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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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을 정확한 언어로 불러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덜 외로워진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저자는 한자의 세계 안에 머물며, 한자라는 문자가 지닌 결을 닮은 언어로 사고하고 느끼며 말한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획들이 반듯한 네모 안에 모여 긴 의미를 함축하는 한자처럼, 그의 문장 역시 복잡한 감정을 단정한 형태로 담아낸다. 한자가 짓는 표정의 기분을 따라 읽다 보면, 설명하지 못해 묻어두었던 마음의 한 구석이 소환되고, 그동안 듣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가 또렷해진다.

한자는 수천 년의 시간을 품은 문자다.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살아온 서사가 하나의 글자 안에 응집되어 있다. 이유 없이 아득한 기분이 밀려올 때 한자 사전을 펼치면, 반드시 어떤 글자 하나는 지금의 나를 언어화해준다. 때로는 장황한 문장이나 두꺼운 책보다 단 하나의 한자가 내 기분을 더 정확히 설명해준다. 특히 한자 문화권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곳에서, 한자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성정과 조우하는 경험은 ‘이해받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기분이 엉망인 순간, 숨듯이 웅크려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작은 한 글자 안에 있다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오래 남는다.

이 책은 한자에서 삶의 주변을 발견한다. 한 획 한 획이 사람처럼 차분히 얹혀 하나의 기분을 완성한다. 글자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사소한 마음부터 삶 전체에 이르기까지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나와 감정을 표현한 한자는 어떤 모습일까. 위로가 필요한 날 이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누군가의 삶을 경유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잔잔한 위로가 된다.

선택과 후회는 늘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그렇게 묵묵히 살아낸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 ‘생(生)’은 태어나 살아간다는 의미를 넘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를 함께 품은 글자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짊어진 채 살아가는 지금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한글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의미를 한자를 통해 되묻게 된다. 나의 뿌리와 획을 떠올리며 삶과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단어가 빼곡한 사전이 아니라, 기분과 사건으로 채워진 ‘한자 기분 사전’이다. 막연했던 마음의 형체를 또렷하게 불러내며,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을 조용히 대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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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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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콘클라베를 다룬 영화와 책을 접하면서 교황이라는 존재는 종교 지도자에 국한되지 않고 세계 질서와 교회의 방향을 규정하는 핵심 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교황 선거는 늘 열리는 것이 아니기에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지만 2025년에 열린 콘클라베가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개혁의 방향을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이전으로 되돌릴 것인가의 선택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콘클라베의 구조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내용에 대해 먼저 다룬다. 인물소개에 집중하기보단 지금 열릴 콘클라베가 왜 중요한 지점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필수적인 설명의 일부다. 이후 콘클라베의 절차, 그리고 레오 14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소 뒤섞여 보이는 전개는 사실상 교황제도의 기능이 어떻게 변모해왔는가를 보여주는 흐름이다.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부패와 경직된 구조를 근본적인 문제로 진단했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의 표현대로 오늘의 교회는 자기 기준만을 강화하는 자기창조적 영성, 성직주의적 태도 속에서 본래의 사명을 잃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가 강조한 것은 명확했다. ‘교회는 교리를 지키되 제도적 중심에서 벗어나 가장 약한 이들의 곁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가 말한 ‘안락함의 문화’에 대한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교회가 자기 보존에 몰두하는 동안, 세상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교회의 이단아라고 불렸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은 교리 자체를 뒤엎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성윤리 중심의 의제만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온 교회의 오랜 관성을 비판하고, 인간 존엄성, 사회적 불평등, 현대적 폭력과 파괴라는 더 넓은 문제들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작용해야 하는지를 재정립하고자 했다. 이는 사목신학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사람의 자리에서 복음을 이해하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은 필연적으로 반발을 불러왔다. 기존의 설교 방식과 행정 운영에 익숙한 전통주의자들은 프란치스코의 접근을 교리를 약화시키는 태도로 보았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이를 복음의 원래 정신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해석했다. 그는 고독한 개혁자처럼 행동했고 권위를 낮추는 방식의 리더십은 바티칸이라는 관료적 기관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한 뒤, 바로 떠오른 질문은 이거였다. “그의 비전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교회를 다시 전통적 중심으로 회귀 시킬 것인가.”

