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건 영화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베를린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와 책방 문을 열 때도, 영화는 내게 인생에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그 길엔 아스팔트 대신 자갈밭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나처럼 평범하고 지질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 덕분이었다.

어릴 적 여우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포기를 비웃으라고 가르치느라 정작 중요한 삶의 지혜—‘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를 생략해 버렸다.

온 힘을 다해 뛰어도 여전히 나밖에 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하고 고유한 이야기를 영화 같다고 부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계속 가기로 했으면 그 결심을 따라야지. 두 발로 딱 버티고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정신 차려. 니가 왜 안 되는 줄 알아? 이거 목숨 걸고 해도 제자리도 지키기 힘들어. 근데 넌 맨날 장난처럼 하잖아. 너처럼 하면 아무것도 안 돼.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너만 빼고."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끈덕지게 물었다. 결국 어딘가로 향하는 게 인생이라면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이고, 또 어디로 가고 싶은지.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떤 길로 걸어가든 내가 예상했던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내비게이션은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글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가 가장 입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내가 무얼 추구하는지, 무얼 할 때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경험 후 얻은 것과 잃은 것을 기록하면 삶의 태도에 단서가 된다는 것도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게 쓰는 일이란, 돈이 되진 않지만 거친 물살에도 무너지지 않고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차곡차곡 둑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언젠가 내 마음껏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세상에 내놓자. 언젠가 이해해 줄 거다, 언젠가 좋은 편집자를 만날 수 있을 거다, 언젠가 인정받을 수 있을 거다, 언젠가, 언젠가…… 언젠가는.’

"작품을 만든다는 건 자신의 마음속을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야. 아무리 추악하고 한심해도 마주 봐야만 한다네."

"직장 다니는 동창들에게 항상 잘난 듯이 이렇게 말했어요. ‘꿈을 좇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만화가를 목표로 하는 동안은 특별하게 있을 수 있었어요. 특별한 사람으로 있고 싶었어요."

현재를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꿈을 좇으며 사는 예술가로서의 우월감과 자부심에 도취되어 있던 누마타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내 이야기의 결말은 조금 다르다.

놓지 못한 꿈을 끌어안은 채 자신의 작은 재능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 뚜렷한 목표 없이 벌인 일을 수습하며 사는 사람이 대다수일 테니까. .

내가 나를 마주한 채 써내려간 글이 지루하고 시시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다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

동시에 작은 변화가 있다면, 내게도 목표가 생겼다.

‘언젠가’가 아닌 오늘, 어제보다 더 나은 글을 쓰는 것. 그래서 이왕이면 ‘출판사와 작가 모두가 행복해지는 중쇄’를 찍는 것

"실수를 하게 될까봐 두려워요."

"네가 실수를 만드는 게 아니야. 실수가 널 만들지. 실수는 널 더 똑똑하게 하고 더 강하게 하고 더 자립적으로 만들어."

"난 당신과 달라요, 해리엇. 당신처럼 담력이 세지 못하다고요."

"실패해. 어마어마하게 실패해. 실패해야 배울 수 있어. 실패해야 사는 거야. 네 인생은 시작도 안 했어."

실패가 두려워 에세이 작가라는 꿈이 있음에도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살아온 앤에게 해리엇은 말한다. 크게 자빠지라고. 기꺼이 실패하라고.

스무 살이 되도록 나를 위한 시도나 실패를 해본 적이 없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님한테 물어 봐야 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나에게 실패란,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었다.

문틈 사이로 아빠의 취기 어린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 되곤 했으므로, 아빠가 바라지 않는 일은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인생에서 맞닥뜨릴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 누군가의 허락은 불필요하다는 것과 조금 무모해져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

그러니 시도하고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다.

뭘 해도 스파이라고 생각하니 두근거린다. 가능한 눈에 띄지 않게 평범하게 사는 거다.’

느려터진 거북이도 헤엄칠 때는 의외로 빠른 것처럼, 나에게도 평범하지 않은 능력이 하나쯤은 있다.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엑스트라처럼 느껴질 때, 나의 평범함이 지겨울 때, 보통명사로서의 삶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지금 평범하게 사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나는 스파이 영화의 주인공이다’라고 주문을 왼다.

