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
여성욱 지음 / 부크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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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를 읽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그런 말 하는 거 오랜만에 듣는다'고 한다. '...?'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입에서 ', 참 글 잘 쓴다'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실이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를 읽으며 작가의 필력에 연이어 감탄하고 있었다. 어떻게 일상을 저렇게 생생하게 글로 잘 그려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며 마음에 닿는 문장이 있으면 윗모퉁이를 접는다. 다 읽고 나니 접힌 데가 많아 책 윗쪽이 두꺼워져 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애 에세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코웃음을 쳤었다. 아마도 입맛대로 연애하고자 하는 바램이 얼마나 꿈같이 허황된 것임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지만 속아준다는 마음으로 책을 골랐다. 그저 연애에 대해 환상만 키우는 예찬론이겠거니 하고 얼마나 공갈을 쳐놨는지 한번 보자는 심사도 고백컨데 조금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용은 단순한 연애에 관한 예찬론이 아니었다. 그리고 제목이 주는 암시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입맛대로'라는 표현을 '내 마음대로'정도로 해석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는 엄청나게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평양냉면, 돈코츠라멘, 짬뽕, 마라탕, 참치회, 방어회, 오징어, 꼼장어, 꼬막, 소꼬리찜, 따귀해장국, 샤오룽바오, 개구리튀김...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 담긴 여러 에피소드의 시작은 맛, 바로 음식에서 시작한다. 작가가 휘황찬란한 필력을 통해 음식을 그야말로 글로 그려내는데 그림도 없고 냄새도 없는 책을 보며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럼에도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음식 책이 아니다. 책의 진행은 '음식-연애-깨달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자신을 '탐식가'라 소개한 작가는 음식에 대단한 애정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서라면 자다가도 고속도로에 차를 올릴 수 있는 열정이 있고 한밤중에 먹는 수제버거에서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야밤에 본인과 무언가 함께 먹어주는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가질 줄 아는 사람이다. '음식' 그 자체보다 '먹는 행위'를 즐긴다는 그는 연애 칼럼니스트라는 그의 직업답게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감각과 떠오르는 생각을 연애와 결부시킨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이 표현이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을 내어 놓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갑자기 밥먹다가 연애는 뭐고 깨달음은 뭐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화장실에서 볼 일 보다 밑닦개를 보고 대오했다는 어느 선각자의 이야기도 있으니 놀래지 말자.

 

음식을 먹는다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갈까 하는 것은 작가의 필력에 달린 것이라면 그가 풀어내는 관계에 대한 성찰은 작가의 자기 객관화 능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 읽다보면 작가가 평소에 얼마나 자기 반성과 돌아봄에 깨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작가의 일상은 보통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구와 놀고, 이성을 사귀고, 수요미식회에 나온 맛집을 찾아 다니고, 전에도 샀는데 이번에도 자기가 사는 상황을 억울해 하기도 한다. 내가 흥미로운 것은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나는 일상이지만 작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더 많은 것을 본다는 점이다.

 

연애 에세이라 해놓고 딴소리를 많이 해놨다. 하지만 연애도 관계의 일종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사람사이의 관계가 그려내는 드라마가 아니던가. 연애에서 적용되는 진리가 세상살이라고 성립치 않을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기혼자다. 결혼해서 연애와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내놓은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은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더 나아가서는 친구, 직장동료 같은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었다.

 

 

'소유욕이면 다 나쁜 것이 아니라 소유욕이 관계를 해칠 때 나쁜 것이다.', '생산적인 비교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중하며 비교하는 것이다.', '기회를 놓친 것은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불만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왜 저럴까?'가 아니라 '혹시 내가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이다.', '내가 희생하고 있어 상대가 원망스럽게 여겨질 때 그 희생이 과연 상대가 강요한 것인지 되돌아보라', '이별이 아프고 쓰린 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영원한 줄 알았던 관계가 잠시 곁에 머무르는 것이라는 사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들은 '연애 전용 깨달음'이 아니라 '인생살이 범용 깨달음'이라 하겠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와 같은 책을 볼수록 인생의 훌륭한 가르침은 꼭 오래되고 고상한 고전이나 바이블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위대한 깨달음이나 진리일수록 우리의 삶과 괴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일상에서 그것을 볼수 있는 눈만 있다면 언제든 볼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도 '평상심이 도'라는 일상적인 것에 진리가 있다는 법구가 있는게 아닌가.

 

저자는 연애라는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했고 지금도 경험하고 있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에서 '!'소리나는 깨달음의 엑기스를 뽑아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에 담아 놓았다. 이 연애 책이 주는 교훈은 종교서적, 마음수련서, 자기계발서가 주는 교훈에 결코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교훈은 때론 따가울 만큼 예리했다. 음식과 연애라는 다가가기 쉬운 주제로 깊이 있는 내용을 책에 잘 담아놓은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맛깔나게 글을 쓰는 작가를 알게되어 반갑고 앞으로도 지켜봐야겠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는 연애 에세이지만, 연애하는 사람만을 위한 책이 단연코 아니다. <입맛대로 연애할 순 없을까> 참 맛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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