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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품절
• ‘나무’의 선택을 받아 꿈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목화. 그러나 딱 한 사람만 구할 수 있고, 그렇게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살린 사람이 다시 자살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결말을 꿈속에서 봐야 한다. 구하기를 거부하면? 엄청난 두통에 시달린다. 결국,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목화는 사람을 한 명만 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와 할머니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 그중 단 한 사람만을 살릴 수 있는 일. 그보다 더한 지옥이 있을까?” (72ᄍᆃᆨ)
“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날 목수는 그 말을 기록했다.” (104쪽)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 목화는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았다.” (125ᄍᆃᆨ)
• 비현실적인 능력이 이렇게나 안 부러웠던 적이 있을까. “사람을 구할 수 있어! 근데 무조건 꿈에서만 구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한 명만 구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죽는 건 지켜만 봐야 해. 그렇게 구한 사람은 사실 연쇄살인범이어서 다른 희생자가 나올지도 몰라!” 소설 속 목화를 지켜보며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작가는 대대로 이 이능이 내려왔다는 설정을 추가하여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던져 주었다. 엄마와 할머니도 이 현상을 겪은 것인데, 각자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다. 할머니는 이것을 축복이라 불렀고, 엄마는 저주라 불렀다. 이제 목화는 축복과 저주 사이에서 이 힘을 정리하고 알아가야 한다. 그 끝은 무엇이라 정의 내리지 못한 채 힘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그저 그렇게 살아는 것이지만.
사실 소설은 의문투성이다. 따로 적진 않았지만, 목화의 실종된 가족은 어떻게 됐으며, 나무의 힘은 무엇이고, 발현되는 힘과 그 힘이 멈추고 유전되는 이유 역시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다. 왜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목화는 살아가기로 한다. 목화의 힘이 그리 대단하지 않기에, 우리도 그 힘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어떨 땐, 한 마디 말로 사람을 살린다.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우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사고 현장에 일반인들이 달려가서 위급한 사람을 구하는 것도 희귀한 일이 아니다. 우리도 목화처럼 사람을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목화의 능력을 보며 오히려 현실의 얘기를 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힘이 있다. 각자 부르는 방식도 힘의 편차도 크지만 지니고 있음은 다름이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축복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저주라 부른다. 내 힘은 무엇이며 그 힘은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목화는 적어도 힘의 능력과 결과를 알았다. 여기서 목화는 자신의 힘을 선과 악인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자기자신이라 정의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이분법은 사라지고, 오직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힘만이 남는다. 그 힘을 지닌 자신만이 자신에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위안을 얻었다. 특이한 능력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아서, 목화를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다루어서, 나는 꿈에서까지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사람을 도울 수는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 내용을 파헤치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 나무와 능력의 정체나 목화의 다른 가족, 특히 실종된 가족의 얘기가 마저 다뤄지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큰 가지가 하나 멋들어지게 자랐으면, 옆에 있는 잔가지도 잘 컸는지 보고 싶은데, 잔가지가 자라다가 만 느낌이다. 그럼에도 비현실적인 능력을 굉장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다루고, 그걸 품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은 이 책에 빠져들게 함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