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궁금해요 내 친구 카렐 11
리즈벳 슬래거스 지음 / 사파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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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몸이 궁금해요>는 자신의 몸에 호기심을 갖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다. 이 책은 '내 친구 카렐'이라는 그림책 시리즈 중 한권으로, 시리즈는 바른습관, 감정표현, 신체운동, 오감놀이와 같이 영유아 교육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나온다. <내 몸이 궁금해요>는 '신체운동' 파트에 속하기에 단순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그림책을 넘어 아이와 함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진 것이 특징이다.


첫장에 나오는 발가벗은 아이의 뒷 모습이 귀엽고 낯익다. 우리 아이 씻기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옆에 있는 아이도 "엉덩이 봐"하며 웃는다. 책을 넘기면 주인공 카렐이 등장한다. 카렐 뿐 아니라 카렐 친구들로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지루할 틈 없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캐릭터들은 시리즈의 다른 책에서도 등장하기에 다른 편을 봤던 아이들이라면 익숙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목욕을 한 카렐의 몸이 나오고 각 신체부위별로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책은 아이가 카렐의 신체를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소리내 말하고 자신의 같은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게 한다. 늘상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시해도 아이들에게는 재밌는 놀이다. 티비 끄고 일찍 자자는 말은 잘 안들어도 이런 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와주니 그거라도 고맙다. 신체를 배웠으니 그 신체와 관련된 표현들도 학습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눈에 안경을 쓰고, 얼굴에는 주근깨가 있고, 머리카락은 금발이라는 이런 표현들을 배운다. 아직은 검은 머리만 경험한 아이가 금발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까 잠깐 생각했는데 기우였다. 스무스하게 넘어간다.



카렐의 생일 축하 장면이 나온다. 카렐과 친구들이 제각기 자기 행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케익을 후 부는 카렐, 박수를 치는 아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와 같이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 몸의 5 부위(입, 팔, 다리, 손, 발) 위주로 아이가 캐릭터들이 하는 모습을 말로 표현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신체 명칭에 익숙해지고 표현력을 기를수 있도록 했다.


몸에 대해서 이야기가 끝나가자 이번엔 얼굴을 디테일 하게 들어가기 시작한다. 눈, 머리카락, 볼, 입, 코, 턱, 귀, 목, 카렐의 얼굴과 옆에 부위 별 이름이 나오고 아이가 카렐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는 눈동자가 대부분 검은색이지만 파란색, 갈색, 초록색의 다른 눈동자 색깔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도 소개되어 있다. 책의 원작은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발행되었다.(벨기에와 네덜란드는 같은 나라였기에 발행도 같이 하는 건가.) 다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유럽이다보니 책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눈동자색, 피부색, 머리색이 등장한다. 노란색 피부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가 대부분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책들로 아이들이 조금은 '월드와이드'한 인식을 경험하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얼굴 각 부위로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는지 학습하고 그림 속 친구들이 얼굴 부위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로 표현하도록 되어있다. 또 갓난 아이부터 유치원에 가는 아이까지 신체가 커가면서 할수 있는 행동들을 나눠놓고 아이가 시간의 순서대로 짚어 보도록 한다. 스무고개 같이 얼굴의 특징을 써놓은 단서를 통해 그림에서 누구의 얼굴인지 찾도록 하는 부분도 있다. 보통 다른 책들은 글자 읽고 그림 보여주고 하면 후다닥 금방 끝나버리지만 이 책은 페이지마다 활동들이 있기에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 하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아이들이 좋아할 놀이적 요소들이 또 있는데, 틀린 그림 찾기, 선 따라가기, 숨바꼭질 같은 부분이 있어 하나씩 해결할 때마다 아이가 성취감과 흥미를 느끼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마지막은 '잘 자고 내일 만나요'라며 카렐이 자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내 생각엔 잘 때 읽어주는 책으로는 적합하진 않은 것 같다. 아이가 신이나서 잠이 깰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놀아줄 때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 카렐의 발가락에 숫자를 써놓은 야무짐(?)이 내 눈에 띈다. 작가는 단 하나의 그림도 허투루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한 듯 마지막까지 아이가 발가락 개수를 인지하도록 해놓고 더불어 숫자도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내 몸이 궁금해요>는 자신의 신체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아이에게 부위 별 명칭과 부위가 하는 역할 대해 알려주고 그 과정에서 놀이활동을 통해 의사소통능력도 길러 줄 수 있는 책으로 부모가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하나 고민할 것 없이 책에 쓰여진 내용대로 따라만 가도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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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두 얼굴의 룸메이트 - 치즈에서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아이러니한 미생물의 세계
마르쿠스 에거트.프랑크 타데우스 지음, 이덕임 옮김 / 책밥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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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올해 가장 큰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될 것이다. 코로나가 가지고 온 영향은 정말로 엄청나다. 학교가 개학을 못하고 가게가 문을 닫고 실직자가 대량으로 생기며 채용시험과 각종 시험들이 미뤄졌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곧 총선인데 거리에 후보들은 보기 어렵고 보더라도 과거처럼 악수가 아닌 주먹이나 팔꿈치로 인사하는 모습이 낯설다. 몇일 전에 사전투표에서는 마스크 쓰고 투표장에 온 사람들의 거리두기와 손소독, 비닐장갑 착용하는 진풍경이 펼쳐졌고, 본 투표일에는 일반투표 후 자가격리자들을 위한 연장투표도 시행하고 선거 관리자는 레벨 D의 전신보호복을 착용할 계획이라 하니 누가 이를 상상이라도 했을까.


