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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피크닉 스트루가츠키 형제 걸작선
스트루가츠키 형제 지음, 이보석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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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외계인은 잠깐지구를 방문했다. 우리가 자동차 여행을 떠날 때, 잠깐 휴게소에 들르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그냥 목적지를 향하던 중 심심해서 피크닉(소풍) 겸 지구에 들렀다고 말한다. 그 방문에서 인류와 외계인의 접촉은 없었지만, 인류는 그들이 남기고 간 배설물 수준의 쓰레기를 얻기 위해, 오늘도 미지의 구역으로 향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재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지는 구역에 잠입하여 그들의 쓰레기를 밀반입하는 자들을 스토커라 부르기로 한다.

 

피크닉 말입니다. , 시골길, 풀밭을 떠올려 봐요. 차가 시골길에서 풀밭으로 들어가고, 차에서 젊은이들이 내리고 술병들, 음식이 담긴 바구니들, 아가씨들, 트랜지스터라디오, 카메라들이 나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텐트가 세워지고 음악이 흐르지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이들은 떠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동물과 새, 벌레들이 자기 피난처에서 기어 나옵니다. 그때 이들이 보게 되는 건 뭐겠습니까? 풀밭에는 자동차 엔진오일이 흐르고 벤진으로 흥건하며 쓸모없는 양초와 오일 필터가 사방에 버려져 있겠지요. 헌 옷이 널브러져 있고, 수명을 다한 전구가 뒹굴고 누군가는 렌치를 버리고 갔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는 늪지에는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고…… 그러니까, 불 피운 흔적이며 사과 찌꺼기, 사탕 껍질, 통조림 캔, 빈 병, 누군가의 손수건, 누군가의 주머니칼, 오래되어 찢어진 신문, 동전들, 다른 들판에서 온 시든 꽃 같은 것들을……

압니다, 노변의 피크닉이죠.” 누넌이 말했다.

바로 그겁니다. 우주의 노변에서 열린 피크닉. 그런데 당신은 그들이 돌아올지 아닐지를 나에게 묻는군요.” (231~232)

 

여러 sf 소설, 게임, 영화에 영향을 준 책이라 한다. 특수 구역에 들어가 여러 아티팩트를 얻으며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스토커라는 게임이 있는데, 이름과 설정부터 소설에 방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구역이라는 개념은 몇 년 전에 개봉한 영화 <서던리치>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이런 배경이 있으니, 소설의 내용도 구역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조금의 실망이 있었다.

구역에 들어가 외계의 물체를 가지고 나오는 스토커의 얘기치고는 구역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고, 그들의 대화에 대부분은 술과 담배, 그리고 외계 물체를 얼마에 팔았다는 내용뿐이다. 거기에 외계 물체는 깡통’, ‘검은 물방울’, ‘팔찌같은 스토커의 은어로 불리는데, 은어로 쓰인 게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줄임말과 유행어를 마구잡이로 쓰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려면 그 은어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다보면 적응하긴 하지만, 막상 처음 저 스토커 은어들을 보면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하기에 어려웠다.

 

그럼에도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게 뭔지는 모르는데, 어찌저찌 쓰고는 있어.”라 말하는 그들의 엉성한 태도다. 구역의 물건들은 하나같이 인류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와 작동법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그냥 이것저것 해보다가 하나 얻어걸린 방법으로 그 물건들은 사용한다. 소설 속 사람들도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는 거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구역과 외계 쓰레기는 인류의 과학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인간은 지식의 한계를 맞았다. 그렇다면,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는 우리 주변에 물건을, 환경을, 우리 자신을 얼마나 그대로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여담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책 마지막에 배치된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스토커라는 단어가 한국에서는 범죄자를 지칭하는 말이라 번역을 고민했다는 말과 스토커들의 은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이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소설 시작 전에 가볍게 뇌도 깨우고, 그들의 은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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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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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등장하는 동명의 영화가 더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을 기반으로 굉장히 잘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좀비로 등장하는 괴물이 소설에서는 흡혈귀이다. 거기에 좀비보다는 더 지능적으로 묘사되어 사람 말도 그대로 하고 네빌을 유혹하는 여성 흡혈귀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인공의 기본적인 설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 네빌은 자기관리 끝판왕에 군 소속의 바이러스 과학자라서 좀비 실험을 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반면 소설의 네빌은 그냥 평범한 아저씨라서 세균, 바이러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틈틈이 독학하며 실험을 이어가고 자기관리는 무슨 완전 술꾼에, 앞서 말한 여성 흡혈귀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영화와 소설 모두 네빌이 인류 최후의 생존자라고 보여주지만, 영화의 네빌은 너무나 완벽한 모습에 그저 멋있다며 전설이라 칭하기 바쁘고, 소설의 네빌이 가진 불완전하고 어떻게 보면 더 현실성 있는 모습에 이 사람이 진짜 인류를 구원하는 전설적인 존재인지 의구심을 갖게 만들 지경이다. 한마디로 원작의 네빌은 멋있지 않고 영웅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점이 되려 네빌의 쓸쓸함을 더 증폭시킨 부분이지 않겠는가?