지금의 교회는 일치를 중시하는 진영,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영 사이에서 균열이 커지고 있으며 이를 통합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지금의 콘클라베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지도자 뿐만 아니라 어떤 교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미래의 방향성이었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세력이 권력과 영향력을 재편하려는 지금, 교회는 그 변화로 인해 발생한 고통과 불안을 어떻게 대면할 지에도 관여해야 한다. 현대의 위기 앞에서 교회는 어떤 윤리적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라고 말한다.

그 긴장 속에서 “일 파파 아메리카노!” 라는 외침과 함께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 그는 늘 대중의 시선 밖에서 움직였지만, 지금은 세계의 중심에 서 있다. 교회 내부의 오랜 분열을 봉합할 수 있는 인물일까 라는 의문따라붙는다. 그의 리더십은 ‘봉사’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해온 흔적이 논문 곳곳에 남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앙을 바탕으로, 복음이 불안정한 시대에 필요한 평화를 가져오길 기도하는 이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이야기는 시작에 불과하며, 어떤 시선이든 그에 대한 반대와 기대가 함께 따라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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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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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스페인의 도시 말라가를 뜻한다는 사실이 앞섰지만 스스로가 말라가는 밤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했다. 실제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떠내보낸 이의 말라가는 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떠나갔는지, 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 말라가는 어떤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이별에서 시작된다. 마치 파도 아래 그려두었던 마음이 그대로 쓸려나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마음을 새기려 해도 남지 않고, 아무리 퍼내려 해도 가득 차오르는 감정은 줄어 들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물 속 깊이 잠긴듯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목은 모래를 삼킨 듯 바짝 말랐고, 거품 같은 파도를 들이킨 듯 가슴이 텁텁했다. 방금 바다에서 나온 다리가 끈적인 채로 차갑게 식어가는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야기는 나를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내 몸이 나를 위해 지워버린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만 하는 순간. 앞에서 흘러가던 수많은 장면들이 의미 없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마주하기 위한 길목이었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눈가에 자연스레 물이 고였다. 오래 잊고 있던 감정의 체온이 되살아나며 마음이 아렸다. 그 시절에서 너무 멀리 와버린 듯한 체감과, 그 거리감에서 오는 절망까지도.

다른 듯 닮아 있던 날들이 이어지며, 결국 서로를 껴안는 장면이 펼쳐질 때 뭉클함이 밀려왔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마침내 밝은 순간으로 이어지는데, 오히려 더 슬픈 건 왜일까. 아마도 우리는 결국 현실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 대답할 수 없는 마음과, 끝없이 부정하고 싶었던 감정은 영영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도망쳐서도, 붙잡아서도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나에게 있었던 일을 왜곡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새로운 장면들로 세상이 바뀌어 보이더라도,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같은 상황은 반복된다. 나를 마주하고 넘어서며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작가의 말은 그런 마음에 따뜻하게 스며든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날에는 스스로를 꼭 안아주면 좋겠다고, 잠시 숨을 참더라도 결국 수면 위로 떠올라 다시 호흡하게 될 거라고.

슬픔도 분노도 우울도 모두 힘이 세기에, 마음속에 ‘우울력 발전소’를 세워 그 에너지를 다시 숨 쉬고 빛을 발하는 데 쓰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그 문장이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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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옷 추적기 -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박준용.손고운.조윤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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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커머스에서 판매된 옷을 리뷰하는 유튜브 영상, 이른바 '테무깡'과 '쉬인깡'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저렴한 옷을 구매하고 또 다른 영상에서 새로운 옷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소비한다. 이 현상은 ‘울트라 패스트패션’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유행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바로 버려진 옷이다. 《헌옷추적기》는 그 버려진 옷의 행방을 추적하며 패션 산업의 그림자를 낱낱이 드러낸다.


책은 세 가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첫째, 한국은 세계 헌옷 수출국 4~5위라는 사실. 둘째, 국내 헌옷의 이동 경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 셋째,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 헌옷이 현지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자는 직접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위치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다.


