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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 일상, 그리고 쓰다
박조건형.김비 지음 / 김영사 / 2018년 9월
평점 :
별것도 아닌데 예뻐서
한 부부의 일상을 담은 드로잉 에세이. 그림 작가인 남편이 짧은 글과 함께 스케치를, 소설가인 아내가 글을 보태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냈다. 부부의 사랑 넘치는 소소한 일상, 남편의 직장 등 ‘별 것 아닌 듯’한 이야기들이 제목처럼 참 예쁘게도 담겨 있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에게는 꽤나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만성 우울증, 성 소수자, 현장직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밝고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수식어들과는 거리가 있었다. 수식어는 수식어일 뿐 책을 읽어나갈수록 수식어들은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남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부부와 그들의 이야기다.
투박해 보이는 글, 그에 반해 누구보다도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남편, 남편을 포함해 타인을 포근히 안아주는 듯한 섬세한 글을 쓰는 아내. 두 사람은 물론 두 사람의 창작물마저 따로 떨어져 존재한다는 것이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서로를 짝지, 남편으로 불러주는 건 또 얼마나 예쁜지.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남편이 뇌종양 판정을 받는 장면에선 내가 다 철렁했다.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도 두 사람이 행복과 사랑을 이어나갔으면 한다.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173p 남편의 노동에, 아내의 노동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을까. 혹시 통장에 찍히는 숫자 몇 개로만 그 의미를 파악하며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음번에 그가 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면 그가 하는 일을 꼭 세세히 알아보고 이해하고 싶다. 그래야 우리의 노동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그의 노동이 아닌, 우리의 노동.
186p 그러나 ‘예술’이라는 이름 속에 기록되지 못한 것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에 무감하게 지워진 시간이, 삶이 있다. 그 시간을 사진 한 장으로 찍은 것도 역사가 되고 예술이 되는데, 하물며 그림으로 그린 풍경은 작가의 마음이 손끝에, 시선에 묻어 더욱더 귀할 수밖에 없다. ...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풍경을 발견해 작가의 시선으로 되살리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모두가 등을 돌린 곳에 끝까지 홀로 남아 지키는 모습이라니, 이처럼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모습이 예술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214p ‘목표’라는 것이 단어 하나, 문장 한 줄로 쉽게 쓰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매달리는 모두의 마음이나 삶까지 납작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283p 다가온 시간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어제의 삶에서 한 발 나아간 시간을 살고, 내 몫이었던 시간을 무엇으로든 기록하는 것. ‘기록’이란 시간을 거역하는 일. 그것만으로 우리는 비로소 시간이란 삶과 나란히 서서 당당하게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우리의 시간을, 아름다운 생의 그림들로 채워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