새벽부터 마스크를 사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약국 앞에 긴 장사진을 친 장면은 세월이 지나고 다시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겪지 않은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 광경이다. 코로나는 국제 질서도 바꿔놓는다.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전 세계 정상들이 한국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하고, 북미, 유럽의 중심 매체들이 연일 한국을 거론하며, WHO를 포함한 각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에게 묻고 따라하기 바쁘다. 코로나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굳건하게 유지되던 세계 질서 마저도 뒤흔들고 있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 그리고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자면 서평을 못 쓰지 싶다.


이러한 코로나의 영향력은 출판업계도 피할 수 없다. 바이러스, 위생, 세균, 감염, 전염병과 같은 메인 키워드를 담은 책들이 앞다투어 신간도서에 진열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 그러한 관심에 편승해서 <세균, 두 얼굴의 룸메이트>를 보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닌 사람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내 상식이 부족했던 것을 느낀다. 혹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은 '세균'과 '박테리아'의 차이를 아시는가. 참고로 나는 가까운 지인들(10명 이상)에게 대면으로(검색하지 않고 답을 듣기 위해) 이것을 물어보았다. 아쉽게도 답을 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나도 몰랐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알게되었다. 나와 내 주변사람들을 욕(?)먹이면서까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가 아는 저 단어의 의미를 우리가 너무도 모르고 쓰고 있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균'과 '박테리아'의 차이는 '언어'의 차이 밖에 없다. '세균'이 영어로 '박테리아'다. 허무한가. 하지만 약간의 위로가 되는 것은 이 책을 번역한 분도 이를 명확히 알고 계신 것 같지 않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세균과 박테리아는 지구 최초의 생명체였다." 이 문장은 이제 "뉴턴의 머리로 사과와 애플이 떨어졌다."로 느껴진다. 철학과 독일어를 전공하신 번역가도 미생물학의 관점에서는 우리와 같은 비전공 일반인이기에 그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이를 몰랐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세균과 박테리아의 차이를 알게 해준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은 나에게 더 많은 사실들을 알게 해줬다. 어쩌면 내가 이 분야에 너무도 무지했기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진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무슨 고백의 시간 같다. 나는 메르스와 사스의 병원균이 같은 이름이며 그 이름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것도 책을 보고 알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번에 뚝하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라 아니라 이전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지.


바이러스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세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면, 책을 읽으면 세균들과도 친해진다. 지금 기억나는 이름은 '(황색)포도상구균'이다. 우리 피부에 많이 존재하는데 손에 상처가 나서 감염이 되면 이 녀석이 용의자 1호다. 이름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나 한자를 풀어보면 쉽다. 포도(포도) 모양(상)처럼 생긴 동그란(구) 세균(균)이다. 이렇게 관심 가져서 이름을 풀어보니 처음의 낯선 느낌과 달리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가.



