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ㅣ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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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 같던 9년간에 전쟁. 전쟁 이후에 세계정부가 설립되며, 모든 인간은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나게 되었다. 이 인공수정 과정에서 정부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일부러 신체적, 지적 결함을 가진 채 태어나는 인간 분류를 만들기도 하며, 이는 계급 사회로 이어졌다. 게급에 따라 사회가 나눠지니 육아와 교육 역시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며, 그렇기에 성생활에 자유를 얻지만, 이들에게 성생활은 야만적인 취급이다. 또한 세계정부는 이 ‘문명인’들을 위해 행복과 안정감을 느끼는 ‘소마’라는 약을 지급한다.

 

• 멋진 신세계의 주인공, 버나드는 최고 계급의 인간임에도 정부의 계급 사회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는 우연찮은 기회로 레니나라는 여성과 뉴멕시코의 야만 구역(세계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곳)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버나드는 정부의 간섭 따위 받지 않는 야만인들의 생활을 보게 되고, 그곳에 매료되어 야만인 중 일부를 데리고 돌아와 자신의 상사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선택은 큰 파장을 불러오는데, 그가 데려온 야만인은 상사의 아들이었다. 버나드는 후에 이 사실을 폭로하며 유명세를 얻게 되고, 기존에 가졌던 사회적 불만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마약과 성생활에 빠져 살게 된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야만인 존. 존 또한 그의 폭로로 유명세를 얻으며 어느 정도의 교류를 시작하지만, 세계정부의 시스템에 충격을 받아 하위 계급에 해방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존은 그곳을 빠져나와 원래의 야만인 생활로 복귀하려고 한다. 야만인으로의 생활은 정말 성공적이고 안정되나 싶었지만, 그 잠깐의 유명세와 여자(레니나)와의 성행위가 자꾸만 떠오르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 채찍으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 자해의 끝은 환각과 분노와 신념을 지키려는 의지의 충돌로 인한 후회와 자살. 그렇게 얘기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虱)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362~363쪽)

 

• 디스토피아 소설 하면 꼭 등장하는 것이 <1984>와 <멋진 신세계>인 만큼, 근본 있는 세계관 설정과 충격적인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주요 등장인물인 버나드와 존 모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으니 말이다. 내용 요약은 두 주인공 위주로 진행했으나, 그마저도 꽤 많은 분량이 나왔다. 생각보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 사이의 크고 작은 사건들도 존재하니,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내가 인물 많이 나오고 사건 복잡한 걸 안 좋아한다). <1984>를 읽어봤다면 두 책의 내용과 메시지, 세계관을 비교하며 읽어가는 것도 책 외적인 재미를 주리라. 개인적으로 <1984>가 결말도 그렇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더 디스토피아적이어서 섬뜩하게 다가왔다.

 

• 책을 읽으며, 무엇이 인간의 행복인지 고민해 보았다. 계급으로 나뉘는 사회라고 해도, 내 관점에서는 <멋진 신세계>의 세계정부의 체제는 나쁘진 않았다. 정부 밖에 인간들까지 포섭하여 통제하려고 하지도 않고 (야만인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육아와 교육, 성생활까지 다 관리하니 계급만 잘 타고난다면 말 그대로 행복일 거다. 그렇다면 책 속의 야만인을 불행한 걸까? 그렇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통제와 자유. 안정과 불안. 어느 쪽은 통제가 불안하게 느껴질 것이고, 어느 쪽은 자유가 오히려 불안할 것이다. 그 미묘한 차이와 취향이 행복과 직결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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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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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서서히 파쇄되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몰락, 피폐, 방탕. 이 소설과 소설 속 주인공 오바 요조에게 제격인 설명이다. 요조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소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감정선을 가져, 사람들의 선행을 계산되고 이기적인 위선이라 판단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하며 지낸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어긋났던 걸까. 요조는 방탕한 삶을 살며 자랑스럽지 못할 정도로 피폐한 짓만 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한다.

