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 레볼루션 - 기술 패권 시대, 변화하는 질서와 한국의 생존 전략
이희옥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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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제조 2025’가 막을 내리는 이 해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이 제조업·반도체·배터리·AI·전기차 등 첨단 산업 전 영역에서 체급을 키워온 시점이다. 저자는 이 전환점을 통해, 세계가 무역 경쟁의 단계에서 신패권 재편의 국면으로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중국은 지난 십 년간 내수 확대·기술 국산화·공급망 내재화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패권 레이스의 행위자로 격상시켰다. 이에 맞서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을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보지 않는다. 대신 제재·무역통제·기술봉쇄·동맹 리쇼어링 전략을 통해 미중 경쟁을 ‘국가 전략의 프레임’으로 끌어올린다. 즉, 싸움의 무대는 관세 뿐만 아니라 기술·표준·공급망·AI·동맹 체계로 이어진다. 기술 패권의 시대에서 한국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정치, 외교, 경제, 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 4인의 대담을 묶어낸다.

이전과는 다르게 중국의 반도체·클라우드·데이터 접근·AI 모델 개발을 연동해 압박하는 것은 기술 견제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AI 기반 지식·군사·감시·정치 질서의 주도권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이다. AI는 기술경쟁을 넘어서 핵무기급 억제·통제 시스템의 자산이다. 래서 AI를 선점한다는 것은 곧 국가 권력의 미래 구조를 선점한다는 뜻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은 산업 경쟁 뿐만 아니라 미래 권력 구조를 두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미경중(韓美經中)’ 전략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은, 더 이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저자는 한국이 마주한 두 가지 구조적 난제를 제시한다.

-연루의 딜레마: 원치 않는 전쟁·분쟁에 끌려 들어갈 위험

-방기의 딜레마: 동맹국이 우리를 버리고 떠날 위험

한국의 선택지는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전략을 설계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기술 자립, 공급망 전략, 동맹 재구성, AI 생태계 구축, 산업 정책 재정비 등 책이 제안하는 방향은 ‘방향 제시’보다는 ‘구조적 질문’에 가깝다.

이 책의 장점은 미중 패권 전환을 경제·기술·외교·안보라는 네 축으로 고르게 분석하며, AI와 핵무기 결합 가능성, 기술 표준 전쟁, 동맹의 재편과 같은 현실적 주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는 데 있다. 다만, 비평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국의 ‘기술 자립 전략’이 슬로건 이상의 구체성으로 전개되지는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금의 상황은 위기이자 기회인만큼, 한국이 ‘줄타기’에 익숙해진 외교를 반복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미중 패권 경쟁의 주변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로 전환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국가 전략을 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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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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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 '무적'은 싸워 이긴다는 뜻이 아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쓰기, 더 나아가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쓰기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부딪히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몸, 삶이 그대로 스며든 몸. 그런 몸으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나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은 저자가 6년간 연재한 칼럼 「말글살이」를 엮은 글이다. 글쓰기의 기술보다는 ‘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진공 속이 아닌, 현실의 얽힘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모든 게 정리되고 평화로운 시간은 없으니 결국 흔들리면서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벽히 닫힌 글보다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글엔 삶의 두께가 두껍고 몸에 힘을 빼 더욱 솔직하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일이지만, 그 전에 상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쓰라”라고 말한다. 추상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다시 추상으로 오가며, 말에 가려진 말들을 찾아내는 과정. 멋진 말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욱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나쁜 글’을 쓰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글이란 도덕과 상식에 갇히지 않은 글이다. 허를 찌르고, 익숙한 틀을 흔드는 글. 글감은 어디에나 있지만, 문제는 스스로 세계를 좁히는 마음이다. 그는 “무한한 세계에서 무한히 열린 가능성을 스스로 닫지 말라”고 말한다. 낯선 언어로 나를 새로 써보려는 시도, 초고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결국 글쓰기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쓰는 몸' 훈련이다. 언어에 대한 그의 관점도 흥미롭다. 언어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한 바를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데 왜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이 주입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름의 자유를 글 안에서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습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공동의 결과물인데, 왜 글쓰기만은 하나의 단정한 생각으로 정리되어야 하냐는 생각이 모여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글쓰기'를 실천해 보아야겠다.

읽기에 대한 태도 역시 인상 깊다. 저자는 “포도주의 특징을 알기 위해 한 통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읽는 것보다 즐거움을 위해 읽는 걸 권한다고 강조한다. 읽는 즐거움이 결국 글의 숨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글이 항상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그랬듯이 읽는 과정이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게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읽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겁게' 다니엘 페나크 방식으로 읽는 것을 추천했다. 쓰는 몸을 위해서는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지고 있던 읽는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고민에 대해서 언급한다. 잘 쓰려고 할수록 그 안에 담기지 않으며 그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완성된 문장을 향한 집착보다, 미완의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글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늘 다시 써내려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무엇이든 해보고 써 내려가고 거듭 단련하여 자신을 쓰는 몸으로 만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에게 멀어질수록 자신을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써내려 가는 과정, 쓰는 몸으로 살기는 그렇게 하나, 하나 체득할 수 있는 단련의 기록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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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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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형태 혹은 인외 존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인간은 본래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수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배제하고,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밀어내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당연함'이 과연 모두에게 내재해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소설은 끈질기게도 옆집과 옆집이 연결되어 있지만 별다른 관련성은 없다. 그저 사람 사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사람이 아닌 존재가 비밀을 품는 그런 이야기 같기도 했다. 도리어 그런 괴상한 사건들은 해프닝이 아닐지 여길 정도였다. 신비한 힘일까 우연의 일치일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이어져 있지만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런 현대사회의 단면이 담겨있었다.

