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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방정식 오일러 공식
데이비드 스팁 지음, 김수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0년 3월
평점 :

<신의 방정식 오일러 공식>은 5개의 숫자로 이루어진 간단한 수식 하나가 한편의 불후의 명작이 될 수 있음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제목에서 처럼 이 책의 주인공인 오일러 공식은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발견한 수식, 'e^(iπ)+1=0'를 말한다. 컴퓨터 자판으로 쓰다보니 지수표현을 삿갓(^)으로 쓸수 밖에 없어 본래 수식의 아름다움이 줄어 아쉽지만 책 표지에 딱 하고 자리잡고 있으니 그걸 보고 음미하면 되겠다.
전기전공자인 나에게 이 수식은 굉장히 익숙하다. 하지만 수학 관련된 전공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분명 생소할 수 밖에 없다. 수학이라면 치가 떨려 일찍부터 소위 '수포(수학포기자)'를 선언한 사람들 수가 적지 않아서 일 수 있지만 고등학교 때 수학 좀 했다하더라도 이 식은 알기 어렵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수학책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식을 알 수도 있는 것은 이 식으로 소설과 영화가 나온 적 있기 때문이다. 2004년에 발표된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그 뜨거운 인기에 2006년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물론 나도 그 영화를 봤었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나는 너무나 친숙한 저 수식에 끌려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이번 책도 그런 반가움에 끌려 읽게 되었다.
불필요한 사족을 잠깐 달자면, 위의 식은 일반형이 아니다. 원래 일반형은 'e^(iθ)=cosθ+isin(θ)'이고 위의 식은 θ가 π인 경우에 한 한다. 나는 저 공식을 'Euler's identity(오일러 항등식)'로 배웠는데, 오일러 공식, 오일러 방정식, 오일러 항등식으로 다양하게 부르지만 저자도 책에서 밝히듯 엄밀히 수학적으로 따지면 의미가 구분되어야 하나 교양서적이기에 스무스하게 넘어가자.
저자는 서두에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쓴 것은 수학이 최고의 수면제라고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오일러의 공식에서 느꼈던 그 엄청난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이며, 위대한 수학이 위대한 문학이나 예술처럼 흥미롭고 아름다운 것임을 공감하고 싶어서라했다. 하지만 뒤에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책에 방정식을 하나 쓸 때마다 독자가 반으로 준다"던 말을 인용하며 수십 개의 식이 담긴 이 책을 읽을 독자는 아마 100만분의 1만큼 귀한 사람들이 아닐까하며 작은 우려도 내비쳤다.

나는 저자의 용기와 포부에 정말 큰 찬사를 보내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특히 7장에서는 sin, cos의 삼각함수나 좌표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용기내서 이 책을 잡은 독자들마저 좌절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낸다면 분명 얻어가는 게 많을 것이라는 것과 생소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새롭게 배울 것이 많다는 신호라는 크게 도움 안되는 소리뿐. 한 가지 위안이 되는 말을 해준다면, 저자는 이 책의 독자층을 수학은 오래도록 잊고 산(어쩌면 애시당초 배운적 없는)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썼다고 '분명히' 밝혔고 그의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대상으로 한 마루타 실험에 성공했다 하니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면 이 책을 읽고 "사람이 숫자 다섯 개 달랑 들어 간 짧은 수식 하나로 이렇게 책 한권 쓸 만큼 수학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구나, 수학이란 게 생각했던 것 만큼 소름돋게 징그러운 학문은 아닌가봐"하는 정도의 독자들의 인식변화만 있어도 저자의 용기 있는 도전은 성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용을 조금 살펴보자. 우전 책은 공식에 들어가기 앞서 이 공식을 만든(아니, 발견했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지 모르겠다.) '오일러'라는 수학자에 대해 조명한다. 오일러가 살았던 18세기 유럽은 소위 계몽주의 시대라 불리던 시기로 모든 분야가 가릴 것 없이 폭발적으로 인류의 지성이 꽃피우던 시기였다. 당대 인물들의 이름을 열거해보자면 모짜르트, 하이든, 헨델, 볼테르, 디드로, 몽테스키외, 임마누엘 칸트, 루소, 라부아지에, 애덤 스미스, 제레미 벤담 등 자세히는 몰라도 이름만 들으면 '아~'하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다. 저자는 그런 쟁쟁한 천재들 가운데 유명세로 치면 볼테르와 함께 1, 2위를 다투던 '오일러'였지만 당대 그의 뛰어난 업적과 명성에 비해 후대에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적다며 아쉬워한다.
우리에게 와닿는 오일러의 업적으로는 원주율을 π로 쓰는 것이나 삼각함수의 sin, cos 표기, 자연상수라 불리는 e의 표기도 오일러가 한 일이다. 특히 e는 그의 이름 'Euler'의 첫자를 딴 것으로 '오일러의 수'로도 불리며 오일러가 사랑했던 숫자라 전해진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표기들 속에는 우리도 모르게 오일러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오일러가 수학자로 등장하지만 그는 물리학, 천문학, 공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직감과 함께 뛰어난 천재성을 드러냈으며 18세기 출간된 모든 수학, 과학분야 연구의 4분의 1은 오일러가 집필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많은 연구를 했다 한다. 또한 역사상 가장 다작한 수학자로 무려 2만 5000페이지에 달하는 80여 권의 책을 집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그는 언어능력도 탁월했는데 무려 5개 국어를 구사했다 한다.
