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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 - 보리수, 바다거북 그리고 실론티 나의 스리랑카 견문록
고선정 지음 / 김영사 / 2020년 4월
평점 :
<나는 스리랑카주의자 입니다>는 스리랑카와 사랑에 빠진 한 여행자의 스리랑카 애찬론이 가득 담긴 책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동남쪽 인도양에 있는 남한의 3분의 2 크기 되는 섬나라로 지도로 보면 꼭 물방울처럼 예쁘게 생겼다. 저자는 스리랑카를 소개하는 '사진 한 장'을 보고는 첫 눈에 반해 무작정 비행기표를 끊고 여행을 떠났다. 책을 읽다보면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중간중간 세계여행에 대한 그녀만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나온다. 이미 여행이란 다녀볼 만큼 다녀본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25년간 하던 일도 그만두고 여행지를 주거지로 바꿔버린 스리랑카의 매력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책은 가이드북이 아닌 에세이로 스리랑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길라잡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그녀의 좌충우돌 리얼 로컬 여행기에는 스리랑카의 사회, 문화, 종교, 정치와 함께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밝고 따뜻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도 들어있어 스리랑카를 곧 갈 사람에게도 혹은 스리랑카에 갈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도 유익한 책이었다. 이 책은 물방울처럼 생긴 섬나라 스리랑카를 '북부 지역', '동부 내륙 지역', '중서부 지역', '중남부 고산 지대', '남부 해안과 콜롬보'로 5개 장으로 나누어 다루고 있다.
잠깐 책의 디자인을 이야기하고 가야겠다. 요즘 책들은 내용 뿐아니라 디자인도 예쁘게 나오는데, 이 책에서도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들이 보였다. 책을 보면 녹색 바탕에 스리랑카의 여행지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고 오랜지 색 'Sri-Lanka'라는 영문에는 붉은 금박이 부분적으로 입혀져 있어 번쩍번쩍 인도양의 진주라 불리는 스리랑카의 '보물섬'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참고로 신밧드가 발견한 보물섬이 스리랑카다. 표지 재질도 '큐리어스 스킨'이라는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지문이 생기질 않는 종이로 되어있어 고급스러움까지 더한다. 크기는 보통 책보다 살짝 작으면서도 두깨가 500페이지에 달해 아담하고 귀여우면서도 묵직한 느낌을 주어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뭔가 알수없는 만족감이 밀려오는 듯하다. 책 내부에 스리랑카 지도나 큰 지역을 나누는 장과 여행지를 나누는 절의 도입부 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오밀조밀 그려놓은 예쁜 그림은 책에 애착을 가게 만든다.
스리랑카는 기본적으로 불교의 나라이지만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다. 종교에 따라 종족이 구분되는데 불교를 믿는 토착 세력인 싱할라족과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 이주해 온 타밀족이 있다. 타밀족은 인도 남부에 살았던 사람들인데 지리적으로 인도 남동부에 있는 스리랑카가 가까워 역사적으로 침략과 이주가 이어졌고 그 인연의 시작은 무려 2천 5년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 연유로 스리랑카는 싱할라어가 표준어이지만 타밀어도 공용으로 쓰이고 있다.
두 종족은 사는 지역이 구분되어져 있으며 서로 다른 종족의 지방으로 가는 것을 꺼려한다. 실제로 타 종족의 지역에 갔다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책에 언급된다. 두 종족의 갈등으로 발생했던 내전은 27년간 지속되었고 2009년에 종식되었다. 10만명의 사상자와 백만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킨 끔찍한 내전은 표면적으로는 끝이 났지만 아직도 사람들 마음 속에 두려움과 증오의 상처로 남아있는 듯하다.
마치 오랜 옛적부터 왜구가 한반도를 수시로 침략해 왔듯, 인도 남부 타밀족들은 스리랑카를 숱하게 침략해왔다. 그러다 16세기부터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에게 식민지배를 받게된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자원과 문화유산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 중 대표적인 유산은 <트리피타카야>로 팔리어로 된 '삼장'이며 이는 불교 역사상 최초로 성문화된 경전이자 인류 역사상으로도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팔만대장경>의 원류가 바로 이 경전이다.
