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 - 인권의 길, 박래군의 45년
박래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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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더 나은 세상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다. 때로는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과 맞닿아 있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권리와 법적 보호 장치들은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비추려 했던 집요한 기록과 현장에서 몸을 던진 이들의 치열한 노력이 쌓여 비로소 제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박래군의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는 바로 그 자리에서 흘린 사람들의 눈물을 기록하며 우리 사회가 잃어버렸던 온기를 다시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포함하여 역사 속에서 국가 권력이 법과 제도를 악용하며 개인의 삶을 파괴했던 순간들을 소환한다. 공권력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고 그 폭력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던 역사는 분명 잊혀서는 안 될 교훈이다. 이 책이 기록하는 눈물은 단순하게 인권이 추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죽음 위에 세워진 이야기였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질문도 있다. 지금은 1987년이 아니라 2025년이라는 사실이다. 과거와 같은 방식의 노골적인 공권력 남용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 견제 장치는 이전보다 강화되었지만, 우리가 직면한 안보 위협의 양상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되었다. 사이버 해킹과 지능형 간첩 활동처럼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위협은 물리적 충돌 없이도 국가의 존립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는 일과 변화한 현실 속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까지 의심의 대상으로 삼는 일 사이에는 분명한 구분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이 책이 기록하는 ‘온기 있는 눈물’의 목록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공백이 눈에 띈다.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고통은 충실히 기록되지만 열악한 안보 현실 속에서 국가를 지키다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우리 군인들, 그중에서도 청년들의 삶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가에 의해 억압당한 개인의 인권만큼이나 국가의 방어선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생명권 역시 동일한 무게로 다뤄질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이 지점에서 이 책이 기록하지 못한 눈물 또한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또 다른 질문으로 남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늘날 정치의 작동 방식으로 이어진다. 정치가 반복적으로 보여온 모습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된 구조적 과제보다는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차례 반복된 사회적 참사들 또한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논의보다 각자의 입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소비되어 온 측면이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치가 사회의 안전과 신뢰를 회복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 공권력의 과오는 분명하지만 이제는 그 불신만을 동력 삼아 국가 시스템 전체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공권력의 폭주를 경계하는 일과 경찰과 군대가 전문성을 갖추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신뢰를 쌓아가는 일은 분리되어 사고되어야 한다. 튼튼한 경제 기반과 현실적인 안보 체계가 뒷받침될 때, 국민 개개인의 인권 역시 흔들림 없이 보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미화의 대상도, 즉각적인 정치적 해석의 도구도 아닌 채로 남아 있어야 한다.


『모든 눈물에는 온기가 있다』가 던지는 질문은 인권이라는 가치의 숭고함 그 자체를 넘어 그 가치가 현실의 국가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지속 가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에 몰두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상처를 뒤로 미뤄왔고, 치유되지 못한 균열은 좌와 우라는 극단적인 진영 논리로 번져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낳았다. 이 책은 그 균열의 한쪽을 정직하게 비추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동시에 아직 기록되지 않은 눈물들 또한 우리 사회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과제임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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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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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정확한 언어로 불러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한자의 세계 안에 머물며, 한자라는 문자가 지닌 결을 닮은 언어로 사고하고 느끼며 말한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획들이 반듯한 네모 안에 모여 긴 의미를 함축하는 한자처럼, 그의 문장 역시 복잡한 감정을 단정한 형태로 담아낸다. 한자가 짓는 표정의 기분을 따라 읽다 보면, 설명하지 못해 묻어두었던 마음의 한 구석이 소환되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가 또렷해진다.

한자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문자다.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서사가 하나의 글자 안에 응집되어 있다. 이유 없이 아득한 기분이 밀려올 때 한자 사전을 펼치면, 반드시 어떤 글자 하나는 지금의 나를 언어화해준다. 때로는 장황한 문장이나 두꺼운 책보다 단 하나의 한자가 내 기분을 더 정확히 설명해준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곳에서, 한자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성정과 조우하는 경험은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기분이 엉망인 순간, 숨듯이 웅크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작은 한 글자 안에 있다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오래 남는다.

