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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말라가의 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스페인의 도시 말라가를 뜻한다는 사실이 앞섰지만 스스로가 말라가는 밤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했다. 실제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떠내보낸 이의 말라가는 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떠나갔는지, 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말라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이별에서 시작된다. 마치 파도 아래 그려두었던 마음이 그대로 쓸려나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마음을 새기려 해도 남지 않고, 아무리 퍼내려 해도 가득 차오르는 감정은 줄어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물 속 깊이 잠긴듯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목은 모래를 삼킨 듯 바짝 말랐고, 거품 같은 파도를 들이킨 듯 가슴이 텁텁했다. 방금 바다에서 나온 다리가 끈적인 채로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야기는 나를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내 몸이 나를 위해 지워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만 하는 순간. 앞에서 흘러가던 수많은 장면들이 의미 없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기 위한 길목이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눈가에 자연스레 물이 고였다.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의 체온이 되살아나며 마음이 아렸다.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체감과, 그 거리감에서 오는 절망까지도.
다른 듯 닮아 있던 날들이 이어지며, 결국 서로를 껴안는 장면이 펼쳐질 때 뭉클함이 밀려왔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마침내 밝은 순간으로 이어지는데, 오히려 더 슬픈 건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결국 현실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 대답할 수 없는 마음과, 끝없이 부정하고 싶었던 감정은 영영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도망쳐서도, 붙잡아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있었던 일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새로운 장면들로 세상이 바뀌어 보이더라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나를 마주하고 넘어서며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작가의 말은 그런 마음에 따뜻하게 스며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를 꼭 안아주면 좋겠다고, 잠시 숨을 참더라도 결국 수면 위로 떠올라 다시 호흡하게 될 거라고.
슬픔도 분노도 우울도 모두 힘이 세기에, 마음속에 ‘우울력 발전소’를 세워 그 에너지를 다시 숨 쉬고 빛을 발하는 데 쓰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그 문장이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