 

앞서 말했다시피 영화의 괴물은 좀비로, 소설의 괴물은 흡혈귀로 등장한다는 차이도 존재한다. 특히 흡혈귀 괴물이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는데, 흡혈귀 탄생의 원인은 변이 바이러스였고, 이 바이러스는 시체까지 되살리는 특징을 지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흡혈귀들은 민간 신화 속 흡혈귀처럼 햇빛과 십자가를 두려워하고 거울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 네빌의 추측으로는, 언론이 퍼뜨린 거짓 보도와 각인된 공포가 불러온 결과라고 해석된다. 사망 후, 바이러스로 되살아나는 과정에서 원초적인 본능만이 남게 되는데, 자극적이고 거짓된 보도로 공포가 각인된 채 죽어버려, 그 흡혈귀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가 역설적이게도 괴물이 된 자신에게도 투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거다. “흡혈귀는 마늘이 무섭대.” -> “으악! 나 감염되서 흡혈귀가 됐어!” -> “ㅇㅓ... 흡혈귀는 마늘이 무서워... 나 마늘이 무서워...” 이런 서순으로 보는 거다. 좀 귀여울지도?

거기에 이 귀여운 흡혈귀들은 독자적인 사회 체계를 만들어서, 사실상 바이러스로 인해 분리된 인류의 변종으로 봐도 될 정도인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네빌이 이 흡혈귀 사회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 사이에서 자신이 흡혈귀를 사냥하고 온갖 실험에 써먹는 전설적인괴물로 불린다는 것이다. 난 내가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서 인류를 구원하고 전설이 되려고 했는데, 정작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을 잡아먹는 전설적인 괴물로 불리다니, 너무나 충격적인 반전이다. 이렇게 제목의 뜻을 비교해보니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명확히 느껴지는 점도 아주 재미지다.

 

조사를 하다 보니, 이 소설이 좀비 등장에 시초가 되었다는 어느 글을 보게 되었다. 성공적인 좀비 영화로 꼽히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도 영향을 받았다는 말이 있고, <새벽의 저주>, <28일 후>, <블레이드>, <레지던트 이블> 등등 이 정도면 유명한 좀비 영화 모임을 해도 된다. 흡혈귀가 등장하지만, 집단 감염 및 변이라는 특징이 저 영화들의 좀비를 구성하는 밑받침이 되었을 거다. 시간이 된다면, 소설을 읽고 동명의 영화도 보고 저 영화들도 보는 게 어떤가! 여름과 장마는 길고 우리는 그 열을 서늘한 공포로 다루는 법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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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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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앞서, 무려 1500쪽 가까이 되는 소설이라니! 거기에 소설 전반에는 작가의 시간에 대한 철학이 스며들어 있고, 등장인물마저도 여러 신념과 철학을 지녀, 저녁 먹다가 토론을 벌이기 일쑤인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시간이 많고 인문학적 지식이 많거나 그런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취향 저격이지 않을까...

 

오늘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이 신세를 지고 있는 요양원에 방문한다. 한스는 병문안 겸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로부터 3주의 안정을 취할 것을 권유받는다. 마침 한스는 조선소에서 일할 예정이었고, 3주라는 시간은 오랜만에 사촌과 시간도 보내고, 자신의 건강도 챙길 아주 합리적인 기간이라는 생각에, 한스는 요양원에서 잠시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서 한스는 여러 인물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어느 여인에게 감정을 느끼기도 하며 일상을 보내는데... 앞서 얘기한 작가의 시간 철학을 기억하는가, 한스는 3주만 머물기로 한 요양원에서 무려 7년을 보낸다! 그리고 그 7년의 끝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으로 마무리된다.

