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이라는 거울 - 한미일 안보 체제의 한계와 가능성
지지와 야스아키 지음, 길윤형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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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동맹이라는 거울>은 현재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정세를 보여주며 미일 양국의 외교사 뿐만 아니라 유사사태와 한반도의 위기가 어떻게 하나의 지정학적 톱니바퀴로 맞물려 돌아가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1905년 체제부터 이어져 온 '허브 앤 스포크' 전략 속에서 일본은 일국평화주의와 필요최소한론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자신들과 무관한 일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때이다.

일본은 기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미국의 확고한 안보 우산(확장억지) 아래에서 경제 성장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 현실을 직시하길 주저하는 이유는 연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미국의 안보 혜택은 누리고 싶지만,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타국의 분쟁이나 전쟁에 말려드는 것은 극도로 꺼리는 자기기만의 행태이다. 저자는 이를 평화주의로 포장된 '일본적 시점'의 한계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전쟁의 종결이나 동맹의 방향성은 '분쟁 원인의 근본적 해결'과 '타협적 평화'의 딜레마 가운데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미국의 등 뒤에 숨는 '타협적 평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일본 스스로 제3자적 시점을 통해 동아시아 전체의 안보를 조망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일본과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의 딜레마로 표출되는 어떤 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점부터 동아시아의 패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며 수많은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하고 폭력으로 억압하며 정당화하고도, 원폭 피해 국가임을 강조하는 그런 의식에서 흘러온 모순된 자기 인식 말이다. 스스로를 역사의 피해자로만 규정하려는 이 지독한 관성은 결국 '미국의 창'이라는 혜택은 누리면서도 타국의 전쟁에는 결코 얽히고 싶지 않다는 오늘날의 안보 딜레마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우리는 보통 한미동맹이라는 익숙한 관점에서만 세계의 안보를 고려하곤 한다. 그렇기에 한미일 동맹과 연관되어 있는 미일 동맹이 우리의 운명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곤 한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을 차분하게 짚어낸다는데 있다. 책장을 덮고 나면 한미 동맹이라는 시야에 가려져 있던 동아시아의 지도가 다르게 읽힐지도 모른다. 미일 동맹이라는 또 다른 축이 동아시아의 체스판을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해부한다. 이 책이 짚어내는 그 불편하고 낯선 지점들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가 서 있는 진짜 현실이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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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병의 끝없는 이야기 특서 어린이문학 17
이상권 지음, 오이트 그림 / 특서주니어(특별한서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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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소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는가. 전 세계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지만, 우리에게 닿지 않는 '보도되지 않는 전쟁'은 여전히 실재한다. 그 어둠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은 누군가의 병사로 소모되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비극이라 치부하기엔 그들이 짊어진 총구가 너무나 무겁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기함해야 할 사실은 전쟁의 한복판이 아니다. 진짜 비극은 총성이 멈춘 뒤, '전쟁 후'에 남겨진 소년들의 삶 속에 흔적을 남겼다.

가슴 속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표현은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남자 소년병에게는 살해 트라우마를, 여자 소년병에게는 성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그 상황은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희망이라 외치는 세상이지만 정작 소년병들에게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난과 가족은 그들이 군대에 동원될 수 있는 가장 비열하고도 효과적인 ‘협박’ 요소가 된다.

한참 가족의 품에서 자라야 할 소년들은 전쟁터에서 돌아와서도 자리를 잡지 못한다. ‘낙인‘은 그들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마주하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부랑아‘, ’또 다른 전쟁‘, ’강제 노동’과 같은 것뿐이다.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모순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은 소년들을 사지로 내몬다.

