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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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마을에서 지내고 있는 어린 소녀 스카웃, 그녀의 오빠 젬 그리고 친구 딜. 이 세 명은 도통 사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괴담만 무성하던 집을 지켜보기도 하고, 성격이 괴팍한 할머니에게 장난을 치다 걸려서 할머니 집에서 책을 읽는 벌을 받는 등, 사고뭉치 같지만, 천진난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톰 로빈슨이라는 흑인이 어느 백인 여자를 강간했다는 오해를 사게 되면서 재판을 받게 되고, 스카웃과 젬의 아버지가 그의 변호를 맡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적어도 재판 현장에는 오지 말라며 당부했지만, 그들은 몰래 재판을 구경하러 가게 되고, 톰이 강간을 했을 리가 없다는 아버지의 논리 정연한 말에도 그리고 실제로 강간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도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형벌을 받게 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후에 톰은 탈옥하다가 총에 맞아 죽게 되고, 재판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지위를 낮췄다고 생각한 상대측 백인 여자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 칼을 들고 아이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아이들을 도와준 건 다름 아닌, 초반에 등장한 괴담 무성한 집의 주인, 부 래들리였다. 부 래들리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 괴한을 죽이게 됐지만, 마을 보안관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살인을 술에 취해 넘어져 칼에 찔렸다는 식으로 은폐를 결정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성숙함에 이른다.

 

• 1900년 초반의 미국을 담은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의 주요 사건인 재판에서 인종차별을 다루고 있다. 재판 과정 속 변호를 들어보면, 사실 톰은 한 쪽 팔이 없다는 신체적 결손의 이유로 강간은커녕 남에게 해를 입히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흑인이라는 천성 때문에 감옥에 갇힌다. 이어서 이 소설은 인종차별을 넘어 편견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초반에 등장한 부 래들리의 집을 보자. 오늘날로 치면 은둔형 외톨이인데 심성은 착한 그다. 그런데 집 밖을 안 나간다는 이유로 이상한 소문이 돌고, 그 소문에 아이들은 동화되어서 직접 그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데도 그저 이상하다는 이유로 편견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런 편견은 다시 아이들에게로 전파된다. 차별을 넘어선 편견의 대물림인 것이다. 소설을 이런 대물림을 후반, 아이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그를 조력자로 등장시켜서 해소한다. 어쩌면 그 괴담을 읽은 독자들의 편견도 깨뜨렸을지도 모른다.

 

• 또한, 무지함과 순진함에 차이를 보여주는 모습도 있다. 짧게 등장하지만, 아이들의 선생님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혐오하고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흑인을 혐오하는 모습이다. 사실, 유대인 학살을 진정으로 알고, 그것에 실망하고 자신은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면, 흑인 차별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히틀러와 똑같은 짓을 하는 거니까. 그러나 선생은 무지하여 그 동일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재판에서 등장하는 백인 여자의 아버지도 비슷한 경우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그 어떠한 사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지함을 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멍청하다고 얼마나 욕을 했는지. 그리고 이런 무지함과 비슷하게 아이들의 순진함에도 발을 들인다. 순진함은 그 컵이 비어, 컵에 어떤 음료를 따름에 따라 컵에 정체성이 바뀌는 것과 같다. 컵에 물을 따르면 그것은 순수한 물. 컵에 주스를 따르면 달콤한 주스-컵이 되고, 술을 따르면 성인만을 위한 축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순진함은 아이들이 가진 특성이다. 괴담만 무성했을 뿐 착한 사람이었던 집 주인. 흑인이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사회. 무지한 어른과 현명한 아버지. 아이들은 그들의 마을과 그들의 어른과 그들의 주변 환경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는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잘 드러난다.

 

• 마지막으로 ‘앵무새 죽이기’다. 이는 해를 끼치지 않고 노래를 부르를 뿐인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죄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기에 흑인 톰과 괴담에 둘러싸인 래들리는 앵무새요. 소설에서 톰 앵무새는 죽었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래들리가 흑인이었다면? 그를 은폐한 보안관이 괴팍한 사람이었다면? 혹은 흑인 차별주의자였다면? 그렇다면 소설은 모든 앵무새를 죽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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