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는 영어를 배우기에 늦었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내 인생의 가장 자유롭고 좋은 시절이 왔는데 이 시간을 나답게 쓰는 게 당연하다.
여전히 발음은 안 좋고, 단어는 외우자마자 잊어버리지만 하루에 1센티미터씩 성장하는 내가 기특하다.
여전히 나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실패도 많이 하고 몸은 고달프겠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너무 신난다.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 60대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당시의 평균수명인 80세를 24시간이라고 볼 때 1년이라는 긴 기간은 고작 18분이 된다.
이렇게 따지면 마흔은 낮 12시, 열심히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정오다.
100세를 24시간에 빗대어 계산하면 1년은 대략 14분 24초. 40세는 오전 9시 36분이 된다.
이제 막 출근해서 한창 열심히 일할 시간이다.
50이나 돼야 비로소 정오, 낮 12시가 된다
동창회에 나가 보면 꽤나 많은 친구들이 회사에서 은퇴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일몰로 빠르게 돌려버렸다.
아껴 쓰고 살살 살고 다 내려놓는 모드로 급격히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그 시간에 도달하지 않는 한, 저절로 빨리 가지 않는 것이 인생 시계의 특징이다.
매일매일 살아내야 그 시간에 도달한다.
내가 살아내지 않는다고 해서 낮 시간을 뛰어넘어 밤으로 갈 순 없다.
40대는 퍼스트 라이프의 마무리이자 세컨드 라이프를 준비하는 인생의 변곡점이다.
퍼스트 라이프에 설레는 꿈을 가지고 나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듯이 세컨드 라이프에도 두 번째 꿈을 가지고 내 안에서 희망을 발견해나가자.
스무 살 때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꿈, 일상에 쫓겨 두고 왔던 꿈을 다시 소환하자.
스무 살에 별다른 꿈이 없었다면 퍼스트 라이프에서 만든 구슬들을 들고 나답게 다시 만들어나가면 된다.
하루에 1센티미터씩 성장하는 내가 기특하다. 여전히 나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실패도 많이 하고 몸은 고달프겠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너무 신난다.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 60대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 <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 중에서
마흔의 어느 날, 갑자기 지금까지 해놓은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어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어도 좋다.
울어야 속을 비우고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까.
다만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것만은 스스로에게 꼭 말해주자.
20대에 팝을 즐겨 듣던 사람이 60대가 됐다고 갑자기 트로트로 취향이 바뀌는 일은 드물다.
젊은 시절에 누리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젊고 건강하고 트렌디한 60대 이후의 시간을 여전히 ‘노후’라 부른다.
나는 예전부터 이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노후라는 말에는 그 시기를 채우는 콘텐츠가 없다.
노후라는 관점으로 인생을 바라보면 줄이고 아끼고 포기하는 것밖에 없다.
어떻게 인생의 절반을 지나자마자 40년이나 되는 길고 긴 시간을 노후라는 단어 하나로 묶을 수 있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내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수동적인 이름으로 부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사람만 봐도 된다.
퍼스트 라이프는 젊고 아름답고 성장하는 재미가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이 절반이고 싫은 사람과도 계속 얼굴을 봐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지난 50여 년간 스스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 같은 시간, 인생에서 제일 좋은 시절이 온 것이다.
마침내 60세에 최고의 황금기를 맞고 보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치열했던 40대가 준 선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루에 1센티미터씩 성장하는 내가 기특하다.
나는 내 인생의 황금기, 60대가 진심으로 기대된다
60을 살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40대를 충실히 살아내면 진짜 게임은 50대에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부족하거나 못나다고 결론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 40대는 아직 한창 더 커야 할 시기다.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구슬을 가지고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내가 뭐 하고 살았나 싶고 초라해 보이는 것은 결코 내가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다. - <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 중에서
60을 살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40대를 충실히 살아내면 진짜 게임은 50대에 시작된다는 것을.
내가 부족하거나 못나다고 결론 내리기엔 너무 이르다.
40대는 아직 한창 더 커야 할 시기다.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구슬을 가지고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내가 뭐 하고 살았나 싶고 초라해 보이는 것은 결코 내가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다.
마흔에는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뭐라도 완성될 것처럼 보이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막상 들여다보면 내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 왜 여전히 돈이 없지?
내가 바보같이 살고 있나?
더 열심히 달렸어야 했나?
40대 때 나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나만큼 분주히 사는 사람도 드물었다.
하나의 커리어가 무르익어 프로페셔널이 되고 돈을 벌기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적어도 20년은 더 뛰고 나서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때 받는 성적이 진짜 내 인생이다.
59세까지 이룬 것들이 100세까지의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러니 인생을 지탱할 수 있는 건강과 체력, 매달 쓸 수 있는 돈, 100세까지 살고 싶은 집, 자존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적 위치, 오늘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취미, 품위 있게 나이 들 수 있는 가치관과 철학까지, 60세 이후에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도록 인생 계획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만약 내가 마흔 살에 강사를 그만뒀다면 지금의 김미경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돈도 벌다 말았을 테니 지금까지도 경제적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마흔은 원래 완성되는 나이가 아니라 뭐든지 되다 마는 나이다.
과정의 나이지 결과의 나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마흔은 곧 안정’이라는 고정관념은 이제 버리자.
마흔에게는 격렬하게 구슬을 만들고 용감하게 꿰어보는 ‘도전’이나 ‘성장’이란 꼬리표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인생의 온갖 변수와 시련 속에서도 마흔까지 살아냈다면 당신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다.
40여 년간 내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구슬들을 어루만지며 그동안 고생한 나 자신을 다독여도 괜찮다.
함께 뛰어줘서 고맙다고 수백 번 말해주어도 좋다.
그렇게 고생한 참 고마운 나에게 우울과 불안 대신 빛나고 값진 목걸이를 선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