전쟁은 여자 소년병들에게 더 잔혹하다. 전쟁 중 겪어야 하는 성폭력의 고통은 사회로 돌아온 뒤 '부도덕한 아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되어 돌아오고, 결국 이들을 생존을 위한 매춘의 길로 다시금 내몰기 때문이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성적 착취의 사슬에 갇혀 영혼까지 파괴된다. 이는 총성이 멈춘 뒤에도 이들의 전쟁이 왜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소년을 비껴간 총알은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지만, 그가 쏜 총알은 사람을 죽인 낙인이 되어 돌아온다. 총을 쏘는 법은 배웠으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끝나지 않을 이야기는 우리의 관심이 멀어질수록, 어른이 보호해주지 않는 이상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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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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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ns에서는 맞춤법을 일부러 틀리며 언어유희를 향유하기도 하지만 틀린 맞춤법으로 격렬한 설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기이한 현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맞춤법이 문법적 약속을 넘어 상대를 판단하는 검열의 도구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유희의 도구라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는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으로 일하며 언어의 최전선에서 쏟아지는 질문과 갈등을 목격해온 저자의 기록이다. 이 책은 맞춤법이 더이상 '정답과 오답'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의 문제로 바라보게 하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맞춤법을 어긴 상대를 보며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성실함을 지레짐작한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누군가에게는 맞춤법이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규범을 서로를 가르는 선이 아니라 이어주는 다리라고 말한다. 맞춤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결국 내 생각이 오해 없이 상대에게 닿기를 바라는 정중함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맞닿을 때 완성되는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글은 삶과 역사를 담고 있다. 규칙이 중요할때도 있지만 대중이 새롭게 만들고 사용하는 말들은 그 자체로 시대의 '글'이 된다. 언어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가 지나온 시간의 또 다른 흔적이기 때문이다. 낡은 규범에 갇혀 언어의 생동감을 포기하기보다, 규범 밖에서 피어나는 '말맛'과 새로운 표현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언어 규범은 명확할지라도 인간의 감정은 그 바깥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결국 언어란 대중이 사용하고 조합하며 만들어가는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만큼 '언어의 유연함'은 변화하는 시대를 수용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포용력과 맞닿아 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 우리는 종종 그 뒤에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잊곤 한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고백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어떤 '답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언뜻 같아 보이는 질문일지라도 질문마다 표현 방식과 의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답변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가 오가는 곳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 교차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물론 항상 긍정적인 교류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어에 진심인 사람들의 열정이나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할지 모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붙들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새삼 언어는 삶의 흔적임을 증명한다.

AI가 클릭 한 번으로 완벽한 문장을 생성하고 오타를 잡아내는 시대가 되었지만,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문장 사이에 숨겨진 행간을 읽어내고, 내 말이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아차' 싶어 한 번 더 갈무리하는 마음의 여유다. 무엇보다 띄어쓰기 한 칸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과정은 단순히 문장을 교정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니다. 상대의 귀에 내 진심이 닿기 전에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말의 관상'을 가꾸는 일이다. 원고지 위의 오타보다 그 너머에 숨은 사람의 진심을 먼저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제안을 한다. 그 진심이 말의 관상을 통해 상대에게 올바르게 닿을 때 비로소 언어는 제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때론 정답보단 진심이 더 중요할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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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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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는 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가진 고유한 세계를 다른 언어로 번역해내는 일이라고 한다. 임현주의 <한영 육아 번역기>는 한국과 영국처럼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란 두 사람이 부모라는 공통의 배역을 맡으며 생기는 일을 담아내었다. 연애, 결혼 그리고 육아처럼 큰 굴곡속에서도 서로 다른 삶을 '번역'해 나가는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오역들마저 사랑의 일부였음을 고백한다. 완벽한 이해라는 불가능한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고, 또 용기를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처음엔 육아에 국한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책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물론 부부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육아이지만 그 부피가 너무 크지는 않아야 한다는 균형감각이 드러났다.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나’라는 섬이 통째로 잠기지 않도록 부부만의 공간을 사수하고 육아와 무관한 대화를 나누며 ‘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 노력한다. 아이가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꾸어 나가는 독립적인 어른의 뒷모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가 정해둔 ‘좋은 부모’라는 도달 불가능한 이상향에 매몰되기보다, 적어도 아이에게 ‘나쁜 어른’의 본보기가 되지 않겠다는 정직한 다짐이 드러난다.(102P)

