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산
가와모토 유코 지음, 고향옥 옮김 / 한림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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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평가하는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아빠산>을 고른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아마도 아이가 자신에 비해 훨씬 커다란 아빠 몸에 기어오르고 노는 모습에서 작가는 영감을 얻은 것인지 아빠의 몸을 하나의 산에 빗대어 동화책 <아빠산>을 썼다.

그리고 또 <아빠산>을 고른 이유는 몸에 관한 책이라서 그랬다. 5살인 호기심 왕성한 우리 아이는 요즘 몸에 너무도 관심이 많다. 우리집에는 '인체원리'라는 책이 있는데 내가 보려고 샀지만 비전공자인 나에게는 생소한 '리보솜', '코디솔', '굴심방결절' 같은 딱딱한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이 나와 읽기를 포기했다. 아이는 그 책이 몸에 관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는, 어른인 나도 보기 어려운 그 책을, 그것도 잘 때마다 읽어 달라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 수준에 맞는 몸에 관한 책이 보여 바로 선택했다.

책에는 남매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가 아빠의 발에서부터 모험을 시작한다.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아빠 발가락 발톱을 징검다리로 표현해 놓았다. 남매는 제일 낮은 새끼 발톱부터 시작해서 징검다리를 딛고 발등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정강이를 지나 무릅을 지나 허벅지를 미끄럼틀 삼아 아빠 배꼽 근처까지 간다. 배꼽은 함정 역을 맡았다.

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줄 때 발, 정강이, 무릎, 허벅지 각각의 페이지를 읽어 주기전 아이에게 '여기가 어딜까?'하고 대답 할 시간을 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게 당연한 게 아이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많이 경험하기에 뻔해 보이지만 물어보았다. 내심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놓을 것을 기대하면서.

아이는 '정강이'와 '허벅지'를 못 말했다. 그러고보면 '무릎'은 동요 가사에도 나와서 잘 아는 명칭이지만 '정강이'와 '허벅지'라는 단어는 아직 아이가 써봤을 일이 거의 없을 것 같긴 하다. 우리 아이가 의아해 하던 것 중 하나는 여기 아저씨 다리에는 왜 이렇게 털이 많냐는 것이었다. 나는 체질 상 다리에 털이 안난다. 그래서 정강이를 오르는 장면에 그려진 다리 털을 보고 아이는 신기해 했다.

그렇게 상체를 올라 팔 대교를 지나 손가락 전망대까지 가고 다시 돌아 목 구덩이에 앉아 쉰다. 그리고 다시 얼굴로 올라가는데, 누나는 경사 높은 아빠의 턱을 넘어 가고 동생은 목 옆 우회 길로 기어간다. 일방적으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싫어 뭐라도 아이에게 물을 거리를 찾고 있던 나는 아이에게 '너는 어느 길로 갈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동생이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흉내내며 기어 갈 거라 한다. 아이의 적극적인 리액션을 근거로 책에 몰입시키는데 성공했음을 확신하곤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음 장을 넘겼다.

아빠의 얼굴이 나왔다. 글자를 읽기 전에 아이가 먼저 '아빠 머리카락', '아빠 눈썹', '아빠 눈', '아빠 귀'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대망의 아빠의 정수리 산꼭대기까지 오른 아이들은 야호를 외친다. 5살 우리 아이는 서툴지만 대부분의 글자를 읽어낸다. 아빠의 정수리에서 야호라고 외치는 아이들 옆에 '야~호~'라는 글이 네 번 쓰였다. 둔한 나는 대충봐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손을 가리키며 읽는데 놀랐다. 그 네 개의 '야~호~'는 글자크기가 다 달랐고, 남매에게 가까운 야호일수록 글씨가 컸고 멀수록 글씨가 작아졌는데 나는 별 생각없이 읽어서 크기가 다른 것은 몰랐다. 그런데 아이가 그것을 보고는 가까운 야호를 가리켜 큰 소리로 '야~호~'하고 다음 야호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점점 작게 읽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많이 들수록 경험이 늘다보니 때로는 잘 안다는 선입견에 부주의하게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정말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정말 있는 그대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하얀 도화지에 같은 마음에 담아낸다. 세상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관점이야말로 탁해져버린 어른들이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배워야하는 큰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가 가장 재밌었어?"

