 '수호신'으로서 그들을 지켜준다. 어떤 수호신이 실제로 우리를 지켜주느냐, 엄마가 10만원 주고 사오신 부적이 실제로 효과가 있느냐 하는 것은 어쩌면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택가에 드문드문 보이는, 대나무에 오방색 천이 휘날리며 '00보살'이라 간판붙어 있는 점집의 그 '보살님'들도 그냥 사기꾼이라 말할수는 없다. 플라시보 효과처럼 믿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로 말미암은 효과들이 나타나기에 그런 믿음들은 곧 현실이 되니까. 물론 그것이 상식적인 선을 넘어가서 개인이나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맹신으로 치달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더 커진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서도 그만큼 믿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기에 '타투'로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있다. 부적하나 지니고 있다고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줄 알지만 그래도 묘하게 알수 없는 든든한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나는 '문신술사'라는 타투 사장님 캐릭터에 끌린다. 타투가게라는 젊고 이색적이며 예술적인 공간에 투박하고 수수하고 촌스러운 복장을 한 푸근한 빵집 사장님 같은 분이 타투 사장님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날리는 멘트마다 공간이 주는 느낌과는 다른 따뜻함과 배려가 느껴져 묘한 신뢰감마저 든다. 왠지 저 사장님이라면 타투를 몸에 새겨볼 수도 있겠다는 그런 느낌. 타투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50대 시미가 사지도 않을 물건을 보러온 사람마냥 생각없이 사장의 시간을 잡아먹고 있어도 어떠한 재촉이나 불편한 내색없이 다정하게 대해준다. 빨리 팔아치우고 다음 손님을 받으려는 것이 조급함이 아닌 온 마음으로 그 사람을 위해 집중해주면서도 부담은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로맨티스트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조그많고 예쁘다. 내 손바닥을 펼치면 그 속에 속들어간다. 종이의 질감은 외국책들에서 느껴지는 까끌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크래프트지 특유의 종이 냄새가 났다. 책이 작다보니 여백이 작아 책 속이 꽉차보였다. 작은 책은 처음 봤을 때 만만해보여 다가가기도 좋다. 뭔가 두껍고 큰 책들은 부담스러운 감이 있지 않나. 하지만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아들을 빼앗긴 슬픔,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도 악착같이 살아내려는 강한 의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싶은 따뜻한 마음, 여러 이야기와 감정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는 공감과 위로가 있다.



소설에서 시미는 타투는 충동적으로 저지르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문신술사는 우주가 만들어진 것도 어떤 충동과 우연에 의한 것이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원래 변하고 일관성 없기에 그런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답한다. 책의 뒷 표지에 충동이 솟는다는 것은 태울 에너지가 생긴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되어있다. 타투라는 단어와 충동이라는 단어가 참 잘어울린다. 사람들은 충동을 많이 억누르고 산다. 이성과 계획은 정당한 것이고 충동과 우연은 잘못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타투 사장의 말처럼 이성과 계획이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충동과 우연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스러움에 우리가 부합할 때 우리는 빛날수 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에서 '타투'는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가려진 우리의 빛을 찾아주는 '용기'이다. 책을 읽고 나니 타투와 많이 친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타투가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이 초현실적인 이야기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나도 해볼까?'하는 마음도 잠시 생기게 만들었다. 본능과 충동을 너무 죄악시하며 외면한채 살아오지 않았던가. 억눌린 내 안의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언젠가 나도 내 심장에 작은 수를 놓는 날이 올지.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충동과 우연도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실제로 그것들이 자연이며 우주며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생각 많은 것도 일관성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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