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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ㅣ 은행나무 시리즈 N°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평점 :
• 두 명만이 소설에 존재한다. 부모의 빚 때문에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시작한 구, 그리고 어릴 적 부모를 잃어 이모의 손에서 자라난 담. 구와 담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애인이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구는 죽었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다가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담은 구를 먹었다. 살아있을 적부터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자로 취급당하던 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담은 구를 먹었다. 아주 오랫동안 살아가야만 한다.
“‘안녕’하고 말했는데 ’안녕‘으로만 끝날까봐. 아니, 그 인사조차 돌려받지 못할까봐. 누구에게나 보여주는 겉치레 인사 말고, 너의 고유한 표정과 감정을 갖고 싶었다.” (169쪽)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173쪽)
• 짧으면서도 파급력 있는 소설이다. 근데, 2015년도 출간이라니. 왜 그 당시에는 유행하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일까. 난 sns의 역할이 크다고 느꼈다. 짧고 충격적이고 강렬한 사랑 얘기라니, 도파민 자극하기 딱 좋은 소재들만 차곡차곡 모아둔 수준이다. 현재 20대들의 입맛이 왜 이렇게나 자극적이고 정병스러운(?) 것들만 추구하는지 원인까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예전 20대보다는 확실히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그 자극은 sns에서 사용하기 정말 좋다. 또한, <구의 증명>이 보여주는 문장력과 구와 담을 오가는 시점의 변화 등등은 여태 나온 한국 소설 중에서는 극히 드문 편이라고 생각한다. 텍스트-힙이라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 유행을 통해 독서에 대한 관심이 상승했으며 그 흐름을 탄 <구의 증명>은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 담에게 돌아와서, 사랑하는 연인이 죽고 그 시체를 먹었다면 그것은 죄일까? 담도 똑같은 독백을 남긴다. 세상에 시선으로 보자면 당연히 미쳤다는 말을 듣겠지만, 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진실되며, 오직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일종의 장례식이다. 장례식이 범죄일까? 아니다. 식인은 범죄일까? 맞다. 시체를 먹음으로써 애도를 표하는 장례식은 범죄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적어도 그와 그녀의 사정을 아는 독자들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야만 한다. 죄의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알기에 범죄라고 단정짓지 못한다. 물론 잘했다고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일종의 연민을 느껴버렸다. 사회에서 버려진 구와 담을 보며 불쌍하다고 느꼈고, 그를 쫓는 사채업자를 보며 분노를 느낀다. 우리는 구와 담을 함부로 욕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만약 담이 재판에서 여러 정황과 상황을 고려 받아 무죄 판결을 받아도, 사회는 다시 그녀를 버릴 것이다. 버리는 것을 넘어 마녀라며 증오하고 혐오할 수도 있다. 왜? 그녀가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불쌍함보다 비상식적 행동이 더 불편하게 다가와서 그렇다. 그러면 죄는 누가 판가름하는가. 대중이다. 무죄여도 대중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죄다.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아도 그 형량이 대중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판결은 잘못됐다며 비난한다. 그렇기에 죄는 대중이 판가름한다. 그 커다란 흐름과 목소리는 사회와 개인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애인의 시체를 먹은 담은 죄가 있다. 우리와 그녀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대중이 마녀라고 낙인을 찍는 순간 담은 평생을 구와 함께 버림받아야 한다. 사실 담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됨에는 구를 죽기 직전까지 쫓아다닌 사채업자의 몫이 크지 않는가. 사람을 죽기 전까지 따라다닌 사람과 사랑하는 애인을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추모하는 애인 둘 중에 누가 죄인일까. 어쩌면 이미 구를 먹은 담에게는 전부 소용없는 추론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