"다 재밌었어"

'다 좋다'는 이런 식의 답은 재미없다.

"그러면 가장 좋았던 그림은 뭐야?"

"콧구멍 동굴"

그러고는 내 콧구멍 속을 들여다 보고 "진짜 털이 있네" 그런다. <아빠산>에서 아빠 콧구멍이 쌍둥이 동굴로 등장하는데 거기에 털이 듬성듬성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런지 확인해 본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왜 그게 좋았어?"

"나는 이상하게 생긴 게 좋아"

이상하게 생긴 게 좋다는 아이의 대답이 재밌다. 책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는 아빠의 전체 몸이 나오고 거기에 지명을 달아놓은 '지도'가 그려져 있다. 최근 아이는 미로찾기 같은 걸 했었는데, 그 그림이 미로찾기 인냥 손가락으로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를 따라가 본다.

아이의 동화책을 읽어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책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참 단순하다. 글자도 몇 개 없고 페이지 수도 몇 장 안된다. 그런데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동화책은 이름이 책이지, 사실 아이들에게는 여러 장난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전에 해지난 달력으로 접어 준 배를 아이가 몇날 몇 일을 지니고 잔 적이 있다. 아이는 가지고 노는 것이 비싼건지, 메이커는 어딘지, 물 건너온건지 전혀 관심없다. 오직 부모가 그것으로 아이와 재밌게 놀아 줄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책은 그것을 소재삼아 아이와 재미있는 상황극을 연출해 줄 수 있는 좋은 극본이자 도구가 된다. 이번에 <아빠산>도 그런 재밌는 극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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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
여성욱 지음 / 부크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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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를 읽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그런 말 하는 거 오랜만에 듣는다'고 한다. '...?'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입에서 ', 참 글 잘 쓴다'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실이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를 읽으며 작가의 필력에 연이어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일상을 저렇게 생생하게 글로 잘 그려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닿는 문장이 있으면 윗모퉁이를 접는다. 다 읽고 나니 접힌 데가 많아 책 윗쪽이 두꺼워져 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애 에세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코웃음을 쳤었다. 아마도 입맛대로 연애하고자 하는 바램이 얼마나 꿈같이 허황된 것임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지만 속아준다는 마음으로 책을 골랐다. 그저 연애에 대해 환상만 키우는 예찬론이겠거니 하고 얼마나 공갈을 쳐놨는지 한번 보자는 심사도 고백컨데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단순한 연애에 관한 예찬론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목이 주는 암시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입맛대로'라는 표현을 '내 마음대로'정도로 해석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는 엄청나게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평양냉면, 돈코츠라멘, 짬뽕, 마라탕, 참치회, 방어회, 오징어, 꼼장어, 꼬막, 소꼬리찜, 따귀해장국, 샤오룽바오, 개구리튀김...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의 시작은 맛, 바로 음식에서 시작한다. 작가가 휘황찬란한 필력을 통해 음식을 그야말로 글로 그려내는데 그림도 없고 냄새도 없는 책을 보며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음식 책이 아니다. 책의 진행은 '음식-연애-깨달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을 '탐식가'라 소개한 작가는 음식에 대단한 애정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자다가도 고속도로에 차를 올릴 수 있는 열정이 있고 한밤중에 먹는 수제버거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야밤에 본인과 무언가 함께 먹어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다. '음식' 그 자체보다 '먹는 행위'를 즐긴다는 그는 연애 칼럼니스트라는 그의 직업답게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감각과 떠오르는 생각을 연애와 결부시킨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이 표현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을 내어 놓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갑자기 밥먹다가 연애는 뭐고 깨달음은 뭐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볼 일 보다 밑닦개를 보고 대오했다는 어느 선각자의 이야기도 있으니 놀래지 말자.

