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우리 인간들은 사는 내내 습관처럼 서로에게 모욕을 준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최근까지 이런 행동이 괴롭힘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가하는 사람 모두에게 신경학적으로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학대는 피해자의 손상된 뇌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다시 학대하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는 학대로 인해 뇌가 입은 상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런 뇌 손상의 악순환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넘겼다.

그러나 이제 기술혁신으로 뇌에 생긴 신경 병변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을 회복할 때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상처를 치유하면 생명에 위협적인 건강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키고 그들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줄어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을 때 사람들은 ‘한 걸음 후퇴’라는 선택지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한 걸음 후퇴’란 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쓸모없는 존재로 있어보는 것이다.

잠시 쓸모없는 존재로 보내는 시간은 사실 ‘자기 수용’을 배우는 시간이다.

자기 수용’은 자신과 타인의 장단점을 이해하면서 자신에게 만족하는 것, 남들과 다르거나 부족하더라도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자기 수용을 잘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괴로울 일도 적다.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 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개성에 만족한다.

또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겁내지 않으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자신을 애써 감추거나 부정하 지도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고 부정해야만 달라질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2

3

4

5

6

7

8

10

경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치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한다.

사람은 합리적일까? 적어도 경제학에서는 그렇게 가정한다.


그래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사람 소비자 은 합리적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합리적 소비자들은 자신이 어떤 상품이나 재화로부터 얻게 되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된다.

"A라는 사람이 이 재화를 구매했으니 나도 구매해야지", "친구들이 그러 는데 이 서비스가 굉장히 좋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나도 구매해 야겠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SNS에 올리는 문장도 이와 같아야 한다.

제품을 팔기 위한 광고카피는 물론이다.

이제, 과장된 스토리텔링으로 점철된 이야기는 외면받거나 의심받는다.

게다가 SNS는 순식간에 공유되고 순식간에 뿌려진다.

속전속결로 구매 의사가 이뤄지는 것이다.

빙빙 돌아가는 화법으로 미사여구를 늘어놓다간 윙크도 한번 못 해보고 문전박대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P&G CEO 에이지 래플리A.G. Lafley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은 물론 뭔가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지구촌을 정보의 민주주의 시대, 소비자 주권의 시대라고 정의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써라.

덧칠하지 말고 그대로 전해라.

생각을 따라가며 물 흐르듯이 옮기고 해결 방법을 단도직입으로 밝혀라.

소비자는 피곤하고 바쁜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걸어오는 문장에 눈이 가고 귀를 기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사람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별장에서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하루종일 정원을 왕복하며 갈란투스꽃을 지키는 경비병을 발견했다.

러시아 황제가 경비병에게 꽃을 지키는 이유를 물었지만, 경비병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답만 들려줬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비스마르크는 수소문 끝에 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알게 되었다

사연인즉, 이른 봄 정원을 산책하던 카트리나 여황제가 눈 속에 핀 아름다운 갈란투스꽃에 반해 누군가 그 꽃을 꺾지 못하도록 경비를 서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 후 갈란투스꽃이 지고 난 뒤에도 경비병들은 관습처럼 밤낮으로 정원을 순찰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래 왔으니 그렇게 한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경비를 서는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처럼 궁금증과 호기심이 사라지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맹목과 관습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세상의 속도계를 감안한다면, 변화에 대한 둔감함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