 

시간에 관한 철학. 작가는 독특하게도 소설 중간에 자신의 그런 생각들을 삽입해두었다. 즐거운 일일수록 시간이 빨리 가게 느껴지는 것뿐만 아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 쭉 지속되었을 때, 그 과거를 돌아보면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지나간 일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다. 단조로움과 지루함. 그리고 그것들의 연속은 오히려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현상. 요양원에서의 일상이 7년으로 늘어난 한스의 상황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그리고 사촌 요하임과의 첫만남부터, (요양원에서 3주 휴식을 권유받았을 때도) 이 시간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결국 한스는 마의 산, 요양원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곳에 사로잡힐 운명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주무대인 요양원을 보자. 현실에서도 요양원이나 병원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표현되지 않는가. 워낙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기에 과감히 생략했지만, 요하임도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고, 한스가 지내던 방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방으로 설명된다. 결국 그 사람도 죽었지만 말이다. 앞서 얘기한 시간의 흐름과 요양원이 지니 죽음에 관한 연관성까지. 산 위에 존재하는 요양원과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을이 이분법적인 논리로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제목에 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마법, 마술, 마귀 할 때의 이다. 원제는 그대로 번역하면 마법의 산으로 나오는데, 마 한 단어만 넣으니 불길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번역 참 잘했다.

 

그러나 결말에 한스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이 조금 걸린다. 죽음과 시간이 뒤섞인 요양원에서 7년이나 보낸 한스는, 소설 후반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묘사된다. 인간이 대립보다 고귀하고, 죽음보다 고귀하며, 삶보다 더 고귀하다는 깨달음. 굉장히 진취적이고 활력적인 깨달음이다. 그래서 , 이제 이 자식이 정신 차리고 하산해서 일이라도 구하고 끝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스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 아니다. 가장 많은 죽음이 탄생하는 곳이 전쟁이지 않는가. 삶에 대한 끝내주는 깨달음을 얻은 자가 향하는 곳이 전쟁터라니. 작가는 결국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싶던 걸까. 아니면 한스가 정신을 놓아버린 걸까. 의문만 남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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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2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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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앞서, 무려 1500쪽 가까이 되는 소설이라니! 거기에 소설 전반에는 작가의 시간에 대한 철학이 스며들어 있고, 등장인물마저도 여러 신념과 철학을 지녀, 저녁 먹다가 토론을 벌이기 일쑤인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시간이 많고 인문학적 지식이 많거나 그런 내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취향 저격이지 않을까...

 

오늘의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 요하임 침센이 신세를 지고 있는 요양원에 방문한다. 한스는 병문안 겸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로부터 3주의 안정을 취할 것을 권유받는다. 마침 한스는 조선소에서 일할 예정이었고, 3주라는 시간은 오랜만에 사촌과 시간도 보내고, 자신의 건강도 챙길 아주 합리적인 기간이라는 생각에, 한스는 요양원에서 잠시 머물기로 한다. 그곳에서 한스는 여러 인물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어느 여인에게 감정을 느끼기도 하며 일상을 보내는데... 앞서 얘기한 작가의 시간 철학을 기억하는가, 한스는 3주만 머물기로 한 요양원에서 무려 7년을 보낸다! 그리고 그 7년의 끝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으로 마무리된다.

 

시간에 관한 철학. 작가는 독특하게도 소설 중간에 자신의 그런 생각들을 삽입해두었다. 즐거운 일일수록 시간이 빨리 가게 느껴지는 것뿐만 아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 쭉 지속되었을 때, 그 과거를 돌아보면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지나간 일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다. 단조로움과 지루함. 그리고 그것들의 연속은 오히려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현상. 요양원에서의 일상이 7년으로 늘어난 한스의 상황과 무척이나 비슷하다. 그리고 사촌 요하임과의 첫만남부터, (요양원에서 3주 휴식을 권유받았을 때도) 이 시간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결국 한스는 마의 산, 요양원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곳에 사로잡힐 운명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주무대인 요양원을 보자. 현실에서도 요양원이나 병원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표현되지 않는가. 워낙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기에 과감히 생략했지만, 요하임도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고, 한스가 지내던 방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던 방으로 설명된다. 결국 그 사람도 죽었지만 말이다. 앞서 얘기한 시간의 흐름과 요양원이 지니 죽음에 관한 연관성까지. 산 위에 존재하는 요양원과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을이 이분법적인 논리로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제목에 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마법, 마술, 마귀 할 때의 이다. 원제는 그대로 번역하면 마법의 산으로 나오는데, 마 한 단어만 넣으니 불길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번역 참 잘했다.

