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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 인간이 서서히 파쇄되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몰락, 피폐, 방탕. 이 소설과 소설 속 주인공 오바 요조에게 제격인 설명이다. 요조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소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감정선을 가져, 사람들의 선행을 계산되고 이기적인 위선이라 판단하며 스스로도 그렇게 행동하며 지낸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어긋났던 걸까. 요조는 방탕한 삶을 살며 자랑스럽지 못할 정도로 피폐한 짓만 하다가 결국 생을 마감한다.
“저한테 창녀라는 것은 인간도 여성도 아닌 백치 혹은 미치광이처럼 느껴져서 그 품 안에서는 완전히 안심하고 푹 잘 수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서글플 만큼, 정말이지 티끌만큼도 욕심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서 동류로서의 친근감 같은 것을 느끼는지, 저는 언제나 창녀들로부터 거북살스럽지 않을 정도의 자연스러운 호감을 샀습니다. 아무런 타산도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 저는 백치 아니면 미치광이 같은 그 창녀들한테서 마리아의 후광을 실제로 본 적도 있습니다.” (78쪽)
• 각 장의 제목이 ‘수기’로 지어진 만큼, 주인공 요조의 어딘가 모르게 여유가 느껴지는 말투가 물씬 묻어나서 문체가 정말 재밌게 느껴졌다. (실상 하는 말들이나 생각들은 전부다 쓰레기 같지만...) 작가의 실제 생활도 어느 정도 반영되긴 했겠지만, 마치 요조가 진짜 살아있는 인간이고, 누군가 그의 일기를 발견해 책으로 엮은 것처럼. 그리고 요조의 일관적인 자기합리화와 사창가, 술, 도박 등 일반적으로 사회의 안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되레 칭송하는 성격이 앞서 말한 문체 덕분에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책 자체의 분량도 많지 않지만, 그의 피폐함과 ‘멘헤라’적인 행동에 몰입되기 쉬워서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저는 다케이치의 말을 듣고 그때까지 그림에 대한 제 마음가짐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안이함과 어리석음. 대가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의해 아름답게 창조하고, 혹은 추악한 것에 구토를 느끼면서도 그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희열에 잠겼던 것입니다.” (66쪽)
• ‘인간실격’. 작가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완성된 책이고 자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으니 스스로를 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 당연히 주인공 요조를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될까. 대부분의 이상형 혹은 이상적인 성격을 떠올려 보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영웅적인 사람을 선망하지 않는가.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그렇기에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고, 훈장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들을 따라가는 펜이 있는 거다. 그와 반대되는 사람들은 ‘악인’,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매력을 느껴질 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소설의 요조는 왜 매력적인가. 창녀에게서 성모 마리아의 후광을 보고,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사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는 요조가 왜 매력적일까. 정확히 설명할 단어를 찾진 못했다. 그저 그의 ‘악함’에 이끌리는 것뿐.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을 봐도 매력적인 악당은 자주 등장한다. 오히려 주인공보다 악당이 더 인기를 끄는 경우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배우는 이상적인 인간상이랑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인간의 실격. 작가도 요조도 동반 자살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자들까지 전부다 실격의 길로 끌어들이려는 ‘동반 실격’의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 영화화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원작의 재현을 충실히 했다고 느꼈다. 웨이브에서 시청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영화도 한번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