이 책은 한자에서 삶의 주변을 발견한다. 한 획 한 획이 사람처럼 차분히 얹혀 하나의 기분을 완성한다.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소한 마음부터 삶 전체에 이르기까지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나와 감정을 표현한 한자는 어떤 모습일까. 위로가 필요한 날 이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누군가의 삶을 경유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잔잔한 위로가 된다.

선택과 후회는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그렇게 묵묵히 살아낸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생(生)’은 태어나 살아간다는 의미를 넘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를 함께 품은 글자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짊어진 채 살아가는 지금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글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의미를 한자를 통해 되묻게 된다. 나의 뿌리와 획을 떠올리며 삶과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단어가 빼곡한 사전이 아니라, 기분과 사건으로 채워진 ‘한자 기분 사전’이다. 막연했던 마음의 형체를 또렷하게 불러내며,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대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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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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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와 책을 접하면서 교황이라는 존재는 종교 지도자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질서와 교회의 방향을 규정하는 핵심 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황 선거는 늘 열리는 것이 아니기에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2025년에 열린 콘클라베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개혁의 방향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이전으로 되돌릴 것인가의 선택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콘클라베의 구조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내용에 대해 먼저 다룬다. 인물소개에 집중하기보단 지금 열릴 콘클라베가 왜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필수적인 설명의 일부다. 이후 콘클라베의 절차, 그리고 레오 14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소 뒤섞여 보이는 전개는 사실상 교황제도의 기능이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보여주는 흐름이다.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부패와 경직된 구조를 근본적인 문제로 진단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표현대로 오늘의 교회는 자기 기준만을 강화하는 자기창조적 영성, 성직주의적 태도 속에서 본래의 사명을 잃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가 강조한 것은 명확했다. ‘교회는 교리를 지키되 제도적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 약한 이들의 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가 말한 ‘안락함의 문화’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교회가 자기 보존에 몰두하는 동안, 세상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이단아라고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은 교리 자체를 뒤엎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윤리 중심의 의제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온 교회의 오랜 관성을 비판하고, 인간 존엄성, 사회적 불평등, 현대적 폭력과 파괴라는 더 넓은 문제들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이는 사목신학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사람의 자리에서 복음을 이해하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반발을 불러왔다. 기존의 설교 방식과 행정 운영에 익숙한 전통주의자들은 프란치스코의 접근을 교리를 약화시키는 태도로 보았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이를 복음의 원래 정신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는 고독한 개혁자처럼 행동했고 권위를 낮추는 방식의 리더십은 바티칸이라는 관료적 기관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뒤, 바로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다. “그의 비전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교회를 다시 전통적 중심으로 회귀 시킬 것인가.”

지금의 교회는 일치를 중시하는 진영,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영 사이에서 균열이 커지고 있으며 이를 통합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지금의 콘클라베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지도자 뿐만 아니라 어떤 교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미래의 방향성이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세력이 권력과 영향력을 재편하려는 지금, 교회는 그 변화로 인해 발생한 고통과 불안을 어떻게 대면할 지에도 관여해야 한다. 현대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어떤 윤리적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라고 말한다.

그 긴장 속에서 “일 파파 아메리카노!” 라는 외침과 함께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 그는 늘 대중의 시선 밖에서 움직였지만, 지금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교회 내부의 오랜 분열을 봉합할 수 있는 인물일까 라는 의문따라붙는다. 그의 리더십은 ‘봉사’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온 흔적이 논문 곳곳에 남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앙을 바탕으로, 복음이 불안정한 시대에 필요한 평화를 가져오길 기도하는 이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며, 어떤 시선이든 그에 대한 반대와 기대가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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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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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스페인의 도시 말라가를 뜻한다는 사실이 앞섰지만 스스로가 말라가는 밤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했다. 실제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떠내보낸 이의 말라가는 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떠나갔는지, 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말라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이별에서 시작된다. 마치 파도 아래 그려두었던 마음이 그대로 쓸려나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마음을 새기려 해도 남지 않고, 아무리 퍼내려 해도 가득 차오르는 감정은 줄어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물 속 깊이 잠긴듯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목은 모래를 삼킨 듯 바짝 말랐고, 거품 같은 파도를 들이킨 듯 가슴이 텁텁했다. 방금 바다에서 나온 다리가 끈적인 채로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야기는 나를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내 몸이 나를 위해 지워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만 하는 순간. 앞에서 흘러가던 수많은 장면들이 의미 없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기 위한 길목이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눈가에 자연스레 물이 고였다.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의 체온이 되살아나며 마음이 아렸다.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체감과, 그 거리감에서 오는 절망까지도.

