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살때 내 덩치 만한 개 두마리를 인계 받았지.
소유권이 아니라 양육권을.
산만한 놈들이 평소에는 딩굴며 갖은 애교를 부리다가도
시장서 줏어온 생선대가리 끓인 물에 보리밥 말아 주는데
내가 맛 좀 본다고 몇 숟깔 떠 먹었더니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 거리는게 정말 똥개였지.
늦여름날 학교 갔다 왔더니 소유권자가 이 중 한넘을 잡아 먹었지 머야.
내 눈에 살기가 돋혔는지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마다 실실 피하더라고.
한넘 마저 잡아 먹었다간 마을에 피바람 날릴까바
어디 멀리 나갈땐 꼭꼭 창고에 집어 넣고 문을 잠구어 두었지.
그런데 초겨울날 어이 없게도 창고에 뚫린 구둘장새로 들어온 연탄가스에 남은 한넘이 죽어버렸네.
결국 내가 죽인 거란 말이지.
미칠듯이 화가 났지만 찬바람이 불면서 좀 진정이 되니깐 너무 슬프더라고.
그거 알어? 시체를 만지작 거리고 있음 바로 정떨어져. 조금씩 무서워지거든.
그게 죽은 개가 무서운게 아니고 죽음이란게 무서운 거야.
그 덩치를, 굳어지니까 휠씬 무거운거지, 둘러 매고, 한손엔 삽을 질질 끌고, 산을 타기 시작했어.
산하나를 넘었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현기증이 막 나서 더 이상 갈 수 없을때 까지 간거지.
도대체 왜 거기까지 갔는진 알 수가 없어.그냥 미친듯이 간거야.
땅은 아직 얼지 않아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열심히 팠는데,,,망할,,,,
어디 남의 폐묘를 파헤쳤다는거 아냐. 어째 넘 파기 쉽더라.
봉분이 다 무너져서 그냥 흙덩인줄 알았던거지.
이미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지 바람은 점점 차지지 정신은 번쩍 들었지 기운은 하나도 없지 동네는 산너머에 있지 진짜 무서워지기 시작한거야
그래서 대충 울 똥개도 그 무덤, 그 구덩이에 밀어 넣고 덮어 버렸어.
합장했던거야.
몇해뒤 도시서 본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더라고. 무덤을 파해치니까 사람 대신 늑대 뼈다귀가 있는거...
다시 산 타는데 자꾸 목줄기가 서늘한거야. 계속 뒤돌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하고 삽 작은 손에 힘만 잔뜩 들어갔지.
많이 어두워졌지만 익숙한 산길이라 조금 늦었지만 밥은 얻어 먹었고
산에 개 묻으로 갔다는 증언이 많이 있었던지 어디 갔었는지 묻는 사람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더라고.
왜 이 생각이 나는가 하면
이제 조만간 또 한번 산에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그게 벌써 십오륙년전 이라는거 아냐. 애들이 막무가내로 나한테 떠 맡기고, 개 값까지 받아간게.
행복하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굶기거나 심한 병에 시달리거나 추위에 떨게 한적은 없다는 걸 위안해야 하나.
세상에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라는군.
말세야 말세.
세상에 이럴 수는 없어.
이제는 내 덩치가 훨씬 더 크니 가슴에 꼭 안고 갈거야. 안아줘 본 기억이 그리 없는 걸 보니 보상 심린가.
밝고 따뜻하고 탁 트인데다 눈에 흙 안들어가게 예쁜 상자라도 하나 있음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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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다듬으면....조자 로메로 감독이 매우 좋아할 소재....(return of the living dog..)

그땐 2010-12-2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같이 가요. 예쁜 상자는 제가 준비할게요.

무스탕 2010-12-22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염쟁이 유씨' 연극을 봤는데 거기서 그러더라구요.
무서운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이라고요. 시체는 뭘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요.
맞아.. 그러면서 봤는데 무서웠던건 시체가 아니고 '죽음' 이었군요.

마노아 2010-12-23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내주고 와요. 이젠 그때만큼 무섭지 않을 테지요. 함께 하는 동안 같이 행복했을 거예요. 아직도요...

진주 2011-01-18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죽은 개 보다 죽음이 무서운 거죠..
그런데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 아버지예요.
제가 초딩 때 3년간 각별하게 사귀었던 내 친구가 죽었어요. 내장을 도려내는 아픔으로 곡을 하고 우리집 화단에 묻었더랬는데 다음날 학교 다녀와서 말예요. 배고파 헐떡거리며 부엌 솥뚜껑을 왈칵 열었어요. 솥 속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운 내 친구가, 털이라곤 한 터럭도 없이 홀랑 벗겨서 누워 있었어요. 털이 없어도, 대가리가 없어도 내가 누군데 내친구를 못 알아보겠어요? 우리 아버지요, 입술에 침도 한 방울 안 바르고 절대 내 친구 아니라면서 맛있게 드셨어요. 느무느무 무서운 아버지!!!!!!!!!!!!!! 저 그 아버지랑 석달 동안 절교했었어요. 진짜 무섭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