 

음식을 먹는다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하는 것은 작가의 필력에 달린 것이라면 그가 풀어내는 관계에 대한 성찰은 작가의 자기 객관화 능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읽다보면 작가가 평소에 얼마나 자기 반성과 돌아봄에 깨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작가의 일상은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와 놀고, 이성을 사귀고, 수요미식회에 나온 맛집을 찾아 다니고, 전에도 샀는데 이번에도 자기가 사는 상황을 억울해 하기도 한다. 내가 흥미로운 것은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상이지만 작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더 많은 것을 본다는 점이다.

 

연애 에세이라 해놓고 딴소리를 많이 해놨다. 하지만 연애도 관계의 일종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사람사이의 관계가 그려내는 드라마가 아니던가. 연애에서 적용되는 진리가 세상살이라고 성립치 않을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기혼자다. 결혼해서 연애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내놓은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 직장동료 같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소유욕이면 다 나쁜 것이 아니라 소유욕이 관계를 해칠 때 나쁜 것이다.', '생산적인 비교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비교하는 것이다.', '기회를 놓친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불만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왜 저럴까?'가 아니라 '혹시 내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이다.', '내가 희생하고 있어 상대가 원망스럽게 여겨질 때 그 희생이 과연 상대가 강요한 것인지 되돌아보라', '이별이 아프고 쓰린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영원한 줄 알았던 관계가 잠시 곁에 머무르는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들은 '연애 전용 깨달음'이 아니라 '인생살이 범용 깨달음'이라 하겠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와 같은 책을 볼수록 인생의 훌륭한 가르침은 꼭 오래되고 고상한 고전이나 바이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위대한 깨달음이나 진리일수록 우리의 삶과 괴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일상에서 그것을 볼수 있는 눈만 있다면 언제든 볼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평상심이 도'라는 일상적인 것에 진리가 있다는 법구가 있는게 아닌가.

 

저자는 연애라는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에서 '!'소리나는 깨달음의 엑기스를 뽑아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 담아 놓았다. 이 연애 책이 주는 교훈은 종교서적, 마음수련서, 자기계발서가 주는 교훈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교훈은 때론 따가울 만큼 예리했다. 음식과 연애라는 다가가기 쉬운 주제로 깊이 있는 내용을 책에 잘 담아놓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를 알게되어 반갑고 앞으로도 지켜봐야겠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연애 에세이지만, 연애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단연코 아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 참 맛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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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 자는 아이 - 스스로 잠자는 아이를 만드는 건강한 수면 교육법
알렉시스 더비프 지음, 김진주 옮김 / 지식너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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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우연히 아기를 보게 되면 눈을 뗄 수 없었다. 호기심 가득한 맑은 눈망울과 순백색 뽀얀 피부를 보고 있노라면 홀린 듯 계속 보게 되곤 했다. 결혼하고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다보니 과거 나처럼 우리 애 얼굴에서 눈을 못 떼는 젊은 커플들을 본다. 그럴 때면 그 귀여움 뒤에 무시무시한 대가가 숨어있는 줄 꿈에도 모를 거다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 내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아기의 엄마도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돌이켜보면 아기 씻기려 드는데도 손이 떨려 안절부절하고, 기저기 채우는 게 서툴러서 걱정인 시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육아 끝판왕은 아이 재우기라는 것을 아이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영유아 잠재우는 방법에 대한 책이 나왔겠나. <꿀잠 자는 아이>는 잠 못 들어 엄마아빠를 힘들게 하는 영유아들을 위한 수면가이드북이다.

 

저자는 재정학 석사와 MBA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 스펙이 육아서적과 썩 어울리진 않는다. 저자도 결혼 전에는 육아가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이정도 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육아문외한이었다. 끝없이 울어대며 안자는 아이에 온 집안은 난리통이 되고 부부는 만성피로와 수면부족으로 피폐해져간다. 이런 육아비상사태로 부부는 교대로 자면서까지 버텨보지만 남편은 직장으로 피신해버리고 홀로 남은 저자는 멘붕이 된다. 살기위해 영육아 수면 방법에 대한 자료들을 모조리 섭렵하다가 전문가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이유로 고생하는 모든 부모들에게 경험을 전수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전세계 수백만명이 찾는다 한다.