세균 하나를 더 소개하자면 다들 한번은 들어 봤을 '대장균'이다. 대장균으로 한 가지 고백을 더 해야겠다. 이번 서평에서는 양심선언을 많이 하게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부끄러운 고백이 혹시나 나와 같이 느낄 사람들에게 '당신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는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해서 그냥 살짝 넘어갈 수 있음에도 밝히는 것이다. '대장균'은 '캡틴'처럼 강한 '세균'이라서 대장균인 줄 알았으나 우리 몸 안의 장기 중 '대장'에 있는 세균이라는 뜻으로 대장균이었다. 이 대장균은 대장에 있을 때는 참 우리에게 이롭게 작용하는 '유익균'이지만 대장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각종 감염을 일으키는 '병원균'으로 활동한다. 그런 위생학적인 관점을 반영해서 독일에서는 여자 유치원 생들에게 대변처리교육을 할 때 요도감염을 막기 위해 앞에서 뒤로 닦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다른 세균들도 그런 특성을 보인다. 세균도 있어야 할 때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할 때 없어야 하는 '낄끼빠빠'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책 제목<세균, 두 얼굴의 룸메이트>처럼 세균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유익하기도 해롭기도 한 우리 몸의 동반자임을 알게된다.


책의 저자는 독일에서 미생물학과 위생학 교수로 미생물과 위생 전문가다. 다소 무뚝뚝하고 깐깐한 이미지로 알려진 독일인 답지않게 시종일관 책에서 그는 유머를 구사한다. 읽으면 느낄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괴짜 과학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괴짜 과학자 같은 걸. 그 덕에 좀더 쉽고 편하게 읽어 나갈 수 있게 쓰인 책이다.


특히 2017년에 발표한 그의 논문으로 그는 엄청난 문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바로 수세미에 관한 것이다. 그는 수세미를 '애완동물'로 표현한다. 이것 또한 그의 유머 표현 중 하나이다. 이는 수세미에 엄청난 세균이 서식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수세미 1㎤ 속에서 540'억' 마리가 있다고 한다. 참고로 우리가 늘상 쓰는 스마트폰에는 1㎠당 1.37마리, 화장실 변기에는 1㎠당 100마리 밖에 없다. 수세미는 내부까지 고려해 3차원 단위인 세제곱센치미터를 쓰고 스마트폰과 변기는 표면의 세균이 중요하기에 2차원 단위인 제곱센치미터라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다. 세균으로 보자면 변기보다 싱크대 수세미가 '억'배나 더 오염된 것이니까. 상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 외에도 천주교 신자인 그는 성당에 들어갈 때 입구에서 손으로 성수를 찍어 성호를 그리는 것을 주목했다. 전공이 이래서 무섭다. 위생을 전공한 그였기에 이런게 눈에 띄는 게 아니겠는가. 실제로 조사해보니 성수반의 성수가 위험수치 이상으로 세귬에 오염된 것이 확인되었다. 외곽의 작은 성당에서는 정상범위 안에 들었지만 신도가 많은 성당에서는 위험치에 들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성당 입구에 성수반이 있고 사람들이 손을 담구어 성수를 뭍히고 성호를 그은 후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병문안 갔을 때 환자의 환부에 성수를 뿌려주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것을 더 심각하게 우려했다. 실제 사례도 소개되는데, 환우를 찾아간 사람이 그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좋은 뜻'에서 성수를 뿌려주는데 그 성수의 세균이 약한 환부를 통해 더 쉽게 감염을 일으키고 환자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천주교 다니시는 분이 계시다면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세균, 두 얼굴의 룸메이트>를 읽으며 우리의 상식이 얼마나 진실과 거리가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기 영역이 아닌 분야의 책을 교양삼아 읽는 것의 필요성도 느꼈다. 조금 진부한 말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분명 진실이다. 일상속에서 '단어'로 익숙해져버린 '용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니 그만큼 더 많이 보이고 와닿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다. 세균, 바이러스를 막연히 겁내기 보다는 그들에 대해 이해하여 조심할 것은 조심하고 덕볼 것은 덕보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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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드로잉 - 그림으로 시작하는 명상
김명선(환희지) 지음 / 미디어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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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만다라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불교, 명상, 인도, 요가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본 사람일 것이다. 만다라는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로 '본질'이라는 뜻인 '만다'와 '소유'라는 뜻인 '라'의 합성어로 '본질을 얻는다',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불교의 한 갈래인 밀교에서 주로 볼수 있는 동그란 모양의 탱화(불화)를 말한다. 혹시 종교적인 성격 때문에 불편해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만다라의 출발이 밀교라는 것일 뿐 책에서도 밝히듯 저자는 기존 만다라의 종교적인 느낌을 빼고 양식만 빌려 독창적으로 그려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힌두교 영향을 많이 받은 요가를 종교로서가 아닌 운동삼아 하는 타종교인들이 적지 않듯 효과가 유용하다면 종교에 관계 없이 좋은 것은 취할 수 있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만다라를 알게 된 것은 인도에 여행갔을 때였다. 밀교는 주로 티벳을 중심으로 전해지기에 내가 만다라를 만났던 상점도 주인이 티벳사람이었다. 동축을 중심으로 여러 원과 사각, 그리고 여러 무늬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모양은 흡사 웅장한 궁전의 지도를 연상하게 했다. 그리고 사용하는 색깔의 종류도 다양하고 금색, 은색 도료까지 더해져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티벳이나 인도에서는 만다라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대학전공도 있다고 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만다라를 사지는 못하고 구경만했다. 상점에서는 단기로 만나라 클래스도 열고 있다고 해서 한번 해볼까 잠깐 생각했지만 그림에 재주가 없는 내가 하루 이틀 배워서 되겠나 하는 생각에 엄두도 못내고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해볼껄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 차에 이 책을 보게되어 만다라를 한번 배워 볼 기회구나 싶었다.


