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꿈이라는 게 쉽게 불타올랐다가 곧잘 식어버리는 속성이라면, 내게 책방 주인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은은하게 지속되는 모닥불 같은 꿈이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모닥불 앞에서 불멍을 때리듯, 내 취향의 책이 벽면을 가득 채운 공간에서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입시 걱정이나 취업 걱정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친구 집에 기생하면서 취향을 고수하느니 일을 하나 더 늘리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자립할 수 없다면 취향도 지킬 수 없다.

책방은 늘 가난하다. 조금 덜 가난해지기 위해 N개의 일을 시도할 뿐, 두 번의 출퇴근을 반복하면서도 풍요로웠던 적은 하루도 없었다.

어느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남 일 같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 취향을,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책방을 운영하는 나도 자주 낭패감을 맛본다.

하루 종일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다 보면 이러다 책방 문을 닫게 될까 봐, 어렵게 잡은 꿈을 놓쳐 버릴까 봐, 인생 실패자가 될까 봐 두렵다.

꿈을 담보로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닌 내가, 이미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내가 실패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로드리게즈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당연히 실패할 수 있다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아티스트에서 육체노동자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다음 삶을 다시 살아가야 한다고.

뮤지션으로서의 삶은 끝났을지 몰라도 뮤지션이 아닌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한국의 또 다른 슈가맨 양준일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치킨 집 열었다가 문 닫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음반 내고 망할 수 있는 권리 있지 않나요?"

실패가 그저 실패로 끝난 두 명의 슈가맨은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도 망할 수 있는 권리,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실패 이후의 인생에도 기적과 경이가 가득하다고 말이다.

좋아하는 책을 이렇게나 많이 가질 수 있는 게 실패라면, 나는 나의 실패를 조금은 덜 두려워해도 되지 않을까?

한 가지 분야에 빠지면 주구장창 그것만 하는 사람이 있다.

똑같은 시계 영상만 수십 번씩 돌려보고,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면 역사에서부터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까지 분석해내고야 마는, 지겹도록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사람.

꿈이란 눈을 감고 나무가 빼곡한 숲속을 걷는 일이다.

누군가는 나무에 부딪히면서도 앞으로 걸어갈 거고, 누군가는 한 방에 고꾸라져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적은 확률이지만 나무에 한 번도 안 부딪히고 숲을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이미화에게 꿈은 연필로 쓰는 것이다.

언제든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 나는 지울 수 있을 때에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때에만 용기가 생기는 사람이니까.

반면 안다훈에게 꿈은 볼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것일 테다.

시간이 지나면 잉크는 빛바래 지워질 수 있지만 자국은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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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에서 훨씬 괜찮다고 생각했던, 더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위로와 조언은 다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저 한 마디였다

내 입장에서 훨씬 괜찮다고 생각했던, 더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위로와 조언은 다 무용지물이 된 순간이었다.

결국 선택된 것은 저 한 마디였다. 그랬다. 상대의 귀에 들어가 마음까지 가는 길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내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조언을 잘해도(또는 못해도) 그것을 돌멩이나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것은 듣는 사람이다.

친구는 내게 자주 의견을 물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오래 고민한 듯했다.
 
"나한테 해주는 조언은 고마워. 그런데 저번에 그 말은 좀 서운하더라. 네 마음은 알지만."

내 말들은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각자의 길에 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가서 도움이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했다.

내가 들었던 수많은 말들도 아마 그런 식으로 냉탕과 온탕을 오갔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진심을 다해 말했다 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란 어렵다.

상대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친밀하게 밀착할수록 그 사이에 알 수 없는 균열만 생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는 과감히 저버리고, 나의 말을 하는 것이다.

내 말이 상대에게 가서 잘되고 못되는 것은 다 그 말의 운명이다.

내게는 그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힘이 없다.

정직하고 진실하며 다른 의도가 없다면, 내 말은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다

우리는 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검열하면서 말할까?

매 순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어나 가장 먼저 마주하는 타인은 ‘부모’이다.

"그런 말 하면 못써."

한 사람의 어린 시절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 지배된다.

성인이 되어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부모가 심어준 검열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이 용인하는 말만 하다 보면, 솔직한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대로 입을 떼지 못한다

"내 안에 울지 않은 눈물이 너무 많아. 그 감정들을 꺼내놓으면 엄청난 홍수가 일어날 거야. 내 안의 분노를 꺼내놓으면 엄청난 산불이 일어날 거야."

학교와 선생님은 나의 사소한 말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직장 상사 중에는 눈치 보고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후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종교는, 아니 신은 인간을 검열할 리가 없다.

내 생각과 감정을 숨기고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울퉁불퉁해진 상태라면 자신을 검열하는 필터를 조금 느슨히 하는 것이 좋겠다

인간이 태어나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삶은 ‘생로병사’ 네 글자가 전부라고 한다.

그런데 저 생로병사의 사이사이를 메우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그것을 풀어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자, 성숙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다 보니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는 노하우가 참으로 다양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몇 가지쯤 부족한 면이 있는데, 그것에만 집중하거나 선을 긋다 보면 내 곁에 남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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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신념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목표는 주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나아지고 있다는 개념에는 어떤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삶에서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인간은 나약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이자, 그 사실을 잘 아는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재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 줄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즉 심원한 가치 체계에 내재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희망을 잃고 절망적인 허무주의의 유혹에 빠져들고 만다.