 


책의 구성은 크게 꿀잠의 기초’, ‘도구’, ‘전략’, ‘보충으로 나뉜다. 전쟁에 임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구성 흐름이 명쾌하게 이해된다. 우선 적과 싸워 이기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기초에서는 수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특히 중요한 부분이 아이가 잠에 빠지는 4가지 원리이다. 수면주기, 생체리듬, 대상영속성, 수면연상에 대해 설명한다. 렘수면, 비렘수면 같은 생소한 용어들도 나오지만 잘 설명되어 있다. 일단 알아야 싸운다!

 

적을 알았으니 이젠 싸울 무기들이 있어야 한다. 무기에 해당하는 것이 도구. 도구로는 백색소음, 속싸개, 공갈젖꼭지, 바운서, 수면시간관리가 있다. 여기서는 도구에 대한 설명과 사용법에 대해 나온다. 나도 아이를 키울 때 어디서는 공갈젖꼭지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데서는 부정교합이 생겨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해서 혼란스러웠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답도 있었다. 나라와 나이는 달라도 아이 키우며 마주하는 고민들을 다 비슷한가보다.

 

그리고 나면 상대도 알았고 무기도 있으니 싸워야하는데, 그냥 무턱대고 싸우면 안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전략이다.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이 있다. 부모가 주도적으로 개입하여 재우는 스왑(Sleep With Assistance Plan, SWAP)과 부모가 뒤로 빠지는 슬립(Sleep Learning Independence Plan, SLIP)이다. 영육아 적정 수면시간은 개월 수(월령)에 따라 달라지는데, 전략도 아이 개월 수에 따라 적용이 달라진다. 추천은 생후 6개월을 기준으로 이전은 스왑, 이후는 슬립으로 나뉜다.

 


그리고 보충에서는 앞에서 다루지 못한 설명이 담긴다. 가령 여행을 가거나 형제자매가 생긴다면 수면환경이 바뀐다. 변화된 환경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충고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낮에 잠을 자면 밤에 숙면을 취하는 데 불리하지만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낮잠을 잘 자면 밤잠도 잘 자고 오히려 낮잠을 못자면 밤잠도 못 잔다. 그래서 성공적인 밤잠을 위해 뒷받침 되어야하는 부분이 낮잠인데, 이에 관한 설명도 있다.

 

우리 아이 어렸을 때 생각해보면 가관이었다. 아이를 겨우 재운다. 이젠 쉬어야지 바닥에 놓기만 하면 깨서 우는 것이다. 그래서 늘 들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더 힘들었던 것은 드는 것도 아기띠를 사용하면 울면서 안잔다. 오직 맨손으로 보듬어서 들어야 안 울고 잔다. 우리아이를 얼마나 오래 보듬고 있었는지 어느 날 허리가 아파서 병원엘 갔는데 디스크 초기진단을 받았다. 참고로 당시 나는 학생 때부터 아내 출산 전까지 유도를 계속 했던 사람이었다.

 

사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책 도움 없이도 아이 잘 키웠다고. 수면교육을 시키지 않아 대학생이 되서도 엄마 없이 못자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저자도 말한다. 맞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은 된다.

 


하지만 그 사이 보내는 시간의 질은 분명 다를 것이다. 이런 책을 읽어 스킬을 익힌다면 저자가 말하는 즐거운 육아까지는 허풍이라 하더라도, ‘힘든육아에서 할 만한육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나처럼 디스크 진단을 받을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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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 - 베테랑 산업 번역가에게 1:1 맞춤 코칭 받기
김민주.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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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를 통해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들이었다.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공감도 있었다. 거기다 실용적이기도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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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 - 베테랑 산업 번역가에게 1:1 맞춤 코칭 받기
김민주.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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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일까, 안내서일까. 사실 그 둘 모두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미영'이라는 주인공이 프리렌서 번역가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그녀는 외국어에 재능 있는 그냥 일반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망해버려 실직자가 된다. 우연히 '번역가나 해볼까'하고 전업을 바꿔 번역업계로 뛰어들어가 재기를 꿈꾸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하던가. 맨땅에 헤딩하며 좌충우돌하는 그야말로 인생 회기 스토리가 그려진다. 다행히도 어려울 때 마다 주세주 같은 '하린'의 충고로 고비를 잘 넘겨 나간다.