책에서는 만다라를 현재를 마주하고 과거를 치유하는 명상 도구로 소개한다. 흔히 사람들은 명상은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오래도록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명상이란 마음의 고요,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도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는 말이 있다. 가고 서고 앉고 눕고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움직일 때나 멈춰있을 때나 늘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명상이고 수행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시중선이라는 말도 있다. 시끄러운 시장 바닥 한 가운데서도 명상을 하듯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명상이라는 것은 반드시 가만히 앉아서만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만다라를 그리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순간에 깨어있고 마음을 고요히 할수 있도록 했다.



책의 사용법은 각 장마다 저자가 상세히 언급한 명상 지침을 읽고 명상의 시간을 가진다. 이때 명상은 좌선이다. 그 후 차분해진 마음을 잘 유지하면서 만다라를 따라 그리는 식이다. 책에는 31가지의 만다라 도안이 담겨 있다. 만다라를 혼자서 그리지 못해도 괜찮다. 이미 저자가 그려놓은 만다라 위를 덧대어 그리거나 색칠하면 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생긴다면 스스로 처음부터 그려 볼 수도 있다. 만다라의 단계가 넘어갈수록 저자의 도안 스케치의 빈공간이 많아지고 마지막 만다라에서는 하얀 백지가 있어 독자들이 단계적으로 도전해 볼수 있도록 하였다. 필기구로 저자는 스테들러의 피그먼트라이너 세트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나는 모나미의 삼색 플러스펜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만다라 드로잉을 위한 책이지만 명상 지침이 잘 설명되어 있어 명상입문서로도 부족하지 않게 느껴진다. 호흡, 생각, 존재, 용기, 마음, 습관, 행복, 평화, 용서와 같은 주제를 제시하고 명상 시 몸의 자세나 마음가짐에 관한 설명까지 상세히 수록되어 있어 마치 템플스테이의 명상 클래스에 온듯한 기분이 든다. '멈추는 연습', '그냥 하기 법칙' 같은 감정 컨트롤 테크닉이나 '감정은 내가 아니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 '지금, 여기', '삶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와 같은 울림있는 문구들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로가 되어준다.


책에는 한가지 장치가 더 있는데 만다라 마다 상단에 QR코드가 있다. 핸드폰을 사용해서 QR코드를 따라가보면 명상음악이 나온다. 명상음악은 집중력을 끌어 올리고 지친 마음을 효과적으로 힐링하도록 돕는다. 책 뒷 부분에서는 앞에서 다룬 만다라가 어떤 마음에서 더 효과적인지 분류해 두었다. '욕망을 관찰하게 돕는 만다라', '좌절 극복을 돕는 만다라', '용서하는 마음을 품는 만다라', '자존감을 회복하는 만다라' 등 여러 상황에 대해 적절한 만다라를 소개해 두었다. 명상음악의 느낌과 만다라의 의미가 서로 잘 매칭되어 선곡되어있다.


