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 - 베테랑 산업 번역가에게 1:1 맞춤 코칭 받기
김민주.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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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일까, 안내서일까. 사실 그 둘 모두라고 해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미영'이라는 주인공이 프리렌서 번역가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래 그녀는 외국어에 재능 있는 그냥 일반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망해버려 실직자가 된다. 우연히 '번역가나 해볼까'하고 전업을 바꿔 번역업계로 뛰어들어가 재기를 꿈꾸지만, 어디 세상이 그리 호락하던가. 맨땅에 헤딩하며 좌충우돌하는 그야말로 인생 회기 스토리가 그려진다. 다행히도 어려울 때 마다 주세주 같은 '하린'의 충고로 고비를 잘 넘겨 나간다.

 

그러나 이 책은 엄밀히 소설이 아니다. 어쩌다 예비 번역가 '미영'이 번역 일을 하게 되면서 단계별로 생기는 궁금증을 천사표 전문 번역가 '하린'이 친절히 답해주는 방식을 통해 우회적으로 번역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직업실용서다. 이 책 저자 역시 두 명의 번역가인데, 저자 소개를 읽어보면 '김민주'번역가가 회사를 관두고 프리렌서 번역가를 준비할 때 선배인 '박현아'번역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마치 책 속 '김미영''박하린' 이라는 아바타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우리는 보통 번역하면 책이나 영화번역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번역은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산업번역'이다. 어쩌면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산업번역이 우리에게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흔하게는 프링글스 같은 수입과자에서 화장품, 의류, IT가전제품, 산업장비, IT, 게임까지 '산업번역'의 영역은 다양하다. 상품 안내문이나 메뉴얼을 한글로 번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작은 '산업번역'의 경험이 있다. 회사에서 외산장비 메뉴얼이 영어로 되어있어 번역한 적이 있는데, 이를 '산업번역'이라고 하는지 이번에 알았다.

요즘 일반 회사에서도 종종 외국 메뉴얼 같이 원서를 접하다 보니 간단히 번역할 일이 생길 것이다. 여기서 소개된 번역리뷰에 대한 내용은 번역 후 결과물을 스스로 점검해 볼 때 유용한 체크리스트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원서나 자기소개서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회사입사 외에도 서포터즈, 행사지원, 공모제안, 대회참여 등 지원서를 낼 일이 가끔 생기는데, 이때 참고할 만한 내용도 있어 메모해 두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을 대부분 독자들은 번역가를 준비하거나 초보 번역가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와 완전히 관계없는 직업을 가진 독자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 책이 '번역? 그게 나랑 무슨 관계 있어'하고 몇 장 넘기다 덮어버리는 관심 밖의 책 일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서두에 말했듯 소설인가 햇갈릴 정도로 재밌게 잘 읽었다. 아마도 이유는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실감나는 상황묘사에 있지 않을까. 아마도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가능했으리라 짐작해본다. 직장에서 짤리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을 구하기 위해 수십통 지원서를 내고, 그나마 겨우 한 두군데 걸려 샘플 테스트를 받지만 회사 쪽에서는 답이 없다. 일이 있을 때는 바빠서 걱정하다 일이 없을 때는 불안해한다. 일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주인공에 어느 순간 내가 감정이입이 되어 있었다.

 

이 책에는 위로의 말이 눈에 띄었다. '하린'이 좌절에 빠진 미영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이나 '미영' 스스로를 토닥이며 일어설 때의 긍정의 말들이 좋아 책의 윗모퉁이를 접어놓았다. 실제 프리렌서 산업 번역가 뿐 아니라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아 힘든 누구에게라도 힘이 되는 말들이었다. 저자가 후배 프리랜서 번역가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의 메세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영'이 일하던 편의점의 매출이 연일 바닥을 칠 때 사장님이 하셨던 말도 울림이 크다. "장사가 되는 날도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는 거지 뭐. 길게 보고 꾸준히 가야지 일희일비하면 안 돼."

 


이 책을 읽으며 이 땅의 수많은 프리렌서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그리고 동시에 환상도 깨졌다. 회사 다니다 힘들 때 한번씩 그런 생각들 하지 않나,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프리렌서들은 참 좋겠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돈벌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유명한 말을 떠올려 본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리고 프리렌서도 그랬다.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메여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 직장인에게는 프리렌서라는 직업에 대해 묘한 동경과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프리렌서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알게 되었다. 일이 없을 때 느끼는 초조함이 어떤건지, 소속감이 없어 느끼는 불안함이 어떤건지. 그러다 일이 내리 계속 안들어오면 스스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백수인지 착각마저 든다 하니 마음 고생이 오죽할까. 베테랑 프리렌서일지라도 몇달에 한번씩은 1~2주로 일이 없는 시기가 생긴다고 하니 초보는 말해 뭐하겠나.

 


<초보 프리랜서 번역가 일기>를 통해 다른 직업군에 대한 이해가 넓어질 수 있어 좋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살았을 이야기들이었다.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공감도 있었다. 거기다 실용적이기도 했던 책이었다. , 영어공부나 다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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