 

그러나 이 책은 엄밀히 소설이 아니다. 어쩌다 예비 번역가 '미영'이 번역 일을 하게 되면서 단계별로 생기는 궁금증을 천사표 전문 번역가 '하린'이 친절히 답해주는 방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번역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직업실용서다. 이 책 저자 역시 두 명의 번역가인데, 저자 소개를 읽어보면 '김민주'번역가가 회사를 관두고 프리렌서 번역가를 준비할 때 선배인 '박현아'번역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책 속 '김미영''박하린' 이라는 아바타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우리는 보통 번역하면 책이나 영화번역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번역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산업번역'이다. 어쩌면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산업번역이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흔하게는 프링글스 같은 수입과자에서 화장품, 의류, IT가전제품, 산업장비, IT, 게임까지 '산업번역'의 영역은 다양하다. 상품 안내문이나 메뉴얼을 한글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 '산업번역'의 경험이 있다. 회사에서 외산장비 메뉴얼이 영어로 되어있어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를 '산업번역'이라고 하는지 이번에 알았다.

요즘 일반 회사에서도 종종 외국 메뉴얼 같이 원서를 접하다 보니 간단히 번역할 일이 생길 것이다. 여기서 소개된 번역리뷰에 대한 내용은 번역 후 결과물을 스스로 점검해 볼 때 유용한 체크리스트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원서나 자기소개서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회사입사 외에도 서포터즈, 행사지원, 공모제안, 대회참여 등 지원서를 낼 일이 가끔 생기는데, 이때 참고할 만한 내용도 있어 메모해 두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대부분 독자들은 번역가를 준비하거나 초보 번역가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와 완전히 관계없는 직업을 가진 독자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 책이 '번역? 그게 나랑 무슨 관계 있어'하고 몇 장 넘기다 덮어버리는 관심 밖의 책 일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서두에 말했듯 소설인가 햇갈릴 정도로 재밌게 잘 읽었다. 아마도 이유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실감나는 상황묘사에 있지 않을까. 아마도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직장에서 짤리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구하기 위해 수십통 지원서를 내고, 그나마 겨우 한 두군데 걸려 샘플 테스트를 받지만 회사 쪽에서는 답이 없다. 일이 있을 때는 바빠서 걱정하다 일이 없을 때는 불안해한다. 일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인공에 어느 순간 내가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이 책에는 위로의 말이 눈에 띄었다. '하린'이 좌절에 빠진 미영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이나 '미영' 스스로를 토닥이며 일어설 때의 긍정의 말들이 좋아 책의 윗모퉁이를 접어놓았다. 실제 프리렌서 산업 번역가 뿐 아니라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아 힘든 누구에게라도 힘이 되는 말들이었다. 저자가 후배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영'이 일하던 편의점의 매출이 연일 바닥을 칠 때 사장님이 하셨던 말도 울림이 크다. "장사가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는 거지 뭐. 길게 보고 꾸준히 가야지 일희일비하면 안 돼."

 


이 책을 읽으며 이 땅의 수많은 프리렌서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환상도 깨졌다. 회사 다니다 힘들 때 한번씩 그런 생각들 하지 않나,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프리렌서들은 참 좋겠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돈벌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리고 프리렌서도 그랬다.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메여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 직장인에게는 프리렌서라는 직업에 대해 묘한 동경과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프리렌서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알게 되었다. 일이 없을 때 느끼는 초조함이 어떤건지, 소속감이 없어 느끼는 불안함이 어떤건지. 그러다 일이 내리 계속 안들어오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백수인지 착각마저 든다 하니 마음 고생이 오죽할까. 베테랑 프리렌서일지라도 몇달에 한번씩은 1~2주로 일이 없는 시기가 생긴다고 하니 초보는 말해 뭐하겠나.

 


<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를 통해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들이었다.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공감도 있었다. 거기다 실용적이기도 했던 책이었다. , 영어공부나 다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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