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인페르노 BLACK INFERNO
오성은 지음, 연상호.류용재 원안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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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버스를 타고 캠핑을 떠났던 아이들이 사라진다. 그리고 며칠 후 검은 절벽, 블랙 인페르노에서 발견되는 버스. 아이들을 삼켜버린 어둠. 메건은 이 사고로 아들 제이든을 잃지만 그녀의 곁을 지키며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과 ‘낙원의 아이들’이란 가상 프로그램을 통해 고글을 쓰면 만날 수 있는 가상의 제이든과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제이든이 살아 돌아온다. 기쁨도 잠시, 13년만에 본 아들의 얼굴은 낯설고 내가 알던 아들이 아닌 것 같다.

(사실 제이든은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겪고? 벌이고? 돌아온 것... 스포하고 싶다... 손가락이 간지럽다...)

돌아온 아들이 본인이 알던 제이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가상의 제이든에게 의지하는 메건의 모습은 읽는 사람마저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과연 나였다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가상의 제이든은 메건의 편파적인 기억과 감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대상이기에 13년만에 진짜 제이든을 만났을 때의 이질감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제이든이 돌아오면 전부 해결될 것 같았던 모든 일은 오히려 제이든의 등장으로 더 엇나가기 시작하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이 같은 과정은 빠른 장면 전환을 통해 서술된다. 상상하고 고민할 수 있는 빈틈이 곳곳에 숨어있어 오히려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들과 인물, 요소들을 곳곳에 심어두어 장면에 더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자살한 남편의 일기장이나 이사야서의 구절, 각자만의 비밀과 아픔을 지닌 인물들 안에 숨겨둔 설정이 많은 것 같은데... 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해온 부산행, 지옥 같은 작업물도 결국 절망 앞에서의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주제로 해온 만큼 이 책도 같이 읽고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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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8
제인 오스틴 지음, 김지선 옮김 / 빛소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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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미혼남에게 반드시 아내가 있어야 한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진리다.’
너무나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 로맨스의 시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거의 10년만에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등장인물들이 나보다 어리다는 점에 일단 세월의 흐름을 느끼고 시작했다는 것은 함정(^_ㅠ). 그땐 그저 이야기의 흐름과 결만만을 위해 달렸다면, 지금은 그 시절의 풍경과 분위기, 제인과 엘리자베스 외에도 다른 등장인물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조용한 시골 마을, 딸 다섯 집의 베넷가는 근방에 새로 이사 왔다는 ‘빙리’에 대한 소문을 듣고 딸을 시집보낼 생각에 들뜬다. 특히나 미모로 유명한 이 집의 첫째 딸 제인! 빙리와 제인은 서로를 보자 첫눈에 반하며 순탄한 사랑길만 걷게 되는 듯 싶지만, 가문과 신분, 재산 등의 ‘조건’이 중요한 이 시절의 연애와 결혼에서는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슬픈 사실...

반면 빙리의 친구로 이 마을을 찾은 ‘다아시’의 오만한 첫 인상을 보고 편견을 가지게 된 둘째 딸 ‘엘리자베스’! 저 남자와는 절대 춤을 안 추겠다 다짐하지만 원래 다~ 그러면서 사랑이 시작되는 법, 완전 로맨스 혐관의 시초 아닌가.
유명한 가문에 엄청난 재산,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를 가진 남주에게 교통사고처럼 다가온 여주와의 첫만남,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하며 시작되는 남주의 사랑앓이와 남주의 짝사랑을 모르는 눈치 없는 여주, 그리고 때마침 등장하는 방해꾼까지 모두 담긴 이 소설, 원래 다 알아도 재밌는 법 아닌가유~ 젊은이들의 사랑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법이다.