 

그러나 결말에 한스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이 조금 걸린다. 죽음과 시간이 뒤섞인 요양원에서 7년이나 보낸 한스는, 소설 후반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묘사된다. 인간이 대립보다 고귀하고, 죽음보다 고귀하며, 삶보다 더 고귀하다는 깨달음. 굉장히 진취적이고 활력적인 깨달음이다. 그래서 , 이제 이 자식이 정신 차리고 하산해서 일이라도 구하고 끝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스는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가장 죽음과 가까운 곳? 아니다. 가장 많은 죽음이 탄생하는 곳이 전쟁이지 않는가. 삶에 대한 끝내주는 깨달음을 얻은 자가 향하는 곳이 전쟁터라니. 작가는 결국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싶던 걸까. 아니면 한스가 정신을 놓아버린 걸까. 의문만 남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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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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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미래, 인류는 타 행성에 콜로니를 건설할 정도로 발전한 문명을 이룩했다. 오늘의 주인공인 오필리아는 평생을 지구가 아닌 콜로니에서 보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기만을 꿈꾸던 그녀에게 콜로니는 모든 거주민의 이주를 통보한다. 이주 후 새로운 콜로니를 꾸리려면 당연히 젊고 노동력이 보장된 이들이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기에, 70대 노년인 오필리아는 쓸모없음’, ‘가치 없음이라는 걸림돌 취급을 받게 된다. 거기에 우주를 항해하며 냉동 캡슐에 잠들게 되면, 노년의 신체 특성상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오필리아는 결국 수송선에 타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집으로 숨어든다. 그렇게 그녀는 잔류인구가 되었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sf류의 작품들을 보면 지구를 떠나 행성을 개척하고, 행성의 토착 생물들과 대적하고, 심하면 외계인과 조우하게 되는 상황을 자주 보게 된다. 소설 <잔류인구>도 그런 면에서 후에 등장할 내용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한마디로 소설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소설이 재밌다고 추천하는 데에는 70대 할머니, 오필리아의 캐릭터성이 매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서평을 찾아보니, 여성이 주인공인 점이 매력적이라는 글도 있던데, 어떤 인물이 등장하면 성별보다는 성격과 행보에 집중하는 편이라, 오필리아가 노인이라는 특징이 더 마음에 들었다. 소설 초장부터 쓸모없다는 취급을 받은 그녀이기에 잔류인구가 된 후 보여주는 행동들이 더 돋보이는 것도 있다. 긴 인생을 살며 쌓아온 노하우, 침착하고 합리적인 판단, 그녀가 보여주는 노련함은 정말 속된 말로 노년 간지.

 

작중에서 오필리아는 외계 생명체와 접촉한 첫 인류이기도 한데, 여기도 오필리아의 할머니 캐릭터가 완전히 장악을 해버려 솔직히 근래 읽은 소설 중에서 순수 재미 1등을 주고 싶을 정도다. 외계 생명체들은 오필리아와 직접적인 접촉을 하기 전부터 서서히 소식을 들려줬는데, 소식들은 하나같이 개척민을 학살했다거나 떼죽음을 당했다거나 아주 무서운 소식들뿐이다. 그렇기에 오필리아의 집에 괴생명체들이 침입했을 때,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막상 괴생명체들은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오필리아의 눈에는 방금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돌봄의 대상, 왠지 모르게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말도 안 통하는 외계 생명체들은 돌보기 시작한다. 초면일지언정 밥은 먹었냐고 따스하게 물어보시는 어르신들처럼 말이다. 결국, 인류의 외계인 첫 조우의 결말은 두 종족간에 치열한 전쟁도 아니고 과학적 교류를 통한 발전도 아닌, 돌봄과 존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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