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인원 - 끝없는 진화를 향한 인간의 욕심, 그 종착지는 소멸이다
니컬러스 머니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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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기적 유인원>은 아프리카 유인원의 한 종에 속하는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망해가는가에 대한 우리 인간 종의 일대기를 통찰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기적 '유인원'>의 제목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과학계 고전이자 걸작 <이기적 '유전자'>의 패러디이자 오마주를 의미한다. 1962년 왓슨과 크릭은 DNA의 구조를 밝힌 공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나선형 DNA의 구조의 발견은 유전자의 비밀을 밝히는 연구에 상당한 탄력을 가했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14년 뒤인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세상에 나온다. 진화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인간은 단순히 유전자가 타고 있는 자동차나 그릇 정도에 불과하다는 그 책은 나왔을 당시 생물학계를 넘어 많은 대중들에게 폭발적 반향을 일으킨다. 더 강력해진 유전자 이론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통해 무신론을 주장하여 다시 한번 종교계를 비롯해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다. 그런 배경을 알면 이 책 <이기적 유인원>의 표지 한 가운데 '리처드 도킨스'의 한줄평이 왜 그렇게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이 책의 구성은 '지구', '발생', '몸', '유전자', '임신', '지성', '무덤', '위대함', '지구온난화', '우아함' 총 10장으로 이뤄진다. 앞서 이 책이 인간 종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했다. 목차를 가지고 말짓기를 해서 책의 내용을 표현해 보면, 인간의 종이 있기 위해서는 '지구'가 전제되어야 하고 종이 '발생'되어 '몸'을 갖추고 '유전자'에 의해 진화되어간다. '임신'을 통해 종이 이어지며 '지성'을 무기로 살아남았고 때가 되면 죽어 '무덤'으로 간다. 문명을 발전시킨 '위대함'이 있으나 이면에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여러 반지구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우아함'의 종말 뿐이다.


어떤가, 시작도 과정도 좋은 데 끝이 너무 암울한가? 저자 니컬러스 머니는 균류 생물학 교수로 생물학자이다. "인간이 멸종하면 나머지 자연계는 환호할 것이다."라는 문장이나 "21세기에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은 명예의 상징이 아니라 환경 테러 행위이다."에서 처럼 나는 그의 문체에서 비관적이고 비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점차 나는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인간의 입장에서 이 글을 읽었기에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머니는 우리 종에 대해 완벽한 객관화가 되어 있었다. 비록 자신은 인간이지만 인간 아닌 존재의 입장에서 서술해 나간다. 서술의 대상과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3인칭 관찰자 시점같은 것이랄까. 외계인이 지구의 인간을 분석하듯 전개해나가는 그의 비관적이고 비꼬는 듯한 문체는 그가 떠미는 자료나 근거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고 쉽게 수긍이 된다. 인간에 의해 죽은 생명과 멸종된 종, 지구온난화, 대기와 해양의 환경오염, 삼림벌채, 사막화, 토양 침식, 사막화, 빙하 해빙 등의 문제와 마주한다면 파렴치한 전지구적 가해자로서 우리는 비판과 조롱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



