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박노해 사진에세이 1
박노해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느린걸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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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사진에세이 4종』​​
박노해 (글/사진) | 느린걸음 (펴냄)



하루 ONE DAY

께로족 마을 총회
안데스 고원의 해발 5천 미터 께로족 마을 총회.
일곱 개 마을의 께로스인 전체가 한자리에 모여
공동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여기가 이들의 국회다.
130여 명의 남녀노소가 초원에 둥글게 둘러앉아 
전원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서로 발언하고 경청한다.
공동체를 위한 시간은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다.
그 결정들이 내 삶의 하루를 변화시키기에.


- 마을 공동체 전원이 모여 회의를 하는 모습이 인상깊다. 게다가 모두의 발언을 경청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 발목을 잡는다. 하루가 가더라도 이런 하루하루가 모여 이룬 새 날들의 진언장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오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발 5천 미터에서 보여 주는 그들의 '함께' 하는 삶은 안데스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는 중이다. 나도 이곳 내가 사는 마을에서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힘이 한 뿌리가 되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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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박노해 #내작은방 #단순하게단단하게단아하게
#리딩투데이 #리투리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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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미래지식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변학수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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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식 클래식 01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ㅣ 변학수 옮김 ㅣ 미래지식 펴냄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씨름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을 다시 보니 또 눈에 들어오는 싱클레어의 성장 변화가 다르게 해석된다. 전에는 융에 꽂힌 헤르만 헤세의 에고와 셀프의 무의식적 내면 심리 묘사가 전혀 내 삶에 적용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완독한 데미안에서는 더 큰 의미의 내적 들여다보기 깊이와 넓이가 동시에 성장한 느낌이다.
줄탁동시로 너무 유명한 위의 저 구절은 데미안 전체를 상징하는 우리가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새로운 세계의 대면이다. 그런데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하는 부분까지만 너무 집중해서 그랬던걸까. 그 뒤에 따라오는 더 큰 세계로의 통로를 놓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다시 보는 데미안에서 내가 꽂혔던 이 두 문장이 아브락사스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두 세계를 경험하고 있구나...싶다. 아브락사스는 반은 신, 반은 악마인 반신반악의 상징이다. 언제나 옳고 선한 세계만을 동경하며 향해왔던 우리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세계란 존재의 긍정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데미안에서 새가 날아간 그 신, 아브락사스를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란 나의 또 다른 내면 속 자아를 만나지 않고 인정하지 않겠다란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인간 개인의 존재를 분리해서 악은 억압해야만 하는 것이라 말한다면 싱클레러가 겪는 현실의 두 세계가 어렵기만 할 것이다.
 
나는 선한 사람일까. 착한 사람일까. 바른 사람일까. 성실한 사람일까. 열정적인 사람일까.
나는 악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예의없는 사람일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일까. 나태한 사람일까.
나란 존재를 판단하기에는 다양한 개성과 성격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인간은 선과 악의 집합체로 어느 한 단면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우리는 나 자신을 속이는 일도 수도없이 하고 있다. 속으로는 싫어해도 겉으로는 웃는다거나 속으로는 부러워하고 간절히 원하지만 겉으로는 아닌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이중적인 면들은 나 외엔 알 수 없다. 두 세계가 내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충돌하고 이기고 지는 싸움을 벌인다. 아브락사스는 그런 신이다. 우리는 선만을 추구하고 악에 관관계된 나의 모습은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나의 에고만 인정하고 셀프를 외면하는 바라보기란 고통만 따를 뿐이다. 모든 순간도 나였고, 그런 나란 존재가 아브락사스였다.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를 찾아가는 길은 알을 깨부수는 단계에서 뚫고 날아오르는 순간을 이겨내는 것이다. 
다시 보는 데미안이 너무 좋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책좋사 서평이벤트와 미래지식출판사에서 지원받았습니다.
#데미안 #헤르만헤세 #변학수 #미래지식 #미래지식클래식 #책좋사 #책좋사서평이벤트 #융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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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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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북적북적
『도스토옙스키의 명장면 200』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펴냄)