 

“저한테 창녀라는 것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 혹은 미치광이처럼 느껴져서 그 품 안에서는 완전히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서글플 만큼, 정말이지 티끌만큼도 욕심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동류로서의 친근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 저는 언제나 창녀들로부터 거북살스럽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호감을 샀습니다. 아무런 타산도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 저는 백치 아니면 미치광이 같은 그 창녀들한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78쪽)

 

• 각 장의 제목이 ‘수기’로 지어진 만큼, 주인공 요조의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느껴지는 말투가 물씬 묻어나서 문체가 정말 재밌게 느껴졌다. (실상 하는 말들이나 생각들은 전부다 쓰레기 같지만...) 작가의 실제 생활도 어느 정도 반영되긴 했겠지만, 마치 요조가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고, 누군가 그의 일기를 발견해 책으로 엮은 것처럼. 그리고 요조의 일관적인 자기합리화와 사창가, 술, 도박 등 일반적으로 사회의 안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되레 칭송하는 성격이 앞서 말한 문체 덕분에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책 자체의 분량도 많지 않지만, 그의 피폐함과 ‘멘헤라’적인 행동에 몰입되기 쉬워서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저는 다케이치의 말을 듣고 그때까지 그림에 대한 제 마음가짐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안이함과 어리석음.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66쪽)

 

• ‘인간실격’. 작가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완성된 책이고 자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으니 스스로를 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 당연히 주인공 요조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될까. 대부분의 이상형 혹은 이상적인 성격을 떠올려 보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웅적인 사람을 선망하지 않는가.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그렇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고, 훈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을 따라가는 펜이 있는 거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은 ‘악인’,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매력을 느껴질 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설의 요조는 왜 매력적인가. 창녀에게서 성모 마리아의 후광을 보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는 요조가 왜 매력적일까. 정확히 설명할 단어를 찾진 못했다. 그저 그의 ‘악함’에 이끌리는 것뿐.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을 봐도 매력적인 악당은 자주 등장한다. 오히려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인기를 끄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배우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랑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인간의 실격. 작가도 요조도 동반 자살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자들까지 전부다 실격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동반 실격’의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 영화화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원작의 재현을 충실히 했다고 느꼈다. 웨이브에서 시청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한번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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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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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해안 도시 오랑. 영원히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 같던 그 도시에서 갑자기 죽어가는 쥐들이 발견된다. 그저 불어나는 쥐 사체만 처리하던 때, 사람들에게도 불명에 바이러스가 옮겨붙기 시작한다.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페스트. 도시 전체를 뒤엎은 페스트 속에서 각기 다른 인물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페스트와 싸운다. 그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의사, 기자, 신부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페스트로 폐쇄된 오랑에서 각자만의 생존기를 찍는 모습이 아주 재미 포인트다. 의사 리유는 페스트 초기부터 강경한 대응을 주장했다. 시민들을 살리기 위해 보건 조직을 결성하기도 하고, 페스트라는 불합리한 재앙을 정면으로 맞서고 응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자 랑베르는 우연히 취재를 왔다가 페스트에 잘못 걸린 사람인데, 당연하게도 탈출하고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재빨리 탈출해서 사랑하는 연인에게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데, 앞서 얘기한 의사 리유를 통해 인격적 변화를 맞이하여, 오랑에 남기로 결심한다. 그에겐 잘못은 없다. 그가 시작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대의’를 회피하지 않기로 한 결심에 박수를 치는 것은 마땅하다. 신부 파늘루는 종교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페스트에 대해 실질적인 준비와 대처는 하지 않는 인물이다. 설령 아이들이 죽더라도 신의 이름으로 내려진 심판이라 말할 뿐이었다. 그도 나중에는 기자 랑베르처럼 리유를 통해 생각이 변하여,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이 재앙이 처음으로 역사상에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에게 대적한 자들을 쳐부수기 위해서였습니다. 애굽 왕은 하느님의 영원한 뜻을 거역하였는지라 페스트가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태초부터 신의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그 발아래 꿇어 앉혔습니다. 이 점을 잘 생각하시고 무릎을 꿇으시오.” (128쪽)

 

“그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많이 보진 못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리 운운하는 것이죠. 그러나 아무리 보잘것 없는 시골신부라도 자기 교구 사람들과 접촉이 잦고 임종하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어 본 사람이면 나처럼 생각합니다. 그는 그 병고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 할 겁니다.”(169쪽)

 

• 전쟁, 자연재해, 코로나, 페스트.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안 오는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위 등장인물 3인방 중에서 누구를 택할 것인가. 정부가 힘도 못 쓰는 상황에서 스스로 시민들을 구하고자 할 것인가. 당장 그 지옥 마경을 빠져나올 것인가. 종교 혹은 누군가의 탓이라며 방관할 것인가. 의사 리유처럼 누구 한 명의 목숨이라도 살리려고 하는 것이 존귀하며, 인류가 가져야 할 이상적인 자세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마 카뮈도 그것이 옳다며 소설을 썼겠지만, 난 솔직히 도망치는 쪽이다. 행복도 불행도 삶 속에서 누려야 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발버둥 칠 거다. 그래서 소설 초반 랑베르의 태도에 아주 공감하고, 개인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기를 기도하며 읽었다.