문득 만다라를 그리는 티벳승려 이야기가 생각난다. 만다라가 명상의 좋은 도구가 될수 있는 이유를 시사하고 있어 잠깐 이야기 해본다. 한번은 달라이라마가 티벳스님들이 있는 한 건물을 방문하게 되었다. 티벳불교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만다라를 만들어 환영과 축복을 표현하는 문화가 있다. 건물 바닥을 가득 채울 만큼 엄청난 크기의 만다라를 승려들은 수일을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 꼭 그리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래, 꽃, 밧줄 같은 다양한 사물들을 배치하여서도 만든다. 만다라가 다 완성되고 얼마 후 정서장애가 있는 한 사람이 그걸 헤집고 다니며 산산히 망쳐놓는 일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경악을 했지만 티벳승려들은 평온한 모습으로 다시 만다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에 만다라는 하나의 예술작품이었지만 라마승들에게는 매 순간 깨었음으로 마음을 편안히하고 무상의 교리를 자각하는 하나의 수행 과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은 만다라에 대해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 공부나 명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혹, 명상과 만다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예쁜 책이 새로운 도전을 위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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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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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작품들이 자주 눈에 띈다. 과거 해외 문학이라면 미국이나 일본 문학이 중심이었는데, 중국 문학들도 대중화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인간의 피안>은 SF소설로 하오징팡이라는 중국 작가가 쓴 소설이다. 나는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피안'이라는 단어에서 '유토피아'를 떠올렸다. 불교의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에서 '가자, 가자, 피안(저 언덕)으로 가자'하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피안은 깨달음의 세계, 더 이상 괴로움이 없는 이상향의 세계를 뜻한다. 피안의 상대말로는 차안(이 언덕)이 있는데, 괴로움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뜻한다. 불교에서 가져온 이상향적인 의미에 따라 작가가 궁극적으로 가키는 것이 '피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차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피안'을 잠깐 빌렸을 뿐이라 말하며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차안'임을 말한다. 차차 나오겠지만 작가가 말하는 '차안'은 인간이고 '피안'은 인공지능이다. 작가가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피안>은 하오징팡이 쓴 6가지 단편소설이 실린 단편소설집이다. 모든 소설은 인공지능이 일반화 된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들 하나하나가 참 정교하게 쓰여진 SF소설로 인공지능이라는 최점단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인 하오징팡의 놀라운 이력도 한 몫한다. 하오징팡은 아시아 랭크 2위 칭화대학에서 물리학 학사와, 천체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 중국발전연구재단에서 국가정책 연구원으로 일하며 '인공지능'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과학을 전공하고 AI 분야에서 일을 한 그녀의 경험이 소설의 현실성과 사실성에 밑바탕이 되었다.


6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흥미로우면서도 던지는 메세지는 강력했다. '당신은 어디에 있지'에서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사이보그가 아바타처럼 자신을 대신하여 여러 곳에서 동시에 등장하고 일을 처리한다. 나의 분신같은 사이보그가 나를 대신하는 것은 효율성으로 보면 훌륭하지만 과연 그런 시대에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서 재밌는 물건이 나온다. 최첨단 치마라는 게 있어서 입고 있는 사람의 기분을 감지해 위로가 필요하면 온도를 올리고 몸을 부드럽게 압박해주어 마치 다른 사람이 허깅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사람의 체온과 사람의 몸이 아니라 사람은 멀리에 있고 최종적으로 기계가 대신 위로해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던 기사가 떠올랐다.


'사랑의 문제'에서는 인간의 말과 인공지능의 말이 서로 다를 경우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AI도 복수를 할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전차 안 인간'에서는 기계와 인간이 싸우게 되고 다행이 당신은 강력한 기계로부터 선택을 받아 안위를 보장받지만 대신 선택받지 못한 인간들을 억압하도록 강요된다면 당신은 기계의 편에 서겠는가, 인간의 편에 서겠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마치 일제시대에 배부르고 등 따신 배신자가 될 것인가 풍찬노숙의 독립군이 될 것인가 하는 그 시대 사람들의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건곤과 알렉'에서는 초고도화 슈퍼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3살 아이를 분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이의 순수하고 즉흥적인 행동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슈퍼 인공지능은 어떻게 분석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나는 5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이는 꼭 뭐든 자기가 직접 하려고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도 내가 먼저 누르면 난리가 난다. 자기가 누르지 않았다고 울고 소리질러 기어이 내가 누른 것을 취소하고 자기가 다시 눌러야 울음을 멈춘다. 여기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는데 인공지능은 그 모습을 이렇게 분석했다. "아이는 직접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그 과정을 완성하길 고집함으로써 효율을 끌어올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작가에게 딸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은 분명 양육하면서 영감 받아 쓴 것이라 추측해본다. 아이의 행동을 인공지능의 관점을 빌려 색다르게 표현한 것이 재밌다. 한편으로는 아이라는 근원적인 인간의 모습에서는 효율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에서 인간은 효율과 거리가 멀 때 더 인간답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효율이라면 양잿물도 마실 것 같은 요즘 시대에 곱씹어 볼 만한 지적이다.


