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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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조선의 한양과 오늘의 서울에 관한 이야기인지, 혹은 한국 미술사의 변화를 따라가는 여정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피아노와 바이올린, 성악, 발레, 한국무용, 미술, 가야금, 장구까지 거의 모든 예술 교육을 경험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예술적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씩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을 곁에 두고 싶어 대학원에 왔고, 예술과 사상을 공부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근대 미술을 향한 애정과 현대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예술가들을 만나며 스스로도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도시와 그림이 포개지는 한겹. “도시는 시대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진다.” 사라지는 풍경에는 도시의 변화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음을 토로하는 슬픔도 스며 있다. “치열한 도시 속에서의 오늘이 괴로웠다면 지나간다고 다독여보고, 어제가 아쉬웠다면 새로운 날을 기대해본다.” 책은 이렇듯 묵묵하게 오늘과 어제를 잇는다. 예술가들의 작품에는 열정과 냉정, 분투하는 도시의 공기가 모두 녹아 있다. 저마다의 사정과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인지 그림은 더 풍부한 색채로 보인다. 특히 작가 인터뷰가 함께 실려 있어 작품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림이란 풍경만 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역사와 개인의 일생까지 품어내는구나 싶었다. 과감하고 의도적인 붓질, 사랑하는 도시의 불빛을 기억하는 마음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일정한 테마 아래 서로 대화하듯 배치된 두 점의 그림, 그에 얽힌 설명과 작가의 일화는 시대와 예술의 서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만든다. 내면의 욕망, 시대의 핍박 같은 것들이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나혜석의 <자화상>처럼 시대를 흔들어놓은 이들의 용기도 오래 남는다. 이름조차 몰랐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들의 시대적 낭만과 계절감을 따라가는 일이 즐거웠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만족할 만한 책이다.


나는 서울에 살고 있지 않지만, 한국 인구의 절반이 살아가는 도시의 하늘은 어떤 모습일지 종종 궁금하다. 이 책은 서울을 중심으로 풍경과 이야기를 펼쳐놓는데,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한국의 한 면모가 사실은 내게 조금 먼 세계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속하지 않은 공간을 다루고 있기에, 작품 속 도시를 바라보는 감각도 어쩐지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아주 조용하고 작은 소외감이 스며들었다. 마치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풍경 앞에 나만 한 발 떨어져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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