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쓰는 기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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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문학계의 가장 큰 이슈는 바로 한강 작가그녀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이면에 더 중요한 결정적 공로를 따지자면 바로 노벨 문학상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글로 쓰여진 한국 작가의 작품, 그것도 특정 지방의 사투리가 무진장 섞인 작품을 영어로 번역한 영국의 데보라 스미스의 헌신적이고 도전적인 번역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그녀는 한국인들 조차도 어렵게 느껴지는 채식주의자소년이 온다등 한강 작가의 작품을 타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것은 독일어로 쓰인 괴테의 작품, 그것도 를 한글로 번역한 옮긴이의 예술적 감각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번역 출판된 작품은 반은 원작가, 반은 번역가의 예술적 감각이 혼합되어 하나의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에 번역된 시를 보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순서를 바꿔가고 존댓말로 바꾸어보고, 존댓말을 평어로 바꾸어서 시를 읽어보았다. 그러자 확실히 시를 읽고 느끼는 바는 달랐다. 과연 독일어로 괴테의 시를 읽었다면 우리는 번역된 시를 읽고 느끼는 감동이 더 할 수도, 덜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순전히 읽는 사람들의 언어나 감정의 차이일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들을 해 가며 읽은 것은 바로 이 책이 이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또한 필사책이다. 시를 읽고 옆 공간에 내가 시를 필사하는 것이다. 매일 하나의 시를 읽고 쓰다 보면 느끼는 바는 또 다를 것이다. 책 표지에는 쓰는 기쁨이라고 되어 있다. 글쎄 쓰는 기쁨이 읽는 기쁨보다 더 클까? 직접 써 보니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를 더 생각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만약 읽고만 하고 넘어갔다면 지금과 같은 감동은 덜 했을 것이다.

 

과거 언젠가 나는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을 읽었다. 대학 때의 일이었을 것인데 괴테의 나이도 대학생의 나이였을 것이니까 느끼는 바가 아주 달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들불처럼 자살하여 죽어나가자 2판에 특별히 괴테는 보라, 그의 정신이 무덤에서 그대에게 손짓한다. 사내답게 살라고, 나를 따르지 말라고’(015페이지)하는 시를 붙였다. 이렇게 시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과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시집에 무슨 목차가 필요할까만은 이 책은 1부에서부터 4부까지 구성되어 있고 좌측면에 괴테의 시가 위치하고 오른쪽 면엔 필사하도록 여백이 나아있다. 책 제목 나를 울게 두어!’는 가장 마지막에 편집되어 위치하고 있다. 그 페이지를 보면서 우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님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었다. 괴테는 숨기기 가장 어려운 건 한편의 시!’(278페이지)라고 하였다. 감정을 표현한 시를 숨기기 어렵다고 하였을 것이다. 참 멋진 표현 아닌가? 괴테가 쓰니 멋있는 시가 되는지도 모른다.

 

가을이다 보니 시를 읽는 것이 참 좋다. 하루에 하나씩, 아니 몇 편씩 읽고 쓰다 보면 이 가을이 다 갈 것 같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읽기는 쉬워도 필사는 쉽지 않을 것이다. 뒷 표지에 내가 좋아하는 시인 장석주님의 글이 나와 있다. ‘찰나에서 영원을 보는 괴테의 시 쓰는 기쁨으로 피어나다’(뒷표지)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괜히 시인이 아니다. 한 때 시인을 꿈꿨던 1인으로 정말 멋진 시고 멋진 구성이다. 이러한 멋진 시를 필사하는 것은 정말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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