딸들의 결혼에 집착하고 엄청난 유난을 떨어대는 베넷부인은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가벼운 언행에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얼굴에 철판 제대로 깔아놓으신 분 같아서 책을 읽으며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지만 딸들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이 시대의 ‘한정상속’이라는 제도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양가감정이 엄청났다. 남은 인생을 풍족하게 지내려면 무조건 부유한 가문의 좋은 남자를 잡아 결혼하는 게 이 시대 여자들의 유일한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태어날 수 있었던 나는 정말 행운이다 싶고, 이걸 이렇게 유쾌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작가가 달리 보인다. 단순한 연애소설로만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 책이 고전으로 널리 읽히는 이유를 다시금 느꼈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베넷 집안 사람들의 민낯을 낯낯이 폭로하는 작가의 날카롭고도 재치있는 풍자에 웃겨 죽을 뻔. 꽤 긴 분량이지만 배꼽 잡고 웃느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내가 처음 읽은 고전이었던 이 책을 근 십년 만에 다시 읽으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움을 느꼈다. 이번에는 친구들과 ‘이 남자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 무슨 생각인 것 같아?’ 수다 떠는 느낌으로 읽어서 더 재미있었다😆 역시 재독의 즐거움!

+) 영화의 한 장면을 표지로 옷을 새로 입은 이 소설, 너무 예쁘지 않나요 ㅠㅠ 소장가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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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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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박적골부터 시작해 서울까지 이어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자서전.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까지를 아우르는 역사가 담긴 소설이지만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보아지는 시대상은 새롭다. 아픈 이야기지만 순수한 시선으로 담는 일상 한 편, 한 편이 너무도 소중했다. 할아버지와의 남다른 애착과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남매를 지키려 악착같았던 어머니, 동경했던 오빠와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남매를 아껴주었던 숙부, 숙모들까지. 대가족이 함께했던 즐거움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내어 그때 느꼈던 감정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너무도 유명한 소설이지만 이옥토 작가의 사진을 표지로 새 옷을 입은 이야기가 찬란하고도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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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쑤기미 - 멸종을 사고 팝니다
네드 보먼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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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얼빠다. 이 멍청한 외모에 꽂혀버렸다. 너무 귀엽잖아? 이 책, 안 읽을 수 없잖아?

📌그리하여 ’멸종 크레딧‘이 생겼다.
오늘날에는 브라마사무드람 광업 회사처럼 어느 생물을 지구상에서 멸종시키고 싶은 회사가 있다면 기본적으로는 바우처를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그 바우처의 이름이 바로 ’멸종 크레딧‘이었다. 멸종 크레딧으로는 지구상의 어떤 종이든 불도저로 밀어 버릴 수 있는 권리를 살 수 있지만, 바루나호에 타고 있는 스위스 여자 같은 동물 인지 능력 전문가가 ’지능이 있다‘고 인증한 종은 예외였다. 그런 경우에는 한 개가 아니라, 열세 개의 멸종 크레딧을 제출해야 했다. (p.39)

배경은 음식의 맛이 사라지고 뭔가 맛이 나는 음식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는 기후 위기 세상이다. 벌어들인 돈의 마지막 한 푼까지 곧장 목구멍으로 넣는 ’핼야드‘는 ‘어떤 소문’을 듣고 멸종크레딧의 가격이 더 낮아질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멸종크레딧을 이용한 재테크를 시도한다. 자동채굴선을 이용해 사업을 하는 광업회사의 환경영향 책임자가 되어 멸종 크레딧을 살 돈을 받은 다음, 멸종 크레딧의 가격이 떨어질 때까지 몰래 기다리다가 그 차액을 챙기는 것. 그러나 멸종크레딧의 가격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오히려 급등하고, 심지어 자동채굴선은 자동으로 독쑤기미의 서식지를 밀어버린다. 그리고 핼야드의 회사가 고용한 동물 지능 평가사 ’카린‘은 독쑤기미가 지능이 있다는 것을 인증하려고 한다. 지구상에 얼마 남아있지도 않았던 독쑤기미의 서식지가 사라지고 멸종으로 추정되는 지금, 독쑤기미의 지능까지 인증된다면 열세 개의 멸종 크레딧을 살 돈을 구하거나 사기죄로 감옥에 가야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남아있는 독쑤기미를 한 마리라도 찾아내야 한다. 광활한 바다에서 독쑤기미 찾기라니,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핼야드와 카린의 독쑤기미를 찾기 위한 우당탕탕 쿠당탕 모험이 시작된다.