1948년 스리랑카는 제국주의의 지배에 독립하지만 정치적 혼란을 겪었고 식민지 이후에도 영국은 타밀족과 싱할라족 사이의 감정을 조장하여 싱할라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런 감정의 갈등이 심화되어 1983년 내전이 발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27년이나 이어진 것이다. 일제 독립 이후 강대국의 이념에 조종당해 발발했던 3년의 한국 전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제국주의 잔재가 종교 갈등을 조장하여 발발시킨 27년의 스리랑카 내전의 처참했을 비극이 더욱 공감되었다. 스리랑카의 역사에 묘하게 우리의 역사가 오버랩되어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주제를 조금 돌려보자. 책의 표지에 스리랑카를 '보리수', '바다거북', '실론티'의 나라라 소개했다. 앞서 스리랑카의 토착민인 싱할라족은 불교를 종교로 하며 전국민의 70%정도가 된다. 불교에서 '보리수' 나무는 깨달음을 상징하는데, 부처님이 불교 4대 성지로 잘 알려진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셨기 때문이다. 과거 보드가야의 부처님이 성도하신 곳에 세워졌다는 마하보디사원에 갔을 때 그 보리수 나무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 나무는 아니었다. 스리랑카의 보리수를 옮겨 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된 영문일까?
불교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전륜성왕으로 추앙받는 인도의 아쇼카 대왕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폭군이면서 인도 역사상 최고의 성군의 평가를 받는 정말 다이나믹한 인물이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99명의 형제를 죽인 악명을 남겼고 한편으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여 최초로 인도 전국을 통일한 위대한 업적도 남겼다. 여기서는 그의 불교에 대한 인연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데, 무시무시했던 그는 불교 탄압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후에 잔혹했던 삶에 회의를 느껴 오히려 불교에 귀의하였고 반대로 불교 부흥에 힘써 역사상 불교를 가장 번성시킨 왕이 되었으니 정말 다이나믹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현존하는 불교의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아쇼카 대왕이 세운 '아쇼카 석주' 덕분이었다. 막강한 위세를 자랑했던 그는 인도 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도 영향력을 미쳤는데 그 힘은 불교 전법에도 사용된다. 이는 우리의 역사와도 이어지는데 아쇼카왕이 신라에 불상을 만들 금과 철을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한다. 아쇼카 대왕은 보드가야의 보리수 묘목을 전법사와 함께 스리랑카로 보낸다. 그 이후 인도 역사에서 불교는 완전히 쇠퇴하고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도 죽게되는데 지금의 보드가야의 보리수 나무는 스리랑카로 가져갔던 보리수를 다시 가지고와 심은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가모니의 보리수 나무는 인도가 아닌 스리랑카에 있다.
불교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는 더 보이는 것이 있었다. 부처님께 뿌자(의식)를 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쟁반을 가지고 왔는데 그 안에 '키리바스'라고 하는 밀크라이스가 있었다 했다. 저자는 왜 밀크라이스를 진상하냐고 묻자 들고 있던 여인은 이른 아침이라 부처님께 부드러운 밥을 올리는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부처님이 성도하시기 직전 받았던 공양이 수자타의 우미죽, 즉 우유(牛)와 쌀(米)로 만든 죽인 것을 안다면 왜 밀크라이스를 뿌자에 가져왔는지 충분히 설명이 될 것이다.
'아담스브리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앞서 스리랑카는 섬나라라고 했다. 그런데 위성사진으로 확대해보면 인도의 동남부와 스리랑카가 실같은 열도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아담스브리지'인데, 역사에 부처님이 스리랑카에 법문을 하러 3번 방문하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이 길로 전법의 길을 떠나셨다 한다. 과거에는 인도와 스리랑카가 이 길을 통해 육로로도 왕래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수심이 깊어져 흔적만이 남아있다. 관련해서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일부 남아있는 바닷길 위로 버스가 다니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했다. 아참, 버스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나라 버스는 앞쪽에 노약자석이 있는데 스리랑카 버스에는 앞 좌석이 스님 전용석이라 한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좀 해볼까. 저자는 여자 혼자 단신으로 다니다 보니 늘 위험이 도사리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위험으로 그녀에게 동정을 느껴 쉽게 마음을 열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재밌는 부분 중 하나는 그녀가 스리랑카 친구들에게 밥을 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닭고기 세 조각을 담은 외소한 그녀와 다르게 덩치 큰 스리랑카의 남자 사람 친구들은 고작 한 조각씩 올린다. 