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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드라마를 골똘히 볼 때, 누가 죽거나 헤어지면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스위치를 꺼버리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기계만 하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드라마를 볼 때 눈물이 나는 것은 그 영상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사로잡힌 상태’라고 해요. 마음이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꿈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래야 한 번은 실수했어도 두 번 되풀이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도 만약에 자꾸 생각이 떠오르면 그건 질문자의 편집증에서 생긴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는데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요. 가끔 욱하고 올라오는 슬픈 감정은 당연한 거예요.

가끔 눈물 좀 흘리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이는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순간순간 죽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본래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

나는 실제로 괜찮은 사람이니까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되어야죠. 그런데 왜 도움을 받는 비굴한 존재가 되려고 해요?

남을 좀 사랑해 주고 도와주면 될 텐데, 사랑받고 싶고 도움받고 싶어 하잖아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불쌍하고 부족하다는 뜻이에요.

내가 남의 도움을 구하면 내 존재가 불쌍한 존재로 떨어지게 됩니다.

나는 누구를 만나든 도움을 주는 괜찮은 존재니까 보시도 하고 봉사도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가 베푸는 존재임을 자각해 나갑니다.

행위를 먼저 하다가 자각이 일어나기도 하고, 자각이 일어나서 행위로 이어지기도 해요.

수행으로 절을 할 때도 그래요. 일단 억지로라도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다 보면 겸손해지고, 겸손해지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져서 절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앞뒤가 있다기보다는 같이 맞물려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리더십은 자기가 속한 그룹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생깁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평가를 듣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리더가 돼요. 이처럼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든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게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 말이 맞느냐’가 아니라 ‘믿음이 서로 다르구나’ 하고 보면 아무런 갈등이 안 생깁니다.

환상에만 나를 맡기면 파도에 떠밀려 다니는 나룻배처럼 살게 됩니다.

상대를 바꾸려 들지도 말고, 억지로 상대에게 맞추려 들지도 마세요. 관점을 바꾸고 나와 남에 대한 기대를 모두 내려놓는 순간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이 행복해집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하죠. 우리에게는 ‘망각’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가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것은 트라우마, 마음의 상처가 돼서 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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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고영 지음, 허안나 그림 / 카시오페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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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센터에서 일하다보니
몸에 관심이 생겼다

덩달아 운동하는 사람에게도 관심이 생겨 읽게 되었고

헬스는 내 몸에 안 맞아서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글을 썼는지 형식을 주로 보았다
기자 생활을 해서인지 글을 잘 쓴다

나에게 맞는 운동은 필라테스라
필라테스를 하고 쓴 에세이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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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엔 끝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평생 배워도 남을 만큼 배움에는 즐거움이 있다는 뜻도 된다.

내가 항상 불안하고 불완전해 보여도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었다.

1년차엔 1년차 나름의, 2년차엔 2년차 나름의 배움이 있다. 운동 3년차, 나는 여전히 날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뭐든지 잘하면 더 재밌기 때문이다. 즐기려면 어느 정도는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먼저 작은 근육에 감각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마다 내 몸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근육들을 일깨우는 느낌이었다.

웨이트를 할 때도 미세한 근육들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곤 하지만, 마른 심지에 불을 켜듯 작은 근육에 천천히 숨을 불어넣는 요가의 방식은 확실히 웨이트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부상 가능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건 프로든 아마추어든 마찬가지다. 빈도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곧잘 눈을 감는다. 하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무게를 다룰 때 눈을 감아버리면 몸의 균형,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거울 속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다.

‘열심히’란 단어에 씌워진 환상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열심히’란 단어의 위험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노력엔 죄가 없다. 다만 ‘열심히’가 만들어내는 자기도취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기반성과 객관화가 더해진 ‘열심히’와 눈을 감은 자기도취의 ‘열심히’는 엄연히 다르다.

운동하면서 어느 정도 다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통은 잘못된 자세나 부하를 알리는 신호다

‘개썅마이웨이’는 타고난 배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배워가고 숙달돼 갈수록 실력에 따른 자신감이 붙고, 그게 곧 배짱이 된다. 그것을 위해선 일단 한발,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운동에 있어서 목표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의 균형, 기준 등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삶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도구로 삼으려는 이들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극기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절대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수요일 아침 10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을 당신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 가능한 빠른 속도로 작업하라. 작업 과정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_ 도러시아 브랜디(Dorothea Brande),
《작가 수업(Becoming a writer)(1981)》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점(?)은 뭘 하든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정통한 분야에 대해 충분한 여유를 갖고 기사를 쓴다고 해서 항상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단기간에 울면서 ‘지르듯’ 기사를 써도 가끔 두고두고 보고 싶은 기사가 나온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하면 될 수도 있다’가 좌우명이 되었다.

일단 신청이라도 해두면 울면서라도 공부하겠지 뭐.

예전엔 ‘헬스 1년 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헬스 하다가 자격증까지 딴 사람’이 되었다.

사실 트레이너를 하지 않을 내겐 별 쓸모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지만 불과 종이 하나로 마음가짐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격증 취득은 분명히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본격적인 취미를 갖는 것. 그것은 내가 선 자리가 아닌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수동적인 취미는 나를 그렇게까지 행복하게 하진 못했다.

삶에 가벼움과 유머를 곁들이기 위해선 얼마간의 떨어짐이 필요하다

그 재료가 무엇이 되어도 좋다. 운동이든 뜨개질이든 명상이든 목공이든.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하여. 앞으론 인생 취미를 찾는 직장인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길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에세이집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아침의 맨손 체조다."