양으로 보나 제목의 연관성으로 보나 '인간의 섬'을 작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로 생각했을 것 같다. '인간의 섬'에서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하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효율적인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옳은가, 완전하고 확실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면서 효율적이까지한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두려움, 분노, 슬픔을 느낀다. 이런 감정적인 요소들이 실제로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싸울 때를 생각해보면 더 잘 이해가 된다. 대게 감정 싸움이 말 싸움이 되고 주먹 싸움이 된다. 최악에는 이성을 잃고 살인도 저지른다. 과연 이렇게 감정적인 인간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옳은가. 오히려 완전하고 이성적인 존재에게 통제되는 것이 전 지구를 생각해 볼 때 유익하지는 않을까. '인간의 섬'을 읽으며 단순한 옳고 그름의 문제로 결론 짓기는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꼽는 이 책의 가장 최고의 소설은 '영생 병원'이다. 6개의 소설 중 이 소설이 유일하게 인공지능이 메인이 아니다. 여기서는 인간복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죽어가던 사람도 살려낼 만큼 잘하는 병원이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죽어가던 사람은 사실 이미 죽었고, 살아 나온 사람은 죽어가던 사람의 몸과 두뇌를 그대로 복사한 복제인간이다. 가족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것을 알게되면서 생기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진실을 밝히려는 주인공과 그 병원의 원장 사이의 대화 중 내 머리를 치는 문장이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위로이지 진실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단순히 본다면 이는 분명한 범죄다.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 옳은 것이고 병원은 잘못한 것이다. 가족들을 속였으니 사기죄이고, 사람을 복제했으니 의료윤리적인 문제도 있다. 환자는 병원에서 죽었고 살아있는 것은 복제인간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병원에서는 할만큼 다 했다. 환자는 어차피 죽게 된다. 자신이 죽고난 후 가족이 상처받고 가정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자신을 대신할 존재로 인해서 환자는 마음 편히 마지막을 맞을 수 있고 그들의 가족들의 행복도 지켜진다. 그렇다면 과연 병원으로부터 피해 본 사람이 있는가, 병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가. 그리고 내 기억과 내 몸이 그대로 똑같이 복제된다면 과연 진짜 나와 가짜 나라는 것이 타인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함께 한 추억도 기억도 모두 같은데 둘 모두가 진짜가 아닐까. 내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쓰라린 진실이 중요한가, 달콤한 거짓이 중요한가. 행복하지 않은 진실이 진실한 것인가, 행복한 거짓이 진실한 것인가. 행복한 꿈을 꾸는 이를 괴로운 현실로 굳이 깨워야 하는가. 어느 한 쪽을 선택하기 참으로 난감하고 어려운 주제였다.


소설의 시사하는 하나하나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딥러닝의 등장으로 AI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알파고로 더 이상 바둑에서는 인간이 기계를 이길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바둑에서 끝나지 않는다. 많은 해외의 권위있는 논문과 보고서가 십수년 내에 상당한 일자리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 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 소설이 결코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이미 인류는 인공지능의 심지에 불을 붙었다. 이제 '얼마나 빨리' 되느냐만 남은 것이다.