스리랑카의 불교 신자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육식을 해도 닭고기나 생선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육식을 할 때도 한 조각 정도만 먹는데, 오계 중 불살생의 계율을 통해 가능한한 살생을 줄이고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만 하겠다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비롯된 것이다. 종교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식습관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례라 하겠다. 인간의 맛에 대한 탐착으로 좁은 사육장, 열악한 환경에서 길러져 그 끝에는 도축장의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가축들이 떠올랐다. 육식을 즐겨하는 나이기에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만 마음 한켠에 있을 뿐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식문화로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실천하고 있는 스리랑카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5, 6살 아이들이 벌이는 마라톤 대회도 인상적이었다. 땡볕에서 그것도 맨발로 하는 마라톤을 아이들은 자진해서 참가하고 있었다. 나도 5살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부모에게 한참 떼쓰고 보챌 그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완주를 마치고 어른들은 걱정도 말리지도 않고 응원으로 자랑스럽게 지켜본다. 그리곤 완주한 아이들에게 다가가 가득한 축하와 다리를 마사지를 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저자는 요즘 한국에서 과연 땡볕에서 맨발로 장거리 경주를 하려는 어린 아들딸을 그냥 두고보는 엄마는 없을 것이라 말한다. 공감한다. 하지만 스리랑카에서 그것은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마음가짐을 길러가는 것이 성장이라면 생물학적으로 같은 나이의 우리나라 아이들보다 스리랑카의 아이들이 더 어른스럽다 할 수 있으리라. 마음이 아프더라도 아이의 고통과 도전을 묵묵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줄 수 있는 부모와 그것에 기꺼이 도전하여 자신감 성취하는 아이, 그런 건강한 모습이 요즘의 우리나라에서는 희귀한 것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말한 "한국의 1980년대쯤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라는 말처럼 과거에는 우리는 그랬는데 어째서 요즘은 그렇지 않게 된 것일까. 선진국에 걸맞게 육아환경도, 교육환경도 분명 대체로 좋아졌지만 모든 것이 과거보다 좋아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는 스리랑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스리랑카를 소개할 때 '실론티'를 말해준다 한다. '실론티'는 홍차의 대명사로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 지금도 그 이름의 음료도 팔고 있다. 여기서 '실론'이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스리랑카는 현재 전 세계의 홍차 소비량의 50%에 해당하는 30만톤 이상을 매년 생산하고 있다. 홍차하면 인도의 다즐링도 유명한데,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차의 상당량은 영국에서 소비된다. 여기서 홍차의 유래가 나오는데 흥미로워 소개해본다. 원래 유럽으로 처음 차가 넘어갈 때는 녹차가 넘어갔다한다. 하지만 과거 뱃길이 시간이 올래 걸리다 보니 배안에서 차들이 발효가 되어 시커멓게 변해버린 것이다. 워낙 차 값이 비쌌기에 무역상들은 색이 변해버린 검은 녹차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우려마셨는데, 그 맛이 쌉쌀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냈기에 의외로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 우연한 해프닝으로 홍차의 기원이 시작되었다. 실제 홍차를 우려보면 붉은 빛을 띄기에 왜 영어로 '블랙티'라고 할까 생각할 수 있는데, 발효된 녹차의 색이 검었기 때문에 그리 불리게 된 것이다.
저자가 만난 동물 중 바다거북이와 흰긴수염고래는 내가 스리랑카를 가야할 이유를 더해주었다. 아이들은 참 고래를 좋아한다. 아이가 졸라서 다양한 종류의 고래 피규어를 사주게 되었는데,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그렇게 많은 종류의 고래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고래 중 으뜸은 단연코 '흰긴수염고래'이다. 흰긴수염고래 한 마리의 무게는 코끼리 스물다섯 배의 무게와 맞먹으며, 몸 길이가 무려 28미터(아파트 9층 높이)로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아이가 고래를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보여줄까 하다가 세부에 고래상어가 있다해서 아쉬운대로 그거라도 언젠가 보여줘야지 했는데, 스리랑카에서는 그 '흰긴수염고래'를 볼수 있다고 하니 아이만큼이나 나도 설레였다.
