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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사랑과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위험한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
충분히 외로워할 시간
혼자만의 시간
자기 존재와 마주할 시간
환상을 깨뜨릴 시간
감정들을 바라볼 시간
나 자신을 기다리는 시간
한 아이가 울고 있다. 사랑이 끝나 버린 것이다. 그 아이는 마치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허무한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다. 대상이 나타난다. 첫눈에 반한다. 편지를 쓴다. 그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행복해진다. 마음 속에 자리잡던 허허로운 벌판들이 알록달록한 빛깔의 꽃과 나무들로 채워진다. 환상 속에 그대는 환한 빛 속에서 내내 웃고만 있다. 따뜻한 공기가 피어오른다. 조금씩 한 걸음씩 그에게로 다가간다.
"당신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정말 당신을 좋아해요!"
당찬 고백이 이어지고, 뒷걸음질치는 아이 앞에 한 사람. 그렇게 멀리 멀리 떠나버린 사람 앞에서 아이는 또 울고 있다. 아이는 얼마 간 아플 것이다. 그리고 개운하게 기지개를 펴고 일어날 것이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세상을 향해 성큼 걸어나가는 날, 아이는 다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아이는 바로 '사랑 중독자'인 나다. 나는 늘 이뤄지지 않을 상대를 골라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희망 없는 뿌리에 꽃이 피어나길 기도하듯 고백을 했고, 결과는 늘 비참했다. 이런 나를 지켜보는 친구는 안타까워하며 좀더 어울리는 상대를 찾아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자주 충고했다. 하지만 나는 고통에서 금세 빠져나와 새로운 대상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대상을 찾는 순간 한껏 벅차오르는 그 감정을 사랑했다. 그랬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자신, 그러니까 '사랑' 그 자체에 빠져버린 것이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도 '사랑' 그 자체에 빠져 버린 에미가 등장한다. 에미는 잡지 정기구독을 취소하기 위해 메일을 보낸다. 주소를 잘못 기입하는 바람에 레오에게 잘못된 메일이 도착한다. 거기서부터 에미와 레오는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메일 데이트'를 시작한다. 메일을 기다리는 시간 사이사이에서 그들의 환상과 사랑은 섬세하게 피어오른다. 기다리는 동안 실체가 없는 한 사람을 기다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남편과 함께 잠들어야할 시각에도 살짝 빠져나와 모니터를 바라보며 메일을 기다리는 에미. 자는 동안 에미의 메일을 놓칠까봐 에미 메일 알람을 설정해 놓은 레오. 에미와 레오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단지 '글'을 통해, 행간과 행간 사이의 정적과 고요를 통해 서로를 느낀다.
에미는 두 아이를 가진 남편과 결혼한 서른 넷의 여성이고, 레오는 얼마 전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아픔을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서른 여섯의 남성이다. 그들의 이메일 사랑이 위태로운 이유는 바로 가정이 가진 여자와 싱글인 남성의 환상이 불러일으킨 사랑이기 때문이다.
에미는 확신했다. "레오, 당신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어요. 저는 당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아요!!!! 로맨스든 불륜이든 외도든, 그런 건 생기지 않을 거예요! 그냥 만남이 있을 뿐이에요."(p.287) 하지만 모든 걸 확신하는 사람일수록 강하게 흔들린다는 걸 나는 안다.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 데이트를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마치 내가 에미가 된냥 레오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나또한 한 아이의 엄마이자, 버젓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서른 살의 여성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이렇게 위태로운 시기가 찾아올거란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감정이라는 것은 참 우습게도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어서 빠져들기 시작하면 절대로 중간에 멈추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 만나고 그만 둬야지 생각했다가도, 한 번 만나면 한 번만 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하면서도 끝나지 않는 것이 만남의 법칙이다. 거기다 사회, 문화적으로 금기시되는 금지된 사랑이라면 그 관계의 벽 사이에서 더 불타오르는 것이 사람의 심리다. 점차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자 머리가 그쪽으로 굴러가 버린다. 다시는 이런 사랑을 만나지 못할 거란 슬픔, 왜 하필이면 지금 나타났을까 하는 신에 대한 원망, 이 운명적인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까지 버무려져서는 도무지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감정의 모험이 시작된다. 그 모험은 끝장이 나고서야,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고서야 자신의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환상이 깨어지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에미와 레오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사랑이 변하면, 비밀이 폭로되면 어떻게 될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하지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떠한 일에 맞닥뜨리게 되면 으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만은 다를 거야.' , '정말 운명이라는 게 있을지도 몰라.' 그들 자신의 시간들이 실체도 없는 환상에 장악되어 현실의 생활이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신경쓸 겨를도 없이, 그들은 이미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막바지로 흘러가면서 이야기는 점점 그들의 만남으로 집약된다. 메일 내용을 소중하게 인쇄하여 서류철에 묶어 보관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에미의 남편 베른하르트. 현실 속에서 남편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 에미. 에미의 남편에게 꼭 한 번 자신의 아내를 만나 환상을 깨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레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때는 두 아이가 있는 나이 많은 남편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을 에미임을 알기에 나는 슬펐다. 식어버린 열정은 평화로운 일상을 견뎌내지 못하고 에미를 들쑤셨을 것이다. 외롭고 텅 빈 감정에게 어서 색다른 공기들로 가득 채워달라고 졸라댔을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한 i 하나로 잘못 보내진 이메일을 통해 서로가 연결되었던 것처럼 그들은 a와 i 차이로 만남이 깨어진다. 늘 에마로 부르던 남편이 레오를 만나러 나가던 에미에게 레오만의 애칭인 '에미'로 부르는 순간 에미는 레오의 만남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레오의 메일 계정은 사라진다. 처음부터 몰랐던 사이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원점이다. 남은 건 헝클어진 세 사람의 마음 뿐.
사랑할 대상이 없었을 때는 사랑하는 관계의 이별조차도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진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헤어지게 되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으면 싶었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돌덩이가 되어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난 뒤의 그 허전함은 내 마음에 자리조차 없었던 외로움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하는 시간들로 채워져 갔다. 그리고 지금 사랑하는 자신에게 빠진 에미, 환상 속에 빠진 에미와 마주했다. 그리고 알았다. 우리는 대상이 다를 뿐 모두들 뭔가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기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혼자 남겨지는 것을 잊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다. 사랑에 중독되는 것도 그렇고, 스마트폰이나 술, 텔레비전 등 수많은 것들을 하며 우리는 허전함을 채우려고 애를 쓴다.
새벽 세시, 차가운 바람이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시각. 나의 역사를 알고 있는 별빛들이 흐르고, 나를 더욱 환상의 세계 속으로, 그 유혹의 손길로 이끌 밝은 달도 두둥실 떠 있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모험에 나선, 현실을 망각한 에미의 최후를 보고 나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 지독한 설렘이, 목이 타는 기다림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는가를.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독될 대상이 아니라 텅빈 혼자만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어딘가에 한눈 팔려 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을 마주할 시간. 소리없이 우울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끝까지 쫓아가보는 일. 혼자 있는 시간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일. 그리고 몸서리치도록 한껏 외로워지는 일. 그래, 우리는 충분히 외로워할 시간이 필요하다. 가슴 벅찬 열정 대신 외로움을 느끼는 일. 그러면서 나 자신이 나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젠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