200개의 명장면으로 뽑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불안, 고립, 권태, 권력, 고통, 모순, 읽고 쓰기, 아름다움, 삶, 사랑, 용서, 기쁨
석영중 교수님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번역하여 소개한 도스토옙스키 문학세계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마주하게 해 준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중에서 200장면만 추려서 뽑아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주제 키워드로 묶어 놓은 장면들은 작품과 작품 세계를 넘나들며 대문호의 세계관을 일관되게 따라갈 수 있었던 장점이 있었다. 4대 장편 죄와 벌, 악령, 백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한데 모아모아 최고의 씬 스틸러 장면들로 만나볼 수 있고, 이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지하로부터의 수기, 분신, 죽음의 집의 기록, 노름꾼, 미성년, 가난한 사람들 등 도스토옙스키의 정신과 신앙관, 역사관을 총체적으로 종합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내면에서부터 외부로 표출해야 할 여러가지 감정 서사가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인간 관계를 통해 해석되고 연결되는 삶의 감정 언어들이다. 그래서 좋은 것들도 있고, 나쁜 것들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통해 나를 대리한 감정이입을 경험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보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친 감정은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다. 좋고 나쁘다는 감정을 갈라서 편견적 의지를 내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복합적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관찰하고, 당당히 마주하는 용기를 주는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 문학 세계의 중요한 화두 중 선과 악의 이야기들은 매작품마다 만나면서 논지거리를 안겨주는 것이다. 도대체 불안은 악의 어느 교차점에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는 것인지, 불안과 고립이라는 막바지 감정 장벽 때문에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 고민하는지, 그래서 힘과 권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신의 이름으로 용서는 구할 수 있을런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해서 읽고 기록하면서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라 말할 수 있는건지,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맘껏 기뻐할 수 있는건지.

석영중 교수님은 이런 말을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다른 어떤 책에서보다 그의 소설에서, 그 치열함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 치열함 맨 밑바닥에 있는 삶에 대한 사랑에서 힘을 얻곤 했다'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내포된 문제들을 마주할 때 조차도 치열하게 덤벼든다. 그런 뚝심은 단련되고 훈련되어야 단단해지는 법이다. 그 단단함을 명장면 200을 통해 검증해 보면 된다.

인생의 매 고비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고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했고 그에게서 삶의 지침을 얻었다. 그러므로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그를 연구한다기보다는 그에게서 배운다는 생각이 앞섰고, 더 이후에는 배운 데 대한 보답으로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앞섰다.
- 서문을 대신하여: 광야의 도스토옙스키

내 자신에게만큼은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 자세.
진실을 말할 때조차 진실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말했다고 말하는......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이나 주변에 있는 진실을 감지하지 못하며, 반드시 자신이나 타인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 41. 불안

자신에 대한 불신은 불안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고통에 대해 절대적이고 상대적이다~라고 말한다. 고통은 선과 악을 연결하는 교착점이 되기 때문이다. 고통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 가운데 검은 그림자를 드리울지 모르겠으나 고통 역시 아름다움의 한 변모라고 자신을 설득하다보면 행복의 다양한 정체성을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남 자체가 기쁨이고 감사함이라는 것을 명장면 200을 통해 깨닫게 된다. 



#도스토옙스키의명장면200 #열린책들 #석영중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리투북적북적
#독서카페 #러시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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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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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사랑해유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지음) |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부제는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917 이다.
책 커버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100년 역사 영토 변화를 리얼하게 볼 수 있어 책 읽기 전 사전 지식을 알아보기에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아, 그런데. 책을 읽고 난 후 이 방대한 살아있는 100년 전쟁의 역사이면서 지금도 진행중인 대치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다고 써야할까....고민이 들었다. 
우선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지함이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중동의 이야기가 단편적이고 관심도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세계사 흐름 알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편견을 갖고 그들을 대하게 만드는 것도 내게는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버렸다.

