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ㅣ 솔 출판사

카프카의 고독 3부작.
[소송], [성], [실종자]
카프카 전집 3권, <변신>, <카프카의 일기>,<실종자>를 완독하면서 누구도 경험할 수 없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자기자신만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끝내 구축했구나, 싶은 것이 너무 벅찬 감정이 들었다. 읽는 내가 주체할 수 없는 전율에 휩싸이게 된 건 도대체 무슨 일일까. 처음엔 읽어도 무슨 생각을 적은 것들인지 알 수없고 답답하고, 어려웠던 카프카였는데 어느 순간, 그의 말들이 선명하게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그만의 암울해서 불편했던 분위기가 이제는 아늑해진 느낌이다.
카프카의 실종자는 고독을 대표하는 세 편의 시리즈 중 하나다.
누구나 환영받습니다.
카프카는 여행을 떠나듯 흘러갔으나 실은 환영받지 못했다.
<변신>에서는 그런 자신을 인간 존재이길 거부하듯 벌레로 투영도해 봤고, <실종자>에서처럼 타인에 의해 추방도 당해봤지만, 그 어떤 여행도 쉽지 않았고, 부정당했고, 끝내는 미완의 장편소설로 끝을 열어놓게 되었다.
선과 악이 서로를 투명유리에 비취어 마주보는 눈싸움 속, 어느 쪽이 이기라 편들지 못하는 실눈 뜬 카프카가 보인다. 모든 인생의 이야기들은 타자가 개입한 기준대로 휘둘리는 카프카로 묘사되어 억울하고 어의없는 정체성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끼고, 부조리를 감당하는 아웃사이더의 위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인 것이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살다간 시대 배경 또한 그로테스크하다.
체코의 독립투쟁, 제 1차 세계대전, 인종차별, 가난, 가족의 비애, 질병 등 어느 것 하나 카프카에게 쉬운 현실문제는 없었다.
<실종자>
열 일곱살의 주인공 카알, 나이많은 하녀의 유혹에 빠져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카알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추방한다. 카알은 미국 도착 후 배에서 내리기 전 두고 온 우산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길에 화부를 만나 그와 함께 선장을 만나러 간 사무실에서 미국에서 성공한 외숙부 야콥 상원의원을 만나 그의 집인 뉴욕의 고층빌딩에서 생활하게 된다. 외숙부는 카알에게 아메리카 상류사회 진입을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을 지원해 준다. 어느 날 카알은 폴룬더 씨의 뉴욕 교외 별장에 방문을 하게 되고 이 일로 인해 외숙부의 원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이후 두 친구 들라마르쉬와 로빈슨을 만나 (그들에게 이용당하지만 친구라 믿는 카알) 함께 일자리를 구하러 가다 옥시덴탈 호텔의 엘리베이터보이로 취직하게 되고 그들과 헤어진다. 여주방장과 비서인 테레제와 친해지고 엘리베이터보이 생활도 열심이지만 술에 취한 로빈슨이 찾아와 잠깐 자리를 비운 이유로 오해를 받아 그곳에서 쫓겨난다. 로빈슨과 들라마르쉬 그리고 은퇴한 여가수 브루넬다가 있는 곳으로 가게 되고 여기에서 시중을 들다 도망가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우연히 이웃에 사는 대학생과 나눈 대화 중 그냥 지금처럼 하인으로 살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충실한 하인으로 살아가던 카알은 이사를 하고 오클라호마 극장의 직원으로 채용되어 기차를 타고 떠난다. 기차를 타고 떠난 모든 사람들이 실종된다.
미완성의 부분으로 소설에는 없다.
유일하게 주인공이 죽지 않은 실종자.
어쩌면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떠나지만 그 이별이 항상 어그러져있고, 밀려진 형태의 추방이나 해고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카프카는 미련없이 떠난다.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그러나 막상 섞이자니 익숙하지 않아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털어버리는 듯한 공간의 이동들. 그리고는 죽거나 사라지는 모습으로 본인의 현실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싶다.
그리고 카알은 미니멀하게 자신과 관계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간다.
카알 로스만이라는 이름은 숨기고 니그로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산, 트렁크, 모자, 멋진 옷, 부모님 사진, 직업, 돈, 트렁크, 자유, 이름, 자기자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희망적인 것인지, 절망적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실종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의 두 갈래를 동시에 넘보 듯, 카알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두 마음을 온전히 품고 바라보게 되는 걸거다.
어느 쪽의 삶이 인간 본능적으로 끌리는 엔딩일지 그것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