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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세상을 바꿀 특종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달려왔던 저자는 10년이 지난 지금, 수목원에서 잡초를 뽑으며 "지금 즐겁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버거웠던 마음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나의 일이 일치하는 지점을 찾으며 사라졌다고 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버티던 그때와는 다르게 사람보다 숲과 나무, 바다와 새가 더 자주 보이는 삶이 훨씬 짜릿하다고 말했다. <숲으로 출근합니다>는 저자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놓치고 살아가는 '식물의 세계'를 소개한다. 식물에 대한 감상뿐만 아니라 계절을 지나며 변화하는 나무와 꽃들의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계절마다 피어나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그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설명한다. 미처 다 소개하지 못한 1만 7000여종의 식물들에 대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오지만 이미 책은 서른세종을 소개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식물들에 대한 호기심은 이 책으로 인해 더 커져만 간다. 사진으로만 볼 수 밖에 없어서 '천리포수목원'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무엇보다 식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그들이 어떤 속도로 자라나는지를 관심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자연은 동물, 식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임에도 말이다.
책 곳곳에는 식물의 세계가 얼마나 합리적이고 정직한지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피어나는 식물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길을 잃은 우리에게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를 되찾아가는 이정표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식물을 돌보는 일이 곧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네가 좋으면 된 거야"라는 대답이나, 때로는 내 인생이 상대에게 기꺼이 잡아먹히길 바라는 그 지독한 외로움과 고생을 견디는 과정이 식물을 키우는 정성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식물이 각자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이 있듯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맞는 '속도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짚고 넘어간다. 남들의 시선에 맞춘 내가 아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하며 나만의 토양을 가꾸어야 한다.
이 책은 흔히 생각하던 고정관념의 방향 또한 달라지게 만든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겨울을 생명들이 모습을 감춘 시기 혹은 봄을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버텨야 하는 계절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겨울의 나무는 앙상하고 초라한 것이 아니라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나무 본연의 골격과 특징이 추울수록 선명히 드러나는 '특별한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봄 역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계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아온 모습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결과물이다. 성과가 보이지 않아 초조했던 계절을 지나 나만의 고유한 형체를 가다듬고 나라는 묘목을 심어 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식물이라는 생명체 그 자체에 대한 지극한 예찬이다. 4월의 수목원을 걷다 보면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환상적인 악보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가지 끝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찰나의 연둣빛은 마치 세상에 초록색 필터를 씌운 듯 눈부신 감동을 선사한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식물들의 정교하고도 강인한 생명력, 그리고 그들이 묵묵히 지켜온 시간의 궤적을 마주하다 보면 자연스레 경외심이 피어오른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죽은 뒤에도 이 땅의 주인으로 남을 나무들의 의연함은 우리가 발붙인 이 지구가 얼마나 경이로운 생명의 터전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