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자리
고민실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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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1의 자리에 서 있다면 1이 되지 못한 0들은 그 자리에 서서 부단히 노력 해야 한다. 노력만으로 되지 않은 0의 자리는 그 존재조차도 희미하게 만들어 유령으로 자리 잡는다. 0에서 -1로 밀려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1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며 1로 올라서려 하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남들보다 나은 내가 아닌 나보다 나은 내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이 굉장히 아프게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그것 또한 1의 자리다. 0의 자리가 없다면 1의 자리도 거듭할 수 없지만 수많은 불공평과 부조리함이 우리를 1의 자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 무슨 일이든 해보려는 주인공의 의지와 희망이 “글쎄요오오” 라는 말을 통해서 응원하고 싶게 만든다.

수많은 0이 빼곡하게 모인 도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상실을 극복해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다음 숫자로 나아갈 준비를 마친다. 0과 1이 숫자의 전부가 아니듯,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풀어나가는 우리 사회를 관망함과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시선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글을 쓰고 있음에도 내 것 같지 않은 요즘, 잔잔한 위로를 주었던 책이었다.

*작가의 말 中*
“영에 어떤 숫자를 더하면 영은 사라지고 그 숫자만 남습니다. 영에 어떤 숫자를 곱하면 그 숫자를 영으로 바꿉니다. 아무리 많이 늘어놓아도 영은 영 외에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숫자에 기댈 때 영은 우주의 단위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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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 부크크오리지널 4
장은영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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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내가 죽인 소녀’는 친우라는 가면 속에 감춰진 추악한 살의와 일그러진 민낯이라는 문구를 통해 강렬한 기대감을 선사한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 7명의 용의자를 옭아매며 그들은 한곳에 모은다. 책의 마지막을 보지 않으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제목을 통해 사건의 전말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게 관련된 7명을 한자리에 모아두며 시작되는 추리는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어 그와 연관된 모두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책 속에서 한사람만을 가리키고 있지 않은 화살표가 서로를 내내 응시하게 만든다. 등 돌릴 순간조차 주지 않는 추리는 추리가 진행되면 될수록 추악한 민낯이 속마음에서도, 겉모습에서도 드러나지만, 끊임없이 감추기에 바쁘다. 무심코 지나온 그 모든 것이 단서가 되어 읽는 독자들도 옭아맨다. 소녀를 죽인 이는 누구일지 고민하게 만드는 추리소설의 방식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등 돌리는 순간 펼쳐지는 진실이 당신을 향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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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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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카스트 제도에 관해서 서술한 책, 카스트는 미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종교로 계급을 나누던 카스트 제도는 인종으로 계급을 나누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을 바탕으로 세워진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여전히 백인을 중심으로 한 카스트 제도가 꽤 오랜 기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구조가 낡아빠진 질서를 원하는 이들로 인해 과거로 회귀하는 구실을 쥐여준다. 그렇게 하위 카스트는 결백하기 위해 끊임없이 증명하는 행동을 반복해야만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를 가지고 분열 가득한 하나의 오래된 집으로 남아있다. 카스트 제도는 사라졌지만, 기둥은 굳건하다. 바꿀 수 없는 것으로 차별을 행하는 미국의 인종 차별법은 나치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끔찍했던 악법으로서 인종차별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허락해주었다. 마땅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뼛속 깊은 제도가 되어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들어 인종 폭력을 대물림한다.



하위 카스트의 존재와 상위 카스트의 외면과 자신의 지위를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심은 하위 카스트가 참담함을 몸소 느끼게 했다. 고립주의와 종족주의가 치닫는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모두가 덮어온 미국의 카스트 제도를 표면 위로 드러내어 세세하게 그린 책, '카스트'. 과거 미국인들이 행했던 차별을 모든 미국인이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현재와 미래에 행하는 미국인의 행동들은 오직 그들이 책임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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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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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의도에서 출발한 정반대의 선택과 결과까지도 재검토하는 책, 말콤 글래드웰의‘어떤 선택의 재검토'. 조금은 어렵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어떤 선택을 섬세하게 다루며 현재의 선택까지도 내밀어 이야기의 내용을 더 흥미롭게 한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개인으로 시작하여 국가로 풀어내는 방식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의 나비효과는 더욱 크게 작용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집착에서 다른 사람들의 집착으로 옮겨가는 순간을 그리는데, 시선 변화가 어지럽지 않고 굉장히 깔끔하게 여겨진다. 그의 집착이 “나는 집착 없이는 진보도, 혁신도, 즐거움도, 아름다움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통해 이 책을 더욱 빛나게 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말로 책의 처음을 장식한다. ‘전쟁은 부조리 하다’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책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1945년에 미군 지휘부에서 결정한 도쿄 대공습의 뒷면을 비춘다. 미국 지휘관들의 이상에서 비롯된 의도, 현실로 다가온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심에서 있었던 미국 지휘관들은 ‘폭격기 마피아’라고 불리는데, 그들이 전쟁은 멈출 수 있었지만, 전쟁의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어 냈다. 이미 일어난 비극적인 일들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 일어날, 그리고 일어난 전쟁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날카로운 통찰력 앞에서 그 순간, 순간에 이르기까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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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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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는 둘레나 끝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눈에 띄지 않고 굳이 보려고도 하지 않은 부분을 뜻한다. 내가 독립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저자는 가장자리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가운데로 시선을 모아 이야기를 펼치는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어떠한 순간에도 개입하지 않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만으로도 모순된 점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때까지 외면하고 또 은폐해왔던 사실 밑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세분된 단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이어진 등장인물들을 통해 중앙에 쏠려 끊임없이 가장자리의 이야기를 외면했던 우리들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한다. 가장자리의 이야기이지만 중앙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조금은 어려운 이 책은 끊임없이 설명하며 외면하고 살아왔던 우리를 끝끝내 자각하게 한다. 그렇게 중앙에 있는 이들은 현재의 범위에서 끊임없이 중앙을 넓히며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더 좁은 가장자리로 밀어내며 ‘기득권’이 되어가고 가장자리에 있는 이들을 같은 굴레에 가둠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게 가장자리로 밀어낼수록 또 다른 약자의 모습으로서 더욱더 가까워지는 그들에게 과연 선택지가 있었을까.

그들의 굴레가 같은 세계에 살아가지만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 단 하나의 선택만을 쥐여 주었던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자신에게 독이든 아니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장자리의 사람들은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잔혹하고 처절하게 망가진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여 끊임없이 헤엄친다. 책 표지의 눈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볼 때와 책을 읽고 나서 표지를 볼 때가 다르게 느껴져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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