위대한 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거창하게 갈 것 없다. 일단 둥근 해가 떴으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어야 한다.

하루하루 일상의 작은 조각이 모여 큰 그림이 되어간다.

더 나은 수면과 식사, 움직임이 내 삶의 조각들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몸을 돌보는 기술이다. 차가 굴러가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최소의 기름칠을 해주어야 하듯 말이다

집에서 폼롤러로 하는 스트레칭 ‘운동’, 천변 걷기 ‘운동’, 108배 ‘운동’, 이것들도 굉장히 훌륭한 운동이다.

내게 운동은 자기계발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든 재료로 만드는 요리나 진심을 기울인 방 청소 같다. 일상에 기름칠을 하고 가꾸는 일이다.

초보 때는 운동 일지를 적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따로 노트를 만들지 않고 남는 다이어리에 적어도 무방합니다.

월별 달력엔 출석 날짜를 체크하고 주~일별 스케줄 표엔 그날 한 동작을 간단히 정리합니다

사람의 습관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날그날 간단하게라도 일지를 적으면 본인의 경향성이 보입니다.

꾸준히 적으면 성장이 보이는 부분도 소소한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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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최악이라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때 일에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옛날의 저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는 마음 버릇의 색안경 때문에 불운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똑같이 색안경을 쓰고 있지만 행복합니다. 지금 색안경에는 나는 행복하다고 믿는 마음 버릇이 칠해져 있으니까요.

현실은 그저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 일어난 사실일 뿐입니다.

그런 일에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저마다의 색안경, 즉 ‘마음 버릇’의 작용입니다.

현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은 행운이라고, 혹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낀 ‘마음 버릇’이라는 색안경이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겁니다.

만약 ‘운’이 나쁘다는 생각에 그런 색안경을 고집스럽게 끼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벗고 ‘운’이 좋은 색안경으로 바꾸어 낄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운’이 좋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사람이 전제로 삼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렇게 되고 싶진 않아’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 ‘저렇게 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모방하면 됩니다.

‘운’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과 친해지고 되도록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행동, 말버릇, 사고방식이 전염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운 좋은 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점점 잘못 판단하는 일이 적어지고, 거기서부터 ‘운’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사방팔방 다 막힐 때까지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한두 번 찔러보고는 ‘어쩐지 안 될 것 같다.’라며 포기하고 맙니다.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운’을 망가뜨립니다. 체념해버리기 때문에 ‘운’이 찾아올 길이 없습니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멈추어 서기보다 돌파할 길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도전은 헛되지 않습니다. 도전한 수만큼 경험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운의 정체는 방향성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세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보일 테니까요."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다 틀렸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어차피 안 된다’고 삐딱한 고집을 부리지도 마세요.

이것이 막다른 골목에서 ‘운’을 열 수 있는 3원칙입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불운’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례가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그저 한탄하거나 두려워하며 포기할 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지을 때, 움츠러들거나 자포자기해서 비뚤어질 때, ‘불운’이 파고듭니다.

마치 빈 집에 도둑이 들 듯 마음의 빈틈을 타고 불운이 찾아옵니다.

마치 빈 집에 도둑이 들 듯 마음의 빈틈을 타고 불운이 찾아옵니다. 불운을 부르는 습관적인 마음가짐, 곧 마음 버릇을 고쳐먹으면 ‘불운’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빈틈이 생긴 까닭은 어차피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태도로 자기 본심을 얼버무려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본심을 꾹 숨기고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말버릇), 얼버무리거나(=몸 버릇), 참으며(=마음 버릇) 살아왔기 때문에 포기하고, 단정 짓고 비뚤어지는 버릇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자기가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속 빈틈을 파고든 불운이라는 도둑을 쫓아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자기 마음과 충실히 마주하여 진짜 속마음을 탐색해 보세요.

나를 살리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면 차라리 정반대의 ‘마음 버릇’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내게 나쁜 일 따윈 절대로 안 생겨’, ‘잔업 양이 많긴 하지만 제대로 하면 콘서트는 보러 갈 수 있을 거야’, ‘약속 시간에 안 늦으면 좋겠네. 설령 늦더라도 누구 하난 감싸 주겠지’라고.

철저하게 자기 좋을 대로 ‘마음 버릇’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마음 버릇’은 기분에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으므로 기분전환을 잘하는 것이 ‘마음 버릇’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감이 깜짝 놀랄 만한 쾌적한 체험’은 기분전환에 즉각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물건을 곁에 둔다거나 장엄한 풍경을 보거나 근사한 음악을 듣거나 정성 들인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사지나 피부 관리 등 몸이 기뻐하는 쾌적한 경험을 하면 기분이 전환되면서 시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를 ‘진시’, 즉 ‘용의 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간대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집 안의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였습니다.

마치 잠들어 있는 집의 눈을 깨우고 행운의 스위치를 켜듯이 말입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활기를 북돋아 주었을 겁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기분이 바뀌면 ‘운’의 흐름도 바뀝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돈을 저축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충고다.

모든 돈을 저축하지는 마라.

자신에게 투자하라.

-헨리포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의 본질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내건 받건 돈을 주고받을 때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교환해야 합니다.

나와 상대방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돈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돈에 대한 마음도 달라질 것입니다

돈을 내거나 받을 때는 일단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할 것. 물론 실제로 입 밖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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