일단 이 책, 웃기다. 상황이 심각해질수록 점점 더 웃겨진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내용들은 전혀 가볍지 않다. 작가가 상상한 내용들이 현재 인간들의 행태를 비꼬고 비웃는 것 같은 건 나만 느끼는 것일까. 살아있는 개체가 없어도 뇌 스캐닝과 행동양식, 습성, 영역 등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다면 멸종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인간들이 슬퍼하는 동물의 멸종은 귀엽고 인간들에게 기쁨을 주는 동물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닌지. 매년 수천 종의 멸종이 일어나는 가운데, 인간들은 자기 먹고살 궁리나 하자고 멸종 산업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의 아이러니. 화재와 홍수, 전염병, 폭동, 전쟁 그리고 더 중대한 일 보다도 ‘맛있는’ 음식이 사라져 슬퍼하는 인간의 모습. 맛없는 음식을 먹기 전에 맛에 대한 평가를 없애버리는 약이 인기상품이 되어버린 작 중 현실까지. 코미디면서도 아찔하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물고기라고 하는 독쑤기미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 깡패들처럼 묻지마 복수(?)도 즐기는 독쑤기미는 이런 멸종을 초래한 인간들에게도 복수하고 싶을까. 정말 인간의 죽음을 원할까. 어쨋든 우리 귀여운 독쑤기미 분량 더 줘. 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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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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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말한다. 구름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땅과 이어지지 않으며 자연색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사진은 실패작이라고. 헤세가 이렇게 빡센 구름 집착남이었다니. 하지만 이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연의 웅대한 모습 앞에 자신을 대지의 아이일 뿐이라 칭하는 헤세의 순수함이 사랑스럽다.

맑은 하늘, 흰 뭉게구름만 생각했던 나의 유아적 사고를 혼내듯 황홀한 묘사들의 연속이다. 올 풀린 회색과 보랏빛 구름이라니! 색채에 대한 묘사에 감탄하느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헤세의 문장대로 내 눈 앞에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실재하는 것처럼 펼쳐진다. 헤세와 함께 땅으로부터 이어지는 하늘을 감상하는 느낌에 젖어 읽었다. 내가 저곳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도 내가 같은 풍경을 봤다 해도 저런 문장의 한 글자도 따라가지 못했겠지. ’예,예쁘다…!‘ 말하곤 끝났겠지.

그게 바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라는 것을 또 깨달았다. 내가 보지 못하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일상에 쫓겨 하늘 올려다볼 일이 별로 없는 최근이었는데 다시 하늘을 관찰하게 되었다. 구름의 한 조각 조각들과 그 미묘한 빛깔을 감상하며 마음에 새기고 싶다.

독서, 음악, 자연, 예술에 대한 헤세의 사랑과 즐길 줄 아는 여유, 그걸 표현한 아름다운 문장들에 푹 빠져 헤엄치다 왔다. 헤세의 책을 읽을 때마다 구름에 많은 의미부여를 하게 될 것 같다. 책장에 넣어놨던 『페터 카친먼트』를 꺼내야겠다.

📝 산, 호수, 폭풍, 해는 나의 친구였고,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나를 길러 주었고, 또한 오랫동안 어떤 인간이나 어떤 인간 운명보다 나에게 더 친숙하고 소중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빛나는 호수나 쓸쓸한 소나무, 햇볕이 내리쬐는 바위보다 더 사랑한 것은 구름이었다.

📝 이제야 나는 구름의 아름다움과 서글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구름은 한없이 머나먼 곳으로 정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우리는 구름의 마법과 그 부드러운 슬픔을 통해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느낀다. 이는 마야의 장막이라, 실체 없는 허상인 동시에 모든 존재의 확실한 징표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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