우선, 서아프리카 가나 아크라의 해변은 헌옷으로 가득하다. 해변의 200m 높이 절벽은 쓰레기산이며, 매주 1,500만 벌의 중고의류가 들어오지만 그중 40%가 곧바로 폐기된다. 현지에서는 이를 ‘죽은 백인의 옷’이라 부른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저렴하고 품질이 낮은 옷이 쏟아지고, 결국 재고와 헌옷은 소비자의 손에 돌아가지 못한 채 쓰레기산으로 향한다. MBZ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년에 1억 톤의 의류가 생산되고, 생산된 옷 4벌 중 3벌은 헌옷의 무덤에 쌓이며 남미와 아프리카의 환경을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해마다 약 30만 톤의 헌옷이 수출되지만, 통계에는 허점이 많아 정확한 이동 경로를 파악하기 어렵다. 외신 보도는 주로 유럽과 미국의 헌옷 사례를 다루고 있고, 국내에서 동일한 방법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에 저자는 국제탐사보도 콘퍼런스에서 들은 외국 기자의 사례를 참고해 한국 헌옷의 실제 행방을 추적하기로 한다.


그렇게 추적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기부받은 헌옷에 스마트태그를 부착하고, 국외로 이동하는 동안 신호를 기다렸다. 옷이 해외로 나가는 데 최소 한 달 반 이상 걸리고 기술적 한계로 추적이 실패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막연하고 초조했다.


두 달이 지난 후, 153벌 중 30%가 해외에서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인도, 페루 등 동남아시아와 남미에 주로 분포했으며, 일부는 중고의류 수입금지국에서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수출되지 않은 나머지 헌옷은 소각되거나 매립지로 향했다. 특히 인도에서는 재활용 목적 일부 판매가 이루어지지만 상당량은 품질과 상관없이 소각된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질·대기 오염은 주변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일자리 창출과 건강의 균형이 맞바뀌는 현상을 보여준다. (재활용 공장이라 부르고 표백이라 말하는..)


책은 데이터나 문장을 나열하지 않는다. 현장 사진과 글자를 통해 소비자에게 돌아오지 못한 헌옷이 사람들의 삶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전달한다. 값싼 옷 뒤에는 노동착취와 인권 침해가 숨어 있으며, 경제적 효율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유럽에서 논의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는 국내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저자는 정부의 적극적 정책 마련,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그리고 소비자의 ‘오래 입기’라는 작은 실천까지,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기 좋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고 패션 산업 전체에 대한 성찰과 행동을 요구한다. 《헌옷추적기》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입고 버리는 옷과 직결된 현실임을 직면하게 만든다. 오늘 내가 입은 티셔츠 한 장, 그 속에 숨은 환경과 노동의 그림자를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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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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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조선의 한양과 오늘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인지, 혹은 한국 미술사의 변화를 따라가는 여정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발레, 한국무용, 미술, 가야금, 장구까지 거의 모든 예술 교육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씩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싶어 대학원에 왔고, 예술과 사상을 공부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근대 미술을 향한 애정과 현대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예술가들을 만나며 스스로도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도시와 그림이 포개지는 한겹. “도시는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사라지는 풍경에는 도시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토로하는 슬픔도 스며 있다. “치열한 도시 속에서의 오늘이 괴로웠다면 지나간다고 다독여보고, 어제가 아쉬웠다면 새로운 날을 기대해본다.” 책은 이렇듯 묵묵하게 오늘과 어제를 잇는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열정과 냉정, 분투하는 도시의 공기가 모두 녹아 있다. 저마다의 사정과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인지 그림은 더 풍부한 색채로 보인다. 특히 작가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어 작품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림이란 풍경만 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일생까지 품어내는구나 싶었다. 과감하고 의도적인 붓질, 사랑하는 도시의 불빛을 기억하는 마음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일정한 테마 아래 서로 대화하듯 배치된 두 점의 그림, 그에 얽힌 설명과 작가의 일화는 시대와 예술의 서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내면의 욕망, 시대의 핍박 같은 것들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처럼 시대를 흔들어놓은 이들의 용기도 오래 남는다. 이름조차 몰랐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들의 시대적 낭만과 계절감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한국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는 도시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지 종종 궁금하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풍경과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한 면모가 사실은 내게 조금 먼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공간을 다루고 있기에, 작품 속 도시를 바라보는 감각도 어쩐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외감이 스며들었다. 마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풍경 앞에 나만 한 발 떨어져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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