"언니, 나는 목포에서 지내면서 나 자신이 더 좋아졌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존재 자체로 쓸모 있는 삶. 우리는 정말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을까.

우리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서, 세상을 듣기 위해서 태어났어.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는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야.

냉침 밀크티 같은 사람이고 싶다. 사골처럼 고온에서 펄펄 끓여내진 않지만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우러나는 사람. 적은 말수와 차분한 어조로도 깊은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고 싶다.

행복한 감정으로만 가득하던 어린 시절이, 이제는 떠올리기만 해도 슬픈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슬픔이 때문에 전만큼 잘 웃지도, 장난을 치지도 않는 라일리를 보고 있자니 기쁨이는 궁금해진다. 슬픔은 꼭 필요한 걸까? 라일리를 위해서라도 슬픈 감정은 없는 편이 좋지 않을까?

우연히 깨닫게 된다. 행복한 기억 앞에는 언제나 슬픈 기억이 존재했다는 걸.

말하자면 슬픔은 공감의 감정이다.

우리는 기쁜 순간에도 함께하지만 슬픔을 공유하면서 깊어진다.

때론 나와 같은 슬픔을 겪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조금 더 견딜 만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위로에 서툰 건, 어쩌면 내가 슬픔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민이나 슬픔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슬픔을 공유하면 기분은 얼마간 해소될 수 있지만 상황 자체가 변하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히 ‘요즘 것들’이나 ‘꼰대’ 같은 말은 사회계층, 성별, 세대 등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 의해 확산되어 한 집단에 속하는 모든 개인들을 하나로 규정지어버리는 전형적인 예이다.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어떤 대상을 사회나 사람들이 정해준 카테고리에 넣고 간편하게 정의 내리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른이 될수록 그런 용기가 ‘바보 같음’으로, 내가 잘하는 것이 ‘잘난 척’으로, 솔직한 감정이 ‘주책없음’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졌다.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보다 자꾸만 앞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앞에서 잘 버텨주어야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살아가면서 ‘나’를 가장 많이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일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지속적으로 못살게 구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본인을 몰아세우고, 다 끝난 일을 붙들고 끝까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도 다름 아닌 ‘나’이다.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때조차 끊임없이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는다.

그 순간 그것은 대화일까, 대화가 아닐까. 연애일까, 짐작일까. 관계일까, 가짜 우정의 위안일까.

우리는 그 불빛이 나와 타인의 문을 환하게 열어주는 빛인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깜빡이는 경고등인지를 알아야 한다.

셰리 터클은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민음사, 2018)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공감을 떠나 ‘공감하는 느낌’으로 이동한 것은 아닐까?
우정을 떠나 ‘우정의 느낌으로’ 이동한 것은 아닐까?

상대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섣불리 짐작하고 판단하고 있다면, 내 마음도 다른 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짐작되고 판단되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부 사이에 생긴 문제를 해결할 힘이 본인에게 있으니, 그것을 굳이 어린 자식에게 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험담이 무기력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대개는 ‘현실적으로 내가 뭔가를 할 수 없을 때’, ‘문제를 조율할 방법이나 에너지가 없을 때’ 또는 ‘정면 승부를 하면 오히려 내게 불이익이 올 때’ 뒷담화를 하게 된다.

반대로 내가 해결할 수 있고 주도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뒷담화를 별로 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 시간을 굳이 험담하는 데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 험담의 대상자, 듣는 자, 그리고 말하는 사람까지’라는 탈무드의 유명한 교훈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험담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나’가 너무 많으면 소통이 어려워지고,

‘우리’가 너무 많으면 인내와 희생이 뒤따른다.

똑똑한 ‘나’가 많이 모이면 입은 많지만 귀는 줄어들고,

‘나’보다 ‘우리’에만 매달리면 귀는 열리지만 마음속에 말 못 한 억울함이 쌓인다.

인생에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

이것이 불변이라면 ‘우리’가 필요한 순간에 ‘나’를 잠시 미뤄둘 줄도 알아야 한다.

부단히 ‘나’를 지키며 살아가되, ‘우리’가 필요한 순간을 판단할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기준은 다른 사람이 정해줄 수 없다.

‘우리가 필요한 순간’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 순간에 ‘나’를 내려놓으면 잠시 고통스럽고 손해를 볼지언정, 자신의 판단하에 ‘우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적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이 나를 지키고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다

어떤 것을 잘 모르는 진짜 나는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고, 아는 척하는 가짜 내가 앞서게 된다.