다른 듯 닮아 있던 날들이 이어지며, 결국 서로를 껴안는 장면이 펼쳐질 때 뭉클함이 밀려왔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마침내 밝은 순간으로 이어지는데, 오히려 더 슬픈 건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결국 현실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 대답할 수 없는 마음과, 끝없이 부정하고 싶었던 감정은 영영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도망쳐서도, 붙잡아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있었던 일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새로운 장면들로 세상이 바뀌어 보이더라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나를 마주하고 넘어서며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작가의 말은 그런 마음에 따뜻하게 스며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를 꼭 안아주면 좋겠다고, 잠시 숨을 참더라도 결국 수면 위로 떠올라 다시 호흡하게 될 거라고.

슬픔도 분노도 우울도 모두 힘이 세기에, 마음속에 ‘우울력 발전소’를 세워 그 에너지를 다시 숨 쉬고 빛을 발하는 데 쓰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그 문장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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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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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에서 판매된 옷을 리뷰하는 유튜브 영상, 이른바 '테무깡'과 '쉬인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저렴한 옷을 구매하고 또 다른 영상에서 새로운 옷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소비한다. 이 현상은 ‘울트라 패스트패션’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유행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바로 버려진 옷이다. 《헌옷추적기》는 그 버려진 옷의 행방을 추적하며 패션 산업의 그림자를 낱낱이 드러낸다.


책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한국은 세계 헌옷 수출국 4~5위라는 사실. 둘째, 국내 헌옷의 이동 경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셋째,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 헌옷이 현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직접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위치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우선, 서아프리카 가나 아크라의 해변은 헌옷으로 가득하다. 해변의 200m 높이 절벽은 쓰레기산이며, 매주 1,500만 벌의 중고의류가 들어오지만 그중 40%가 곧바로 폐기된다. 현지에서는 이를 ‘죽은 백인의 옷’이라 부른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옷이 쏟아지고, 결국 재고와 헌옷은 소비자의 손에 돌아가지 못한 채 쓰레기산으로 향한다. MBZ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 톤의 의류가 생산되고, 생산된 옷 4벌 중 3벌은 헌옷의 무덤에 쌓이며 남미와 아프리카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해마다 약 30만 톤의 헌옷이 수출되지만, 통계에는 허점이 많아 정확한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 외신 보도는 주로 유럽과 미국의 헌옷 사례를 다루고 있고, 국내에서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에 저자는 국제탐사보도 콘퍼런스에서 들은 외국 기자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 헌옷의 실제 행방을 추적하기로 한다.


그렇게 추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기부받은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국외로 이동하는 동안 신호를 기다렸다. 옷이 해외로 나가는 데 최소 한 달 반 이상 걸리고 기술적 한계로 추적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막연하고 초조했다.


두 달이 지난 후, 153벌 중 30%가 해외에서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인도, 페루 등 동남아시아와 남미에 주로 분포했으며, 일부는 중고의류 수입금지국에서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수출되지 않은 나머지 헌옷은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향했다. 특히 인도에서는 재활용 목적 일부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상당량은 품질과 상관없이 소각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대기 오염은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일자리 창출과 건강의 균형이 맞바뀌는 현상을 보여준다. (재활용 공장이라 부르고 표백이라 말하는..)


책은 데이터나 문장을 나열하지 않는다. 현장 사진과 글자를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못한 헌옷이 사람들의 삶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값싼 옷 뒤에는 노동착취와 인권 침해가 숨어 있으며, 경제적 효율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럽에서 논의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국내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 마련,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그리고 소비자의 ‘오래 입기’라는 작은 실천까지,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기 좋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고 패션 산업 전체에 대한 성찰과 행동을 요구한다. 《헌옷추적기》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입고 버리는 옷과 직결된 현실임을 직면하게 만든다. 오늘 내가 입은 티셔츠 한 장, 그 속에 숨은 환경과 노동의 그림자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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