나는 공대생 출신으로 과학분야 교양서적을 읽는 데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적게 느끼는 편이지만 이번 책은 만만치는 않았다. 그것은 내 전공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에서 생물과는 제일 거리가 있는 개인적인 이유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많이 해보았다. 생명공학, 분자의학, 미생물학,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등의 전문용어들이 등장하는데 그냥 읽고 넘어가도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은 없지만 독서를 통해 지적 놀라움과 승리감을 맛보는 것 또한 독서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읽기 어렵게 느껴지는 생경함이야 말로 우리의 무지한 부분을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임을 생각해볼 때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양장에다 마지막 페이지가 220페이지인 이 책은 그리 두꺼운 편은 아니다. 그리고 그 중 무려 47페이지가 주석이 차지하고 있어 실제 본문은 172페이지에서 끝이 난다.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한 장에 보통 15페이지가 할애되어 있는데 47페이지인 주석을 장으로 환산해보면 3장으로 전체 본문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앞뒤로 왔다 갔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본문을 계속해서 읽어 나가도 좋지만 저자가 주석에 신경을 많이 써놓은 만큼 그때그때 주석과 함께 읽으면 책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이는 한번 더 생각해보면 저자가 그만큼 본문의 주장이 객관적이며 근거가 충분한 것임을 뜻하며 전체가 참이면 결론도 참이라는 연역적 추론의 특징을 떠올려보면 저자의 주장이 충분히 신뢰할 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다보면 콩고물처럼 부수적으로 알게되는 여러 상식들도 이 책을 읽을 이유가 된다. 지구, 몸, 유전자, 지성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은 여러 분야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의 유래나 목욕용 천연 스펀지인 해면동물이 우리의 친척이라는 이야기나 인체에 대한 내용 중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내장의 길이가 평균 5미터, 이 중 3분의 2가 소장이라는 것,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무려 40조 개, 심장의 하루 박동수가 10만 번, 모든 혈관을 합친 길이가 10만 킬로미터, 뇌가 약 20와트의 전력을 소모하고, 뇌 반구 표면을 펴서 원으로 만들면 지름 39cm의 라지 피자 한판 크기가 된다는 내용들은 시시콜콜하다 할 수 있으나 굳이 찾아보지 않는 한 우리가 접하지 못하는 내용들이기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 머니가 태어나고 5년 후 영국에서는 낙태가 합법화 되었는데 그는 5년만 늦게 태어났어도 자신은 낙태되었을 거라 이야기하며 낙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낙태에 대해 어떤 의견이든 사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낙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감각을 지닌 수 많은 동물을 해부하고 학대하며 전례 없는 동물 학대를 저지르는 인간이 한편으로는 아무런 의심 없이 태아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는다. 과연 인간의 생명은 존귀하고 신성하다고 주장하면서 타 생명은 함부로 해칠 수 있는 권한은 누구로부터 부여받았는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노화에 대한 이야기 중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 분자에 불량품이 섞여 들어가는 비율이 높아져 가는 것을 열역학 제 2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는 주로 기계공학에서 기계현상인 열기관이나 냉동기에 사용되는 법칙인데 생명현상인 세포의 노화에 사용한 것이다. 또 해파리가 벌레로 치면 유충에 해당하는 유생일 때 군집에서 떨어져 나와 촉수를 지닌 종 모양의 성체가 되는데 어떤 해파리는 촉수를 몸통으로 다시 넣고 유생 군집에 재합류한 사례를 소개한다. 유생인 해파리가 성체가 되었다가 다시 유생이 되는 것은 흡사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린다. 저자의 비유를 빌리면 실버타운의 노인이 어린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재생의학자들이 영생의 비밀을 풀기 위해 해파리의 회춘능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아무튼 이 책은 여러 정보와 지식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게 채득되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한다면 '반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갑자기 반성이라고 말해서 뭔가 싶을 수 있으나, 이 책을 읽어보면 인간이 자연에게 끼친 악영향에 대해 잘 기술되어 있다. 저자 머니는 과학자로서 이기와 욕망을 가진 인간이 과학과 기술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잘 알고 있다. 이제 인간의 종은 중환자실의 시한부 환자처럼 그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이라도 과거로 회귀하려는 작고 미세한 노력들은 있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으며 인류의 멸망은 얼마나 빨리라는 속도의 문제일 뿐 이미 기정 사실화 된 것으로 진단한다.



인류의 멸종의 다룬 마지막 장의 이름이 '우아함'이라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다. 부제는 '우리는 어떻게 사라질까?'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인류에게 어떻게 사라져줘야 하는지 알려준다. '의식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잠시나마 자연에 머물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그가 말하는 '우아함'이며 이를 통해 멸종 앞에 최소한의 정신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우리가 그간 망쳐온 존재들'과 '인간에게 피해 입은 자연의 모든 희생자'를 생각하며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고 하면서 '하늘이 무너지기 전까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와 함께 고통받는 다른 존재에게 더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고 '우리가 잘해 나간다면 이 모든 것이 기대보다 오랫동안 지속될지 누가 알겠'나.


조금 섬뜩한 결론이다. 충분히 전달되었겠지만 앞에 따옴표로 책의 글을 따오다보니 매끄럽지 못해 내 식대로 표현해보자면, '우리 종은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잠시나마 의식을 지녔던 존재로서 이 땅에 살았다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우아한 태도를 보이자. 그래도 죽음이 겁나고 억울하다면 그동안 우리가 멸종시킨 수많은 종들과 우리가 파괴한 광대한 자연을 떠올린다면 그나마 좀 덜 억울할 것이다. 죽기 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제라도 속죄하는 길이 있다면 다른 존재에게 지금 보다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게 잘되고 운이 좋으면 조금 더 살지도 모른다.' 어떤가, 내가 이 책을 인류 '반성'의 책이라 말했던 것이 공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충분히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과 자만에 대해 비판했기에 여기에 나까지 첨언하지는 않겠지만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문제, 플라스틱 같은 쓰레기 문제 같이 전지구적인 문제에 인류가 함께 반성하고 공감하여 변화해 나갈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코로나 사태 또한 어쩌면 인류가 이미 뿌려놓은 것이 나비효과처럼 불어나 되돌려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것을 떠올려보자. 트럼프만 탓할 수 없다. 지난 한주 우리가 마시고 버린 아이스 카페라떼의 일회용 용기와 빨대는 몇 개이던가. 아직도 인류는 정신을 못차렸고 갈 길은 멀다. '다른 사람' 탓하기 전에 우선 '나부터' 돌아보고, '나하나 쯤' 말고 '나라도' 작은 환경실천을 해보면 어떨까. 이 책은 지구 종말 불감증에 걸린 인류에게 경종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협박도 하고 겁도 주면서 짙은 호소로 자기성찰을 애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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