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일본의 문학평론가 사이토 미나코는 『취미는 독서』에서 일본 열도를 뒤흔든 21세기 베스트셀러 40권을 소개한 후, 그 헛헛한 성공 요인을 냉소와 풍자의 언어로 날카롭게 소개한 바 있다. 이와 쌍을 이루는 책이 나온 셈이다
그럴듯한 ‘좋은 말’을 공유하는 SNS ‘구절 놀이’가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키는지
‘어쩌다 독자’는 세상에 소문난 책, 또는 이름 높은 저자의 책 중에서 마음을 끄는 책을 충동적으로 고른다.
내용이 좋거나 자기한테 적합해서 읽지 않고, 읽고 나서 좋아할 이유를 찾거나 인생 밑줄을 끄집어낸다.
베스트셀러는 사회적 가치가 이미 검증되었기에 선택에 따른 부담이 별로 없다.
독서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모두의 관심사에 참여하는 것인데, 베스트셀러 읽기는 구절 공유, 책 수다 등 사회적 대화에 끼어들 때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는 단순히 ‘잘 팔린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유행하는 것,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것에 이유 없는 거부감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
예를 들어 내 주위에는 자신은 ‘천만 관객 영화’ 따위는 절대 보지 않는다는 데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책에도 일정한 ‘수준’을 정해두고 특정 수준에 미달하면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노는 것’에 대한 반감 또한 이와 같은 베스트셀러 경시 풍조를 한몫 거들고 있다.
비단 한국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에는 즐기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하다못해 재충전을 위해 주어진 휴가마저도 얼마나 ‘알차게’ ‘바쁘게’ 보냈는지가 중요하니 말이다.
책이란 기본적으로 종이에 활자를 기입하여 누군가의 생각을 담아낸 틀에 불과하다. 어려운 것도, 엄숙한 것도,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책을 읽는다고 호되게 야단을 친다. 이는 미슐랭 투 스타 음식점에 가지 않고 동네 분식집에서 떡볶이 따위나 먹는다며 호통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음식도 먹어보고 지나치게 짜다거나, 달다거나, 싱겁다거나, 조미료가 많다는 등의 지적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누구든 원하는 책을 원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책이 무슨 책인지는 알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많이 팔렸다는 기준으로 고른 책들이었으나, 한 권 한 권 읽다보니 일련의 공통점이 보였다.
일단은 ‘쉽다’는 점, 주로 특정 장르에 치우쳐 있다는 점. 어렵고 현학적인 학술서보다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읽기 편한 에세이나 대중소설이 많았다.
메시지도 대개는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공통점에 따라 해당 책들을 하나의 챕터로 묶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고 진심 어린 위로를 느꼈다면 그 자체는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떤 책은 그야말로 우연히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시대를 잘 타고 나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대중성과 완성도를 고루 갖춘 특이한 케이스도 있다.
그렇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성공하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똑똑해지고 싶어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서 등등. 무엇이든 답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욕구의 근원에는 ‘달라지고 싶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보다 더 나아진 나. 더 성실하고, 더 열정적이고, 더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나. 혹은 더 신중하고, 더 통찰력 있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나. 어찌 됐든 지금과는 다른 나, 달라진 자신. 이러한 욕구를 지니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더 나아지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나?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근본부터 자기계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면, 무엇이 납득 가능하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지, 책에서 어떤 부분은 유용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를 판가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아들러는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로 극복 가능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을 정도로 의지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학자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떻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37쪽)
인간은 언제든, 어떤 환경에 있든 변할 수 있어. 자네가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네.(62쪽)
타인의 마음은 타인의 것이므로 내가 어쩔 수 없다,
오늘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타인은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를 위해 살라는 것 또한 꽤나 합당한 조언으로 느껴진다.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와 같은 이야기가 막연한 희망과 헛된 용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세계와 구조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이 ‘신경을 쓰지 말라’는 조언은 사실 대단히 실행하기 어려운 요구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자야 돼, 자야 돼, 되뇔수록 정신이 점점 말똥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수록 오히려 신경을 쓰게 된다.
부코스키가 성공한 진짜 이유는 자신의 실패에 초연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 따위에는 신경을 끄고 살았다. 유명해진 뒤에도 시 낭송회에 만취한 채로 나타나 독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공공장소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고 치근덕거렸다. 유명해지고 성공했다고 해서 부코스키가 훌륭한 인간이 되지는 않았다. 그가 훌륭한 인간이 됐기 때문에 유명해지고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19쪽)
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가 이런 식이다. 대부분 출처조차 없으며 주장하는 바와 그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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