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전문용어를 사용해 더욱 전문가다운 면모를 갖추려 노력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을 견디면서 힘든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의 사유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우를 돌아보면,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무수한 사람들의 언어적 사유에 부단히 접속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해보는 연습도 했다.
작은 실천이지만 진지하게 반복했다.
성공한 사람,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들은 ‘그 사람다움’이 분명하다.
언어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이 언어로 판별하는 것이다
. ‘그 사람다움’은 어디서 드러나는 것일까? 각자의 다름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법 역시 여러 가지겠지만, 뭔가 다른 사람은 뭔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는 바로 자기 생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진부한 언어는 진부한 생각을 낳고, 언어가 틀에 박히면 사고도 틀에 박히기 때문이다.
돋보이는 사람은 똑같은 것을 봐도 색다르게 표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늘 만나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관찰해야 한다.
질문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고, 결국 또다시 틀에 박힌 언어만 습관적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은 언어도 남다르다
낡은 생각을 날조하기보다 익은 생각을 어떻게 하면 색다르게 창조할 수 있을지를 고뇌한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언어가 없다면 인간은 다르게 생각하는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언제나 세상은 내가 가진 개념적 넓이와 깊이만큼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언어의 한계가 생각의 한계’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된다.
언제나 언어가 문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보면 된다.
성실하게 좋은 재료를 축적해 언어를 디자인해 나가는 사람은 늘 신선하고 단단한 사고를 할 수 있다.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 니체
삶의 무대가 바뀌면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바뀐다
사람의 몸에는 그가 경험하면서 배운 언어적 상처가 아로새겨진다.
내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개념이 내 생각을 결정하고 조종한다.
앎은 상처다. 몰랐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기존의 앎에 생채기가 난다.
앎은 감각과 느낌으로 몸에 직접 전달되기도 하지만, 언어를 매개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수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려면 먼저 나 자신을 움직여야 한다. 소크라테스
사람은 자라온 환경과 하는 일에 따라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적 틀이 결정된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언어를 탁월하게 디자인한 사람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삶의 격이 다르다. 잘 설계된 한마디에 촌철살인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경지에 이른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나온 지혜가 어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 - < 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 박용후 > 중에서
깊이 읽어야 생각도 깊어진다
지성의 폐활량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언어로 해결된다
뇌에 ‘지성적 읽기 회로’를 만드는 법
연결시켜 생각하는 ‘깊이 읽기’
읽기는 결국 쓰기로 완성된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언어를 탁월하게 디자인한 사람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삶의 격이 다르다.
잘 설계된 한마디에 촌철살인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경지에 이른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나온 지혜가 어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성공이란 절묘한 언어 표현에 달려 있다. 그것은 종종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영감에서 나올 수도 있지만, 대개는 적확한 말, 그러니까 한 단어도 바꿀 수 없는 문장, 즉 소리와 개념의 가장 효과적인 결합으로 얻어진 (…) 간결하면서도 집중된, 잊을 수 없는 문장을 찾는 참을성 있는 탐구 끝에 얻어진다."고 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그 성공에 이른 길을 지극히 단순한 몇 가지 원리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말도 복잡하고, 일하는 방식도 복잡하다.
자기만의 언어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은 그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가는 선구자다.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은 자기방식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자기만의 언어를 통해 자기 생각을 가장 독창적으로 꺼내어놓는다.
생각의 쓸모는 언어의 다름이 결정하고 언어의 다름은 사람의 다름을 결정한다.
내가 특정 단어를 모르면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세계도 당연히 모른다.
내가 그 단어를 모른다는 것은 곧 그 단어가 품고 있는 세계도 모른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맴도는 생각과 적확한 언어가 만나는 순간, 생각의 불씨는 되살아나고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세상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당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레벨이 당신 인생의 레벨이고, 언격(言格)이 인격(人格)을 결정한다.
삶의 격을 높이고 싶다면 사용하는 언어의 품격을 높이면 된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저서 《논리-철학 논고》2에서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The limits of my language are the limits of my world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언어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고, 단어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차원적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많아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지 못하면 아이디어는 머릿속의 생각으로만 머물게 된다.
아이디어를 현실 세계로 불러내기 위해서 그 아이디어를 언어로 바꿔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