 

• 다만, 가독성이 안 좋다는 생각이다. 나만 이렇게 느낀 거일 수도 있는데, 여러 서평이나 서점 리뷰들을 찾아보니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좀 있는 거 같다. 뭐랄까, 분량도 꽤 되고 카뮈의 3부작 시리즈라고 해서, 부조리의 <이방인>과 반항의 <페스트>로 소개되는 만큼 천천히 음미하기를 권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독성에서 오는 피로감이 상당해 사전에 책 요약이나 인물 관계도 같은 공부를 조금 곁들이고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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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1 - 개정판 ㅣ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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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교포 1.5세대의 이민진 작가가 30년에 걸쳐 만든 소설이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들 역시 재미교포와 비슷한 재일조선인들이다. 오늘 다루어 볼 개정판은 2권 구성이며, 소설 전반에 걸쳐 주인공 가족이 4대까지 등장한다. 책의 시작을 연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라는 문장은 일제강점기라는 비극 속에서 조국을 위한 대의보다는 삶을 원했던 평범한 사람들, 역사에서는 비추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한 완벽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에 연이어 제목인 ‘파친코’ 또한,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친코 사업을 벌인 주인공 가족의 선택이 잘 드러나고, 도박이라는 그 절박한 불확실함이 잘 느껴져, 이민으로 인해 항상 불안 속에서 전진해야만 하는 상황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상황은 절박하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막 어둡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 덕에 생생한 묘사와 부드러운 시선이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세 사람은 조선인들이 사는 빈민가인 이카이노에서 내렸다. 요셉의 거주지에서 도착해서 보니 역에서부터 전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좋은 집들과 상당히 달랐다. 동물의 악취가 상한 음식이나 변소 냄새보다도 역했다. 선자는 코와 입을 막고 싶었지만 억지로 참았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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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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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미래엔 전체주의 국가들만 남은 지구가 존재한다. 나라들은 서로 전쟁 중이며, 영국은 ‘빅브라더’라는 강력한 당에 의해 지배받는다. 그런 영국에서 윈스턴은 신문 기사를 수정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저 반복뿐인 일상에서 윈스턴은 줄리아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고 줄리아와 함께 빅브라더에 저항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금세 붙잡히고 처절한 고문과 세뇌를 당하고 말아, 정부에 대한 반감과 줄리아에 대한 사랑 모두 잃게 된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소설 마지막에서)

 

• 공산주의를 비난하는 최고의 고전문학이라는 수식어에 어울릴 만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과 주인공이 패배하는 결말까지 무척 매력 있고 인상 깊다. 소설 속 배경인 1984년은 이미 먼 과거에 날이지만 지금의 현실은 점점 소설을 닮아간다는 점 또한 소설을 마냥 소설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무섭게 다가온 점은 빅브라더로 표현한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세뇌’였다. 소설 후반부, 윈스턴이 결국 붙잡혀 고문을 받게 됐을 때, 윈스턴은 당연히 저항했다. 하지만, 고문이 길어지고 강도가 세질수록 그가 그들의 바람대로 변해가는 것이 보이는데, 사랑하는 줄리아가 대신 고문을 받게 해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한다. 만약 영상 매체였다면, 고문의 물리적 폭력성에 묻혀 글로 전해오는 그의 정신 붕괴 과정을 다 느끼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철저하게 스스로를 배신하고 버린 윈스턴과 줄리아. 둘은 거리에서 마주쳐도 어떠한 생각도 감정도 후회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친다.

 

• 요새 참, 말이 많이 나오는 게 가짜 뉴스 이런 거 아니겠는가. 복잡하게 설명할 것도 아니고 난 정부든 정치든 뭐든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럼에도, 뉴스 보도 내용이 뭔가 실질적으로 알아야 하는 거는 안 보여주고 이슈가 되는 것들만 보도한다는 생각인데. ‘글’을 통해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한다는 빅브라더의 행동과 닮아 보인다. 물론, 뉴스가 무조건 안 좋은 보도만 한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개인으로 남아야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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