정착민 식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낯설고 배타적이며, 문화탄압과 자유억압이 공포스럽게 만연할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강하게 만들었다. 겉으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처럼 보였지만 그 내막과 실상은 단순한 두 민족의 대립구조가 아니었다.
100년 동안 자그마치 여섯 번의 선전포고가 있었다. 
1917년, 밸푸어 선언은 시온주의의 맥을 잇는 정통성을 부여해 주게 되므로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들어주는 일을 서슴없이 해버렸다. 열강의 힘과 거대 자본이라는 베네핏을 장착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공정하지 못한 땅따먹기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열강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은근슬쩍 이 전쟁에 발을 집어넣고 훈수를 두기 시작한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그들을 우회하고, 제거하기 위해 힘쓴다. 바젤에서 시온대회가 열린 이후 이스라엘이 국가로 탄생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은 민족적 존재에서 지워져 자신들의 땅에 유대국가가 세워지도록 꿈틀한번을 제대로 못했고, 배척당하고 타지로 여기저기 흩어지는 사이에 종족 청소가 자행되고 있었다. 
시온주의가 성공을 이룬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민족국가로 보일 수밖에 없는 연민과 동정 이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관념과 재현, 언어와 이미지가 문제시 되는 국제 세계에서 오직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팔레스타인의 현실 이해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불평등을 화두로 아랍권 국가와 유대국가를 양분하는 자극은 서방 국가들의 정의로움과 민주사회 추구 이념을 구축하려는 의지에 힘을 실어주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1948 독립 선언에서 종교나 인종,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거주자에게 완전히 동등한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다고 했으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토분쟁이 끊이지 않는 피로감이 쌓이는 나라들이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단순 사고가 완전한 반전을 경험하는 부분이 여기서부터였다. 불평등을 야기한 시온주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근거없는 국토 획득 정당성을 무기로 휘두르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점령지에서 비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다루고, 팔레스타인인들의 독립 희망을 말살해 버리리기도 하는 일말의 모든 정책결정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이 실추됨을 드러내면서까지도 자행한다. 
어쨌든 그들은 정착민 식민주의화를 문제삼고 있지만, 현재 두 민족의 대립이 처한 상황으로는 두 민족이 공존하나, 서로 상대의 민족적 정통성을 부정하고 인정하려 들지 않는데에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다시 찾고자 대중적 저항을 지속하고 있다.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입지 또한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아랍 국가들의 반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미국의 역할도 우리가 주시해 봐야하는 것 같다. 패권국가의 위력이 다소 흔들리는 듯한 미국을 볼 때, 중동에서 리드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님도 우리가 알고 있다. 중동의 위기에서 늘 한발 뒤로 물러서 있던 미국이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도 주도적 영향력을 영원히 행사하리라고 보진 않는다. 
공존의 시대, 평화를 바라는 소망이 큰 욕심인걸까. 정의롭고 평화로움이 우리 인류의 꼬리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팔레스타인에서 떠도는 100년 동안의 방랑이 피를 부르고, 복수를 부르고, 기아와 죽음을 부르는 참혹함을 몰고 다녔다. 이 전쟁은 끝날 전쟁일까, 아닐까. 어느쪽도 물러설 수 없는 민족의 정체성을 두고 충돌하는 이 시간들이 100년에 100년을 더하게 되면 안되는데...라는 무거운 한숨이 나온다. 멈출 수는 없는걸까...하는 바람도 간절히 내비춰본다. 

#팔레스타인100년전쟁 #열린책들 #라시드할리디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사랑해유 #시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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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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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 - 사랑해유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지음) |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펴냄)

네 번째 선전포고로 넘어갑니다.
1982년 레바논 침공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분수령이 되었다고 말할 대규모 전쟁이었지요. 이 레바논 침공은 아랍 각국의 군대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이 주력이 되어 최초로 벌어진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공격하고, 미국은 전면 지지할 것이고, 소련은 공격을 저지하거나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동맹자들을 보호할 역량이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침공에 관해 미국 관리들은 일체의 어떤 행위에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하지요. 1982년 전쟁을 개시하고 수행하는 전 과정에서 이스라엘과 공모한 점도 그렇고, 미국에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안전 보장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당시의 참모들이었던 레이건, 헤이그, 하비브 등......고인이 되어버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심판대에 오른 이들이 없습니다. 


#팔레스타인100년전쟁 #열린책들 #라시드할리디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사랑해유 #시온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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