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쓰는 몸으로 살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 '무적'은 싸워 이긴다는 뜻이 아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쓰기, 더 나아가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쓰기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부딪히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몸, 삶이 그대로 스며든 몸. 그런 몸으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나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은 저자가 6년간 연재한 칼럼 「말글살이」를 엮은 글이다. 글쓰기의 기술보다는 ‘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진공 속이 아닌, 현실의 얽힘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모든 게 정리되고 평화로운 시간은 없으니 결국 흔들리면서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벽히 닫힌 글보다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글엔 삶의 두께가 두껍고 몸에 힘을 빼 더욱 솔직하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일이지만, 그 전에 상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쓰라”라고 말한다. 추상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다시 추상으로 오가며, 말에 가려진 말들을 찾아내는 과정. 멋진 말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욱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나쁜 글’을 쓰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글이란 도덕과 상식에 갇히지 않은 글이다. 허를 찌르고, 익숙한 틀을 흔드는 글. 글감은 어디에나 있지만, 문제는 스스로 세계를 좁히는 마음이다. 그는 “무한한 세계에서 무한히 열린 가능성을 스스로 닫지 말라”고 말한다. 낯선 언어로 나를 새로 써보려는 시도, 초고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결국 글쓰기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쓰는 몸' 훈련이다. 언어에 대한 그의 관점도 흥미롭다. 언어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한 바를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데 왜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이 주입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름의 자유를 글 안에서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습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공동의 결과물인데, 왜 글쓰기만은 하나의 단정한 생각으로 정리되어야 하냐는 생각이 모여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글쓰기'를 실천해 보아야겠다.
읽기에 대한 태도 역시 인상 깊다. 저자는 “포도주의 특징을 알기 위해 한 통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읽는 것보다 즐거움을 위해 읽는 걸 권한다고 강조한다. 읽는 즐거움이 결국 글의 숨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글이 항상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그랬듯이 읽는 과정이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게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읽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겁게' 다니엘 페나크 방식으로 읽는 것을 추천했다. 쓰는 몸을 위해서는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지고 있던 읽는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고민에 대해서 언급한다. 잘 쓰려고 할수록 그 안에 담기지 않으며 그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완성된 문장을 향한 집착보다, 미완의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글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늘 다시 써내려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무엇이든 해보고 써 내려가고 거듭 단련하여 자신을 쓰는 몸으로 만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에게 멀어질수록 자신을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써내려 가는 과정, 쓰는 몸으로 살기는 그렇게 하나, 하나 체득할 수 있는 단련의 기록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