개인사적으로 그는 특별한 이력이 있었는데, 너무도 연구에 몰두했기 때문일까 28세에 우측 눈 시력을 잃고 59세에는 좌측 눈 시력마저 잃는다. 천재 작곡가 베토벤도 청각을 잃었음에도 그의 작곡은 계속되었듯, 오일러도 시력을 완전히 잃고 죽기 전까지 17년의 세월동안 평생의 업적 절반을 이뤄낸다. 그래서 이 책의 새로운 장마다 그의 초상화가 나오는데 잘 보면 실명한 오른 쪽 눈을 가리려 왼쪽 얼굴이 보이도록 고개를 돌린 것을 알수 있다. 앞이 보이지 않자 그는 연구실에 있던 커다란 둥근 탁자의 모서리를 잡고 돌면서 운동을 했다고 하며 시력을 잃은 후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것이 하나 줄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그는 머리뿐 아니라 가슴도 훌륭했던 사람이었다.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일러의 공식을 살펴보자. 'e^(iπ)+1=0'라는 식이 신의 방정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것도 관계없는 5개의 숫자들이 너무도 간단한 식으로 묶여진다는 것이다. e는 자연상수로 무리수이자 초월수이다. 이것 외에도 자연계에서나 통계학에서 e는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전기공학에서는 이상적 배터리와 저항이 연결된 회로의 시간에 대한 배터리 방전 전압 그래프가 e를 밑으로 하는 지수의 형태로 나타난다.우리에게 친숙한 π는 원주율을 나타내며 원의 반지름만 알면 둘레는 물론 넓이를 구할 수 있는 원과 깊은 관련이 있는 숫자다. π도 무리수이자 초월수이다. 궁금해 할 것 같아 짧게 이야기하면 무리수는 분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수를 말하며, 소수로 표현하면 끝이 나지 않는 수이다. 초월수는 정수를 계수로 하는 다항식의 해가 될 수 없는 수이다. 잘 몰라도 괜찮다.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가도 책을 읽는 데 문제가 없다.
i는 '-1'의 제곱근을 의미하며 허수를 만들어 주는 수이다. 허수는 과거 많은 수학자들에게 외면과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미적분을 발명한 천재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허수를 보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존재하는 양서류"라고 표현한 것이 유명하다. 이런 허수는 19세기나 가서야 제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기에 오랜 세월 미지의 영역에 감춰져 있었던 숫자다. 1도 특별한 숫자인데, 모든 숫자에 곱해도 값이 변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특징을 가지며 덧셈을 통해 모든 자연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0은 비어있음(空), 없음(無), 시작을 의미하고 좌표계에서는 양과 음을 가르는 기준이 되며, 곱셈으로 어떤 숫자든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마법같은 숫자이다. 특히 0과 1은 2진법으로 모든 수를 나타낼 수 있어 이 숫자들로 디지털 세상이 만들어졌다. 출신 성분상 아무 관련 없는 이런 숫자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과 같은 식을 피워낸 것이다.
이 식에는 두 가지 무한의 의미가 들어있는데, 첫 번째는 위에서 e, π는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인 것에 무한의 의미가 있고, 두 번째는 오일리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무한급수(무한한 수열의 합)에 무한의 의미가 들어 있다. 또 오일러의 공식의 일반형을 보면 허수를 포함한 지수함수가 복소수 형태의 삼각함수의 합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무관할 것 같은 지수와 삼각함수가 하나의 등식으로 그려진다. 무한의 상상력에 존재와 존재 아님의 허수가 붙고 서로 관계없는 개념들이 한데 어우러져 놀라움과 신비함을 자아내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순히 작은 숫자들이 깔끔하게 배치되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개념들을 간결하고 단순하게 나타내면서도 속의 숨겨진 복잡성을 매력적으로 혼합하고 이질적인 것들을 서로 잇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 수식은 단순히 심미적 형태와 심오한 수학적 의미뿐 아니라 실용성까지도 갖췄는데, 이는 내가 이 수식에 익숙한 것과 연관있다. 오일러 공식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류전기회로 해석모델링의 도구가 된다. 이는 미분을 해도 적분을 해도 형태가 같은 e의 지수함수 특징과 연관되며 복소평면에서 오일러 공식의 기하학적 의미와도 연관된다. 오일러 공식의 'e^(iπ)'는 기하학적으로 복소평면에서 180도 반시계 방향의 벡터회전을 의미하는데, 저자가 이것을 두고 여명부터 황혼까지의 태양의 움직임, 계절의 변화, 인생 역전같은 이미지를 연상하여 오일러 공식에 문학적 의미를 더해주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오일러와 오일러의 공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적인 지식에 대해서도 습득할 수 있도록 한다. 마지막에는 오일러 공식의 유도과정과 i^i가 실수임을 보이는 증명을 부록으로 담고 있어 책을 읽으며 자신감을 기른 독자들에게는 좋은 도전거리가 될 것 같다. 끝으로 앞에서 소개한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나온 대사가 나의 감정과 저자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하나의 아름다움, 들에 핀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처럼 이 수식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 아름다움은 반드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학에 애정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