저자가 스노클링을 하며 바다거북이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이 바다거북을 보면 운이 좋았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서는 아예 이름이 '터틀 비치'인 곳이 있어 매일 매일 거북이들을 만날수가 있다 한다. 스리랑카어로 '캐스바'라 불리는 바다거북은 이미 사람들과 많이 친해져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먼저 사람에게 다가오는 친밀함마저 보였다. 스리랑카의 히카두와에는 거북이 보호소가 여러 곳 있어서 멸종 위기에 처해진 거북이의 개체 보존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여행하다가 한국말이 유창한 한국에서 일했었다는 이력의 스리랑카인을 만나면 살짝 긴장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나쁜 처우를 받지 않았나 내심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 대목을 읽었을 때 나도 한 가지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과거 몽골에서 여행할 때였다. 우연히 한 프랑스 가족의 벤을 얻어 타게 되었는데 그 차의 몽골인 기사가 내가 한국인 것을 알고는 우리말로 인사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과거 한국에서 일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할 줄 아는 한국어는 몇 문장에 그치는듯 했고 의사소통을 하기엔 부족해 보였지만 한국어를 아는 것이 뭔가 그를 우쭐하게 만들고 있는 듯 보였다. 어쨌든 타지에서 우리말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가운 마음이 들어 몇 마디 받아줬는데 곧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내 말을 가로막더니 나중에는 '가! 가!'라며 개를 쫒는 손짓으로 불쾌한 행동을 남발했다. 그때 그가 왜 나에게 그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저자가 걱정했던 상황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200만명을 넘는다고 하는데 한때 "사장님 나빠요"라는 개그맨의 유행어가 있었듯 그들에 대한 차별과 같은 부당한 대우, 회사의 임금체불, 사장의 갑질과 같은 여러 문제들은 여전히 사회면에 보도되고 있다. 관련 기사를 읽을 때마다 안타까워만 했던 그 일이 돌고돌아 내가 그들의 나라에 갔을 때 그 과보를 돌려받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주노동의 아픈 역사가 있다. 멀게는 일제시대 지구 반대편의 미주까지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갔었고 가까이는 60, 70년대 파독 광부나 간호사로 남의 나라 궂은 일을 하러 우리 국민들이 갔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도 과거 그런 처지로 힘들었으면서 어째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기는커녕 차별과 멸시로 대하고 있는가. 개도국을 갔을 때 한국말 잘하는 현지인이 혹시나 한국에 대한 악감정이 있을까 걱정할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에도 사회적 관심을 충분히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스리랑카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하면, 입시제도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을 진학하고 싶은 아이들은 세 과목을 선택해서 심화학습을 시키고 시험에 합격하면 대학입학은 물론 교육비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단 불합격하면 대학에 들어갈 기회가 없다고 한다. 한번의 기회만 주어진다는 것이 조금 불합리해 보일 수 있지만 학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한다는 것은 선진적으로 느껴졌다. 한번의 기회를 주고 합격하면 국가가 다 책임져주고 떨어지면 다른 길을 찾아가는 제도가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게 여겨지기도 한다. 학생들 입장에서도 사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데 남들 다 가니까, 혹은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진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극심한 학력 인플레로 전공과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그런 장농 학위라면 뭐하러 재수, 삼수해서 대학갔으며 그 사이 학비로 얼마나 부모님의 등꼴과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던가. 그런 걸 생각해볼 땐 차라리 저런 제도로 일찌감치 아니다 싶을 땐 다른 길을 찾게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문장 중에 마음에 꽂히는 말이 있어 소개한다. "편한 방법을 마다하고 굳이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데도 버스나 기차 여정을 고집한 이유는, 그때는 그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생각해서였던 것 같다." 스리랑카의 물가는 싸다. 여행사의 밴이나 전용 택시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기사가 딸린 차를 전세내도 그렇게 비싸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그 편한 길을 놔두고 덜컹거리는 버스와 연착되는 기차를 타며 굳이 사서 고생을 한다. 나도 인도여행을 할 때 그랬다.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서 고생하는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지 몰랐는데 저자가 그 심리를 '통과의례'라는 네 글자로 너무 잘 표현해 주었다. 국문학과 출신이라 이렇게 글을 잘 쓸까. 저자의 글은 참 세련되고 감성적이면서 전문적인 느낌이 난다. 처음 책을 낸 사람 같지가 않다. 분명 개인적으로라도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일 것이다.
25년간 일을 했다면 적어도 40대는 될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는 평생을 쌓아온 한국에서의 커리어도 포기하고 혈혈단신 낯설은 땅과 사랑에 빠져 그곳에 정착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지금 스리랑카에서 지낼 땅을 사고 집도 짓고 있다 했다. 나는 도대체 스리랑카의 무엇이 중년의 여성으로 하여금 그런 인생의 경로를 틀어버릴 용기를 내게 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책을 읽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이제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이 책은 누구라도 스리랑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할 그녀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보리수와 실론티, 바다거북이와 흰긴수염고래가 있는 나라, 인도양의 진주, 알리바바의 보물섬, 스리랑카. 이 책은 기꺼이 새로운 세계로 독자를 초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