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청소부 소소
노인경 글.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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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소녀가 '뭉글뭉글'을 머리 위에 이고, '반짝반짝'을 손에 쥐고 '말동무'를 다리에 붙이고 구부정 나를 바라본다.

'비밀'이란 책 옆에는 청소기구가 가득 실린 자동차가 지나간다.

 

책청소부 '소소'를 소개합니다!!!!

책 청소부 소소는 무척 바쁘다. 많은 사람들이 소소에게 전화를 걸어 책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워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얼른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소소. 오늘은 또 무슨 책일까.  

빨간 머리 앤이 약장수 말에 속아서는 염색약을 쓰면 까맣고 찰진 머릿결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홀딱 넘어가 초록색 머리가 되어 버린 앤이 슬퍼하는 부분. 바로 초록 머리가 된 부분을 지워 달란다.

자, 준비 됐지?

소소는 열심히 책을 끄집어내어 청소기로 글자들을 빨아 당긴다.

 

가끔은 자신이 주인공인데 왜 이러냐며 무진장 떼어내기가 힘든 글자들도 많다.

위협하는 '조각'이라는 글자도 있었고, 징징 울어대는 '슬픔'이라는 글자도 있었다.

매달리는 것도 단어들 별로 가지각색이다.


그래도 고객이 원하면 하는 것이 소소의 의무 아닌가. 소소는 책 청소부니까.

매정하게 그 단어들을, 문장들을 떼어내고 청소기에 밀어넣는다. 미안하지만 안녕.

 


청소기의 단어들을 털어내니 방안에는 온통 단어들로 그득하다. 그들은 소소와 함께 놀자고 징징댄다. 좋아. 소소는 함께 끝말잇기도 하고, 글자를 따라 파도를 탔다가 화살을 쏘았다가 우산을 썼다가 줄넘기도 하고! 놀거리는 밤을 새도 다 모자랄 정도였다.

와, 도서관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어. 온 동네에, 온 도시에 글자들이, 문장들이, 책들이 둥둥 떠다니고,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날아가고 뛰어가고. 가끔은 그들도 책속에 박혀있기 보다는 바깥 공기를 시원하게 맛보고 싶지 않았을까.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로워지기를!

 

 

 두고두고 읽었으면 좋을만큼 내겐 좋은 그림책이었다.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어른들은 늘 전체를 봐야한다고 말하지만 문장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 하나에 답해주느라 책 읽는 게 느리다는 노인경 작가의 말. 나도 그랬다. 전체적인 건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소하게 나마 한 줄 한 줄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 어느 쪽이 부족하면 다른 쪽을 개발하는 게 좋은 게 아닐까. 어쩌면 소소한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에 이 소녀의 이름은 '소소'일까.

 

 나는 잠시 이 책을 읽고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별'을 지워 버린다면 양치기는 그 아름다운 밤, 별자리에 대해 말하지도 못했을 거고 어둠 속에서 할말 없이 쭈뼛거렸겠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달빛을 없애달라고 한다면 허 생원은 크하, 하면서 첫사랑 이야기를 주구장창 하지도 못했겠지. 난 왜이리 고약한 상상만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꼭 있어야만 이야기가 만들어지겠지만 없다고 생각하니 우스꽝스러워진다. 피식 혼자 웃었다. 그리곤 수많은 전쟁과 다툼과 슬픔과 아픔이 담겨진 책에는 아름다운 별빛과 따뜻한 햇살과 달콤한 위로와 반짝이는 평온을 넣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소소는 청소부라서 지우는 역할만 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자신이 지운 단어가 꼭 필요한 곳이 있다면 기증하는 것도 좋은 일이 되겠지. 나에겐 쓸모없는 조각 하나가 누군가에겐 반짝 떠오르게 만들어 줄 단 하나의 희망이 될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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