이 책은 빠르게 도래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인공지능이 과연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소설을 읽고 나니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인공지능에 관심을 가진다는 작가의 말을 알 것도 같다. 이런 엄청난 세상을 SF소설로 구현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답을 독자들에게 암시했다. 하오징팡의 답이 잘 담긴 부분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만약 우리가 더는 눈빛을 통해 소통하지 않고, 더는 데이터 이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며, 인생에는 이익의 최적화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 않고, 위대한 예술가가 전해주는 전율을 느끼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도 만물의 영장으로 불릴 자격을 박탈당한 채 그 자리를 다른 존재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정신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그 어떤 종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말이다. 미래와 관련해서 내가 유일하게 우려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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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노리 세계 그림책 6
미야니시 타츠야 지음, 이정연 옮김 / 아이노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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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이 <네!>다. 내가 본 책 제목 중 가장 짧은 것이 아닌가 싶다. <네!>는 영아를 위한 그림책이다. 네이버에 '영아'를 찾아보니 생후 만 2년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보통 돌 전에 아이를 부르면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정도로 반응을 하지만 돌을 지나면 뇌와 신체가 발달하면서 좀 더 큰 리액션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부모가 아이를 호명하면 손을 들어 반응하는 놀이를 이 책으로 해볼수 있도록 해서 아이도 재밌고 부모도 기쁜 장면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안다. 어른에게는 너무나 시시하고 재미없는 부분에서도 아이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잘 찾아낸다. 대표적인 게 '까꿍'이다.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손을 치워 얼굴을 내미는 것에서도 아이는 신기함을 느끼고 재밌어한다. 세상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한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사실 고개도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뒤집고 기고 서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이의 처음을 알기에. 아이의 원초적인 소리와 사소한 표정을 매개로 소통했던 부모로서는 아이가 보편적 소통수단인 '언어'를 이해하고 반응을 보이니 이는 어른에게도 신비로운 일이다.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하지만 '단순하다'는 표현은 어른의 표현임을 기억하자. 처음에 등장하는 고양이를 비롯해 강아지, 꽃게, 코끼리, 달팽이, 유령, 아이 순으로 등장한다. 앞장에서 이들을 부르면 뒷장에서 웃으며 '네!'하고 반응하는 그림이 나온다. 아직은 '언어'보다는 '소리'에 친숙한 아이들을 위해 '야옹야옹', '멍멍', '뿌우' 같은 의성어나 '싹뚝싹뚝', '꼬물꼬물'같은 의태어로써 아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반응할 때 단순히 손만 들어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각 그들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표현했다. 처음 등장하는 고양이는 앞발로 다음 개는 긴 귀로, 꽃게는 집게로, 코끼리는 코로, 달팽이는 쭉 뻩어나온 눈으로, 유령은 기다란 목으로, 그리고 마지막 아이는 손을 들어 대답한다.


5살이 된 우리 아이에게는 어쩌면 이 책은 쉬운 책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당연한 말이겠지만 책에 나이를 매기는 것은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느낀다. 특히 어릴수록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보면서 책에 매겨진 나이와 아이의 나이를 바로 매칭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기에 아이들은 '연령'보다 '월령'을 따지지 않던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24개월로 정의된 영아책이라고 해서 유아가 못보는 게 아니더라는 이야기다. 오히려 유아인 우리아이는 이 영아책을 옆에 있던 다른 유아책보다 좋아했다.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들을 부를 때마다 아이를 처다보면서 불러줬고 주인공들이 반응을 할 때마다 우리 아이도 손을 들어 '네!'하고 반응했다. 이름을 부르고, 대답하며 몸으로 반응하는 이 당연한 행위에서 아이는 재미를 느꼈다. 특히나 그 상대가 늘 바빠 잘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아빠여서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자뻑인가.


우리 아이가 좋아했던 캐릭터는 꽃게와 유령이다. 나는 특히 유령에 주목한다. 이 나이 때 아이들은 공룡, 괴물, 유령에 환장한다. 엄청나게 크고 힘세고 무서운 존재들에 겁을 먹으면서도 또 좋아하니 참 묘한 심리다. 이러한 현상의 증거가 바로 아이들 만화에 그렇게나 공룡이 많이 등장하고 괴물들이 나오며 최근에는 '신비아파트'같은 귀신이 등장하는 만화가 인기를 끄는 것이라 하겠다. 작가는 일본사람인데 일본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작가는 아이들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에 분명 '유령'을 등장시켰을 것이다. 유령을 불렀을 때 유령은 목을 길게 잡아 빼면서 대답을 한다. 아이 책인 것을 감안해 귀엽게 그려놓았음에도 아이에게 가까기 책을 가까이 대니 움찔하는 모습이 귀엽다.



그리고 책은 손을 드는 것에 상응하는 그림을 담아내다보니 보통 책들은 좌우로 넘기는 구조인 반면 이 책은 상하로 넘기는 구조다. 좌우로 넘기는 책에 익숙하고 상하로 넘기는 것은 스케치북에서나 경험해 봤을 아이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부분 또한 재미로 느껴질 것이다. 그림들은 대체로 귀엽고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선의 굵기도 두껍게 되어 있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영아는 영아대로 유아는 유아대로 부모의 적극적인 놀이 의지에 따라 충분히 아이들에게 재밌게 다가갈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매번 느끼지만 그림책은 아이들에게는 책의 형태를 빌린 장난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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