〈박쥐 인간〉이나 〈쥐들의 지하 왕국>에서의 배제된 존재들은 인간의 경계 밖에 있기에 인간의 불완전함을 더 부각하는 장면이었다. 이웃이지만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의 단절과 소통 부재가 어떻게 그렇게 깊어졌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타인과 다른 점이 아니라 같은 점만을 바라본 결과가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댓글부대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 <삶어녀 죽이기>에 눈길이 갔다.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 자행하는 폭력은 너무나도 쉽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말 무겁고 생채기를 마구마구 낸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비난에 두려워하기도 한다. 소설은 세상 곳곳을 비추며 그곳의 어둠과 빛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심지어는 그림자까지도.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나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까지도 생각하게 돼서 조심스러워졌다. 소설이 차분히 이어지고 연결성이 있는 듯 없는듯한 느낌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소설은 다양한 방식들로 사람들과 이 세상을 그려낸다. 이 열 편의 이야기가 다른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을 제안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애매모호했던 이유는 그 '답'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다른 모습을 한 이가 세상에 이해받지 못하는 그런 모습은 주변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을 잃고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현실이 미래에도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모습에 씁쓸해지면서도 나 또한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하게 된다. <뤼미에르 피플>의 사람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특히 장강명 작가님의 전 소설에서의 인물들이 등장해서 너무 반가웠고, 책장이 덮여도 작가님의 머릿속에서는 이 인물들은 여전히 살아있는다는 것을 느꼈고 애정도 느껴져서 조금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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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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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는 늘 어렵고 낯설게 다가오곤 했다. 교과서 속에서 등장하는 화가들의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 삶이 어떻게 작품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 작품이 어떻게 ‘명작’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미술관 앞에 서면 괜스레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도움이 되었고 기존에 알고 있었던 것과는 조금 달라서 더욱 흥미로웠다. 세간의 소문과는 다른 예술가의 삶 그리고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작품을 해석하고 그것을 그린 이유를 파고들 수 있는 부가적인 설명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시대가, 때로는 이야기가, 그리고 때로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예술가의 명성을 좌우한다.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던 작품이 사후에 다시 빛나기도 하고, 어떤 화가는 그의 삶 자체가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미술관이 작품을 돋보이게 포장하거나 마케팅하는 방식 또한,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만든다. 지금의 우리가 그림을 통해 과거를 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사물의 본질이 시간 속에서 점차 시들고 소멸한다는 자연의 질서를 화폭 안에서 멈춰세우는 어떤 예술가의 시선에 고정되기도 했다. 예술가의 집요한 응시와 독창적인 방식은 결국 사라져가는 것을 붙잡고, 사라질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림을 단순히 ‘아름다운 미술작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시간과 삶의 무게까지 함께 읽어내는 법을 조금은 배웠다. 앞으로 미술관 앞에 서는 나의 시선을 조금 더 단단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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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주
강성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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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집을 빠져나온 두 아이는 가까스로 생존한다. 탈출 후에도 회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 속에서 벽돌집이 결코 한 곳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절망은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앞으로 걸어간다. 탈출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주어진 운명을 넘어 자신들만의 삶을 개척하는 여정은 이제 막 열리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벽돌집은 겉으로는 보육원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사이비 종교 집단의 은폐된 공간이다. ‘아버지 선생님’이라 불리는 교주는 아이들에게 죄를 고백하게 만들고, 회개와 용서를 반복시키며 지배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두려움과 굴종 속에서 순응하며 살아가지만 반항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정답은 살아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구해주지 않는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의 제목과도 맞닿아 있었다. 바로 '파사주'라는 단어다. 이 뜻은 주어진 운명을 깨뜨린다는 듯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운명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의미로 소설 전체 서사를 꿰뚫는다. 이 슬픈 사연과 가혹한 운명에 왠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떻게 더 희망을 품으라는 것인지, 그 허무맹랑한 믿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소설이 진행되고 숨겨진 이야기가 밝혀질수록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소설에서 가장 절망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관의 모습에서였다. 선함을 표방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이용 가치’로만 취급하며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드러낸다. 벽돌집에서 아이들은 교리와 규율에 따라 존재가 아니라 도구로 살아간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아이들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고통에 짓눌리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선택하고, 서로의 눈빛을 통해 버틸 힘을 찾는다. 그 과정은 경험하지 못한 세상과 마주하는 일이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작은 발걸음이 된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라는 물음에 답해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그 답은 아이들 스스로 찾아야 하며, 고통을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길어 올려야 한다. 만약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면, 그들의 얼굴은 어떤 표정으로 바뀌게 될까. 존재 이유를 묻는 말의 답은 뚜렷하게 주어지지 않았지만,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에 왠지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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