그러면 자연히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나 존중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모르는 나’가 ‘아는 나’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 있겠는가.

진짜 나를 찾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못하는 것은 잘 못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 말을 하면 희한하게 자존감이 올라간다.

적어도 아는 척할 때만큼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늘 만나는 모든 낯선 것들에게 좀 뻔뻔하게 말해본다.
"나 그거 잘 몰라."

하차하고 승차하기를 반복할 수 있는 힘, 하차한 뒤에 다시 승차할 기회를 기다리는 힘, 승차했어도 언제든지 하차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에 가까이 가는 힘이었다. 그게 그녀만의 ‘멋짐’이었다.

어떤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도 온다. 때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어디쯤에서 멈춰야 한다.

들어가려 했다가 돌아서야 할 때도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실패’, ‘끈기 부족’, ‘후회’ 같은 부정적인 말을 갖다 붙인다. 그래서 종종 그만해야 할 때 용기를 내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인내심 강하고 끈기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끝까지 자신을 괴롭힌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열차에 타고 있다. 그런데 하차가 두려워 거기에서 한 번도 내리지 않으면 계속 같은 풍경만 보게 된다. 생각만 해도 지루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풍경을 자기 인생이나 색깔로 굳게 믿으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다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가 오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경험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김숙처럼 가볍게 말하는 거다.
"저 이만 하차할게요."
다시 새로운 열차에 승차해서 새로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는 방법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거창한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자신이 매일 하는 일에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이유를 분석한 다음에는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였는가?’를 생각해본다.

말 그대로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문제였다면 빠르게 잊어버리는 편이 좋다.

의외로 어쩔 수 없었던 일에도 자책감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피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며 너무 쉽게 합리화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피드백이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능동적 질문이다

원래 100%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는 어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빠르게 방향과 전략을 수정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개인적인 목표에서뿐 아니라 앞으로 사회는 더 빠르게 변화할 것이므로,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전략을 수정할 줄 아는 사람이 앞서갈 것이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하면 깔끔하게 반성하고, 자학하는 대신 행동을 바꾸는 패턴을 몸에 익혀보자.

무슨 준비가 어떻게 더 필요한가? 그냥 있는 대로 되는 대로 시작하고 점점 발전시키면 뭐든 어떻게든 된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어찌어찌 시작하더라도, 영상 3~4개 정도 올린 후에 지쳐서 그만두게 된다.

영상 하나에 온 영혼을 갈아 넣었으니, 다음 영상을 찍을 땐 또 얼마나 기합이 들어가겠는가? 그렇게 처음부터 힘을 주면 금방 녹초가 된다

모두가 ‘완벽하게 잘 못하는 것’에 대해서 좀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사회 분위기 역시 그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비행기를 운전하거나, 생명을 치료하거나, 범죄를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실수가 용납되는 일이다.

특히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루틴 관리, 사이드 프로젝트, 시간 관리 등은 너무나도 실수가 용납되는 일이다.

남이 보기에 하찮은 수준의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이룬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건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이왕 시작한 거, 꾸준히 하고 싶다’는 욕심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

오래 할 일은 당장의 퀄리티보다,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과제를 제시하자면, "그렇게 하느니~"로 시작하는 말을 앞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남이 보기에 하찮은 수준의 일을 묵묵히 꾸준히 해온 사람들은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과를 이룬다

시험은 명확한 끝이 있지만 우리 인생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험 치는 생활에서 벗어나고도 마치 그때처럼 의지를 불태워야 알찬 삶이라 착각한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약한 의지를 탓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실천력이 부족한 것이다.

실천은 강한 의지로 해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어제 했던 일,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플래너를 열어 ‘투 두 리스트’를 보고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강한 의지를 발동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습관에 의한 실천은 그렇지 않다. 의지와는 반대로 의식을 덜 하면 덜 할수록 좋다

"목표가 에베레스트 등정 아니죠? 올림픽 금메달 준비하는 거 아니잖아요. 실천은 의지가 아니라 습관으로 하는 거예요."

나는 의식적으로 의지력이라는 말 대신 실천력이라는 말을 쓴다.

