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고,

무난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소망은 .

실로 엄청난 자기 관리의 결과물이다.

많은 것에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하는 나는

아침에 가장 먼저 건강 관리부 스프레드시트를 연다.

몇 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는지,

요가 스트레칭을 15분간 했는지 빠른 속도로 표기한다.

나의 건강 컨디션을 추적 관찰한다.

본격적인 일 시작 전에 ‘로드맵’이라 이름 붙은 스프레드시트를 열어

노란색으로 강조 표시한 오늘의 할 일 목록을 훑는다.

작은 목표를 해내며 큰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씩 걸어간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날에도 로드맵만 열어보면 ‘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이따금 찾아오는 무력한 마음을 다잡는다.

옷을 사면 옷장에 수납한 다음 의류 관리 스프레드시트에 업데이트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속옷을 살 때 내 신체 사이즈가 생각나지 않으면 헬스 케어 목록에서 최근 재놓은 치수를 확인하는 편리함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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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는 매일매일 조금씩 높이 나무를 오르자 새로운 풍경과 먹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서 주변을 살피는 여유도 부렸다.

저 꼭대기의 탐스러운 열매에는 언제 도달할지 모르지만,

올라가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배를 곯지도 않았다.

나무늘보는 깨달았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뭐라도 생김을.

나의 무기력은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함이었다고.

고개를 돌려보니 날다람쥐는 오늘도 활공 중이다.

나무늘보는 자신의 나무를 계속 오르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의미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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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해결책인가?

이것은 철학자, 사회학자, 문학가 들에 의해

세대와 세대를 거쳐 끊임없이 논의되어온 질문이다.

그렇다고 이 섬세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자살의 정의에 대해 어떤 의견의 일치를 보았거나

다음 질문에 훌륭한 해답을 제시해준 것도 아니다.

"자살은 피하고 배척해야 할 행위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고 권장해야 할 행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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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상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는 속성을 천성적으로 타고났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속성에서 오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내가 토론술이라고 부르는 방법론에서 알려줄 것이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이 방법론을 ‘논쟁적 토론술’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따라서 이는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학설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논쟁적 토론술은 논쟁할 때 이기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로서,

그 목표는 정당한 방법이든 부당한 방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먼저 두 가지 화법으로는

1) 논쟁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는 화법,

2) 논쟁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 화법이나

상대방이 시인한 사실에 바탕을 두는 화법이 있다.

이를테면 상대방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들이 거짓임을 보여주거나

(이는 상대방이 내세우는 대전제나 소전제를 반박하는 것이다),

또는 상대방이 내세우는 주장의 근거들을 일단 인정한 후,

그런 근거들을 가진 상대방의 주장으로는 아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의 논리적 추론 과정을 반박하게 된다).

말하자면 논리적 귀결, 즉 논증 방식을 공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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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규림 님은 다 좋다고 하잖아요."

뭐든 다 좋다고 말하는 내 습관은 오랫동안 큰 고민이었다.

내 딴에는 정말 좋아서 좋다고 말한 거였지만.

그러고 보니 다들 별로라는데 내 눈에는 그저 좋아 보이는 게 꽤 많았다.

내 기준이 너무 낮은 건 아닐까.

뾰족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기획자로서 무엇이든 날카롭게 보는 눈이 중요할 텐데

이렇게 다 대단하고 좋아 보여서야 어떻게 할까.

내가 너무 헤픈 눈을 가진 게 아닐까.

그래서 가끔은 좋다고 느끼면서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살면서 이것이 나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며

어쩌면 마냥 걱정할 게 아니라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 좋다, 좋아!"라고 많이 말하고 자주 감동하는 친구들,

동료들과의 만남이 그 생각에 힘을 보탰다.

잘 감동하는 습성은 좋은 의견에 쉽게 설득당하고,

상대방의 멋진 점을 바로 인정하고,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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