이 책에서 드러나는 지점은 한국 사회의 절대적 기준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고 튀지 않는' 무난함을 지향하며, 그 기준에서 벗어날 때 불안을 느낀다. 스스로에게도 버겁다고 느끼는 그 엄격한 잣대를 타인에게도 똑같이 들이대며, 서로에게 일말의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삭막함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무난함'이라는 압박과 그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드러난다. 한국 사회의 절대적인 미의 기준이나 타인의 삶에 쉽게 틈입하는 오지랖 섞인 시선들 속에서 평가하지 않는 마음이야말로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육아를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물론 TV 속 육아는 상당히 달콤하고 현실의 육아는 거친 핸드헬드로 찍어낸 리얼리즘 다큐멘터리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투박하고 불완전한 화면 속에는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따뜻함과 사랑의 가치가 담겨 있다. 마냥 두렵고 어려울 것 같았던 육아를 그리고 아이들을,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인상깊다. 이처럼 육아는 아이를 개조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부모 자신의 미성숙함과 불안을 마주하고 이를 정성껏 '번역'해내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은 영화처럼 화려한 미장센을 갖추고 오지 않으며, 때로는 어설프고 웃기기까지 한 현실의 얼굴로 우리를 찾아온다(124P). 그 불완전함을 긍정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저자는 그 인내의 시간 속에서 부모와 아이가 각자의 세계를 지키며 나란히 자라날 수 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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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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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특종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달려왔던 저자는 10년이 지난 지금, 수목원에서 잡초를 뽑으며 "지금 즐겁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버거웠던 마음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나의 일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으며 사라졌다고 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버티던 그때와는 다르게 사람보다 숲과 나무, 바다와 새가 더 자주 보이는 삶이 훨씬 짜릿하다고 말했다. <숲으로 출근합니다>는 저자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식물의 세계'를 소개한다. 식물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계절을 지나며 변화하는 나무와 꽃들의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계절마다 피어나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그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설명한다.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1만 7000여종의 식물들에 대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오지만 이미 책은 서른세종을 소개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식물들에 대한 호기심은 이 책으로 인해 더 커져만 간다. 사진으로만 볼 수 밖에 없어서 '천리포수목원'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식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들이 어떤 속도로 자라나는지를 관심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자연은 동물, 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임에도 말이다.

책 곳곳에는 식물의 세계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직한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식물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길을 잃은 우리에게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식물을 돌보는 일이 곧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네가 좋으면 된 거야"라는 대답이나, 때로는 내 인생이 상대에게 기꺼이 잡아먹히길 바라는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생을 견디는 과정이 식물을 키우는 정성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식물이 각자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있듯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속도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남들의 시선에 맞춘 내가 아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하며 나만의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

이 책은 흔히 생각하던 고정관념의 방향 또한 달라지게 만든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겨울을 생명들이 모습을 감춘 시기 혹은 봄을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버텨야 하는 계절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겨울의 나무는 앙상하고 초라한 것이 아니라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나무 본연의 골격과 특징이 추울수록 선명히 드러나는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봄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계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온 모습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 초조했던 계절을 지나 나만의 고유한 형체를 가다듬고 나라는 묘목을 심어 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식물이라는 생명체 그 자체에 대한 지극한 예찬이다. 4월의 수목원을 걷다 보면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환상적인 악보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찰나의 연둣빛은 마치 세상에 초록색 필터를 씌운 듯 눈부신 감동을 선사한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식물들의 정교하고도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그들이 묵묵히 지켜온 시간의 궤적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외심이 피어오른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죽은 뒤에도 이 땅의 주인으로 남을 나무들의 의연함은 우리가 발붙인 이 지구가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의 터전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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