심리적인 면에서도 의지라는 말을 자주 쓰는 건 좋지 않다.

사소한 일에도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왠지 그 일은 힘들고, 하기 싫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은 그냥 별거 아닌 마음으로 하자.

모든 일에 힘을 잔뜩 주는 건 쓸데없이 자신을 너무 고되게 만든다.

행동하기 전에, 그리고 행동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자.

나는 실천하기 전에 생각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

실천하기 전에 드는 생각들은 대부분 나쁜 쪽으로 흘러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기 싫다, 아니, 해야지, 근데 진짜 하기 싫다, 그래도 해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싸우다 보면 하기도 전에 지친다.

감정이 실천을 방해할 때도 많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은 실천하기 전에 주절주절 생각만 길어진다.

이 생각들은 합리적인 척하는 감정의 스파이다.

다 그만두고 싶을 때 필요한 3가지 질문

포기할까? 말까? 답을 정해드립니다

포기도 일종의 결정이다.

잘 실행하는 사람이 포기도 깔끔하게 잘 한다.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포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린다. 포기는 곧 실패, 포기하는 사람은 패배자로 느껴지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미 지나간 과거의 손해를 잊지 못하고
아까워하면서 자꾸 뒤돌아본다면,
그렇게 과거의 망령에 집착한다면,
우리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찰 것이다

생각하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생각은 생각일 뿐 실천이 아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허상이고 망상이다.

실천이 뒤따르는 생각만이 가치 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 주저하지 말고 행동하라.

행동은 결과를 가져온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 걸음 성장한다.

그러므로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당장 실천하라.

생각을 머릿속에만 저장하지 말고
세상으로 꺼내 빛을 발하게 하라.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려면

좀 더 자주 푸른 하늘 아래에 서보자.

좀 더 자주 나무 밑에서 쉬며
좀 더 자주 혼자가 되어보자.

좀 더 많은 시간을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비밀을 푸는 데 써보자.

삶의 결을 이전과 다르게 채우다 보면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뤄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대중은 그에게 동경의 눈빛과 존경심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을 시샘하고 질투하며 모략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이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았지만,
반대편 사람들을 만나면 부정적 기운에 휩싸여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는 생각했다.
너무 큰 성공과 명성의 맛은 맵고 짜고 쓰다고.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한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성공의 벽돌을 쌓고 있다.

그에게는 빨리 성공하라고 채근하는 이도,
꼭 성공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이도 없다.

그를 시샘하는 이도 없으며 그를 질투해서 따돌리는 이도 없다.

오히려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는 생각했다.
미완성의 성공이 가져다주는 평판과 명성이 가장 감미롭고 따뜻하다고

늘 같은 길을 걸으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나무와 꽃, 길 위의 돌멩이도 늘 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로 옆에 난 다른 길로 가보면
나무도 꽃도 새로워 보인다.

늘 같은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으면 발전이 가로막힌다.

우리는 상호작용하는 대인관계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고
상대의 인격과 인품을 배워 자신도 고차원의 인간이 될 기회를 갖는다.

거꾸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고정된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
뒤집기, 분해하고 재구성하기 등의 새로운 생각법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유연해진 사고체계와 창의적인 뇌 활동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고정관념과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성장을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의 영향력으로 삶이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

이 가능성은 순수함과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사랑하는 능력을 가질수록
더 커질 것이다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이는 격렬한 바람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부드러운 미소와 유연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자신을 활짝 열어두는 사람이다.

이것은 꼭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것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완벽한 정답이다, 라고

견고한 성벽처럼 세상을 대하는 마음과 자세를 버리고
자유롭게 살면서 매사에 여유와 유머와 웃음으로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이다.

무엇인가를 소망하면서
금세 불안해해서는 안 된다.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확신을 가져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오만할 정도의 확신 말이다.

그런 다음,
그 확신이 열매를 맺어 추수의 날에 활짝 웃을 수 있도록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지를 쳐주는 일들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런다면 소망은 이윽고 현실이 될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계속할 수 있는 일,
스스로 성장하면서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자신다운 일을 말한다.

그런 일을 찾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야말로 정말 자신에게 맞는 것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제대로 된 직업이다

분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게 무슨 소용일까.

과연 그게 나에게 득이 되는 일일까.
화를 냈다고 해서 나의 마음이 편해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