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산
가와모토 유코 지음, 고향옥 옮김 / 한림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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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평가하는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아빠산>을 고른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다. 아마도 아이가 자신에 비해 훨씬 커다란 아빠 몸에 기어오르고 노는 모습에서 작가는 영감을 얻은 것인지 아빠의 몸을 하나의 산에 빗대어 동화책 <아빠산>을 썼다.

그리고 또 <아빠산>을 고른 이유는 몸에 관한 책이라서 그랬다. 5살인 호기심 왕성한 우리 아이는 요즘 몸에 너무도 관심이 많다. 우리집에는 '인체원리'라는 책이 있는데 내가 보려고 샀지만 비전공자인 나에게는 생소한 '리보솜', '코디솔', '굴심방결절' 같은 딱딱한 전문용어들이 너무 많이 나와 읽기를 포기했다. 아이는 그 책이 몸에 관한 내용이라는 걸 알고는, 어른인 나도 보기 어려운 그 책을, 그것도 잘 때마다 읽어 달라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 수준에 맞는 몸에 관한 책이 보여 바로 선택했다.

책에는 남매로 보이는 두 명의 아이가 아빠의 발에서부터 모험을 시작한다.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아빠 발가락 발톱을 징검다리로 표현해 놓았다. 남매는 제일 낮은 새끼 발톱부터 시작해서 징검다리를 딛고 발등으로 올라간다. 그리고는 정강이를 지나 무릅을 지나 허벅지를 미끄럼틀 삼아 아빠 배꼽 근처까지 간다. 배꼽은 함정 역을 맡았다.

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읽어줄 때 발, 정강이, 무릎, 허벅지 각각의 페이지를 읽어 주기전 아이에게 '여기가 어딜까?'하고 대답 할 시간을 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게 당연한 게 아이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을 많이 경험하기에 뻔해 보이지만 물어보았다. 내심 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놓을 것을 기대하면서.

아이는 '정강이'와 '허벅지'를 못 말했다. 그러고보면 '무릎'은 동요 가사에도 나와서 잘 아는 명칭이지만 '정강이'와 '허벅지'라는 단어는 아직 아이가 써봤을 일이 거의 없을 것 같긴 하다. 우리 아이가 의아해 하던 것 중 하나는 여기 아저씨 다리에는 왜 이렇게 털이 많냐는 것이었다. 나는 체질 상 다리에 털이 안난다. 그래서 정강이를 오르는 장면에 그려진 다리 털을 보고 아이는 신기해 했다.

그렇게 상체를 올라 팔 대교를 지나 손가락 전망대까지 가고 다시 돌아 목 구덩이에 앉아 쉰다. 그리고 다시 얼굴로 올라가는데, 누나는 경사 높은 아빠의 턱을 넘어 가고 동생은 목 옆 우회 길로 기어간다. 일방적으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싫어 뭐라도 아이에게 물을 거리를 찾고 있던 나는 아이에게 '너는 어느 길로 갈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동생이 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흉내내며 기어 갈 거라 한다. 아이의 적극적인 리액션을 근거로 책에 몰입시키는데 성공했음을 확신하곤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음 장을 넘겼다.

아빠의 얼굴이 나왔다. 글자를 읽기 전에 아이가 먼저 '아빠 머리카락', '아빠 눈썹', '아빠 눈', '아빠 귀' 하나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대망의 아빠의 정수리 산꼭대기까지 오른 아이들은 야호를 외친다. 5살 우리 아이는 서툴지만 대부분의 글자를 읽어낸다. 아빠의 정수리에서 야호라고 외치는 아이들 옆에 '야~호~'라는 글이 네 번 쓰였다. 둔한 나는 대충봐서 인지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손을 가리키며 읽는데 놀랐다. 그 네 개의 '야~호~'는 글자크기가 다 달랐고, 남매에게 가까운 야호일수록 글씨가 컸고 멀수록 글씨가 작아졌는데 나는 별 생각없이 읽어서 크기가 다른 것은 몰랐다. 그런데 아이가 그것을 보고는 가까운 야호를 가리켜 큰 소리로 '야~호~'하고 다음 야호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점점 작게 읽는 것이 아닌가!

나이가 많이 들수록 경험이 늘다보니 때로는 잘 안다는 선입견에 부주의하게 놓치는 것들이 많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정말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정말 있는 그대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하얀 도화지에 같은 마음에 담아낸다. 세상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 보는 관점이야말로 탁해져버린 어른들이 순수한 아이들에게서 배워야하는 큰 가르침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아이에게 물었다.

"어디가 가장 재밌었어?"

"다 재밌었어"

'다 좋다'는 이런 식의 답은 재미없다.

"그러면 가장 좋았던 그림은 뭐야?"

"콧구멍 동굴"

그러고는 내 콧구멍 속을 들여다 보고 "진짜 털이 있네" 그런다. <아빠산>에서 아빠 콧구멍이 쌍둥이 동굴로 등장하는데 거기에 털이 듬성듬성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나도 그런지 확인해 본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왜 그게 좋았어?"

"나는 이상하게 생긴 게 좋아"

이상하게 생긴 게 좋다는 아이의 대답이 재밌다. 책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는 아빠의 전체 몸이 나오고 거기에 지명을 달아놓은 '지도'가 그려져 있다. 최근 아이는 미로찾기 같은 걸 했었는데, 그 그림이 미로찾기 인냥 손가락으로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를 따라가 본다.

아이의 동화책을 읽어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책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참 단순하다. 글자도 몇 개 없고 페이지 수도 몇 장 안된다. 그런데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동화책은 이름이 책이지, 사실 아이들에게는 여러 장난감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전에 해지난 달력으로 접어 준 배를 아이가 몇날 몇 일을 지니고 잔 적이 있다. 아이는 가지고 노는 것이 비싼건지, 메이커는 어딘지, 물 건너온건지 전혀 관심없다. 오직 부모가 그것으로 아이와 재밌게 놀아 줄 수 있는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책은 그것을 소재삼아 아이와 재미있는 상황극을 연출해 줄 수 있는 좋은 극본이자 도구가 된다. 이번에 <아빠산>도 그런 재밌는 극본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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