우리가 올바르게 산다면, 부담스러운 자의식의 무게를 견뎌 낼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르게 산다면,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할 것이다.

원망으로 시작해서 시샘과 복수심과 파괴적 욕망을 차례로 자극하는 피해 의식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올바르게 산다면, 우리가 불완전하고 무지한 존재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전체주의적 이념에 의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올바르게 산다면, 지옥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바다 밑바닥에 사는 바닷가재 두 마리가 같은 시각에 같은 영역을 차지하고 같은 곳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 바닷가재 수백 마리가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고 좁은 곳에서 얼마 안 되는 부스러기를 두고 다퉈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굴뚝새와 바닷가재에게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다른 많은 동물처럼 지위와 영역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영역권과 사회적 지위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영역은 간혹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암, 당뇨, 심장 질환 같은 비전염성 질병에도 취약하다. 부자는 가벼운 감기로 끝나지만, 빈곤층 노동자는 폐렴으로 죽는다

마크 트웨인 말처럼 "우리가 뭘 몰라서 곤경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알고 있다면 곤경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착각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것"이다.

자연은 선택하는 행위자이지만 정적인 행위자는 아니다.

자연은 매번 다른 식으로 행동한다.

연주곡의 악보처럼 변화무쌍하다.

어쩌면 이 때문에 음악이 자연을 모방한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종에 유리한 환경이 바뀌면, 원래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던 특성도 달라진다.

따라서 자연 선택설은 생명체들이 자연이 설정한 특정한 목표에 자신을 정밀하게 맞추어 간다는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생명체들이 자연과 함께 춤을 춘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세로토닌 수치가 낮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는 뜻이고, 스트레스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뜻이다

때때로 뇌의 계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수면과 식사가 불규칙할 때 계산 기능이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상황을 만나면 계산기가 혼란에 빠진다.

몸은 무수히 많은 부분이 연결되어 있어서 완벽하게 준비된 오케스트라처럼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모든 부분이 각자의 역할을 제때 제대로 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과 혼란이 발생한다.

규칙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적인 행위는 자동화되어야 한다.

안정되고 신뢰할 만한 습관으로 자리 잡혀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일상적인 행위에서 복잡성이 줄어들어 단순해지고 예측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현상은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식사와 수면을 일정한 시간에 하는 아이는 즐겁고 신나게 행동하지만, 수면과 식사 시간이 들쑥날쑥한 아이는 불평하고 짜증 내는 경우가 잦다.

질서 속에도 혼돈이 있고, 혼돈 속에도 혼돈이 있다.

완벽해 보이는 질서 안에도 혼돈은 있다.

가장 강력한 질서는 가장 변하지 않는 질서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나무가 보이지 않고, 나무를 보고 있으면 숲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실재하지만 전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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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댁들 같은 사람들이 뭐가 겁나 도망가요? 파리에 뭐가 있는데요?"

"다른 삶이요. 도망일 수도 있겠네요.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으로부터의."

당신같이 멋진 사람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억지로 하며 이런 곳에 사는 거, 이게 비현실적인 일이야. 나도 이런 생활 싫어.

누군가 파리에서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어디든 발붙이고 사는 건 비슷하다고 이야기해 줬다면, 현실 도피용으로 떠날 경우 만날 수 있는 건 또 다른 현실일 뿐이라고 말해 줬다면 에이프릴은 덜 비참했을까.

베를린에서 돌아온 나는 미약하나마 지면을 넓혀나가며 글로 밥 벌어먹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이 일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전과 확실하게 달라진 점은 더 이상 현실에서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행복 같은 거, 여기에도 없다면 거기에도 없다’는 비관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어디에서든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가 반복될 뿐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떠나든 떠나지 않든, 어디서든 단단한 마음으로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

어쩌면 나는 이 메시지를 얻기 위해 베를린에 다녀왔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매일 밤 일기를 공유하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있다.

발신인과 수신인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아도 되고, SNS 바깥쪽에 존재하는 나의 별 볼일 없는 오늘을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이곳에서 나는 대체로 멍청하고 자주 흔들리며 할 일을 미루다 결국 후회하고 마는, 보통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이 익명의 온라인 일기장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절대 답장하지 말 것. 둘째, 되도록 매일 매일 남길 것.

나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고민과 삶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로 이미 답장을 받은 것 같기 때문이다.

숀이 말한 삶의 정수란, 에베레스트 꼭대기나 달의 표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에, 그러니까 월터처럼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특별하지 않은 날들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든 순간인 것이다

역사 내에 전시 중인 지하철 사진 공모전 당선작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이리도 이른 시간에 역 구석구석을, 그것도 매일 매일 청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내 일상이 이리도 무탈하고 안온하게 흘러가는 건, 삶의 모든 곳에 존재해 이제는 당연해져 버린 일들을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게 된 날이기도 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작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전에 실제 세상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줌파 라히리의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소재를 찾아 모험을 떠날 것이 아니라 삶의 한가운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곧 삶의 정수를 쓰고 전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나의 당연한 일상을 지켜주던 사람들을 수시로 떠올리며 일상에서도 유의미함을 찾아낼 줄 아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어쩌면 뒤늦은 다짐을 해본다.

애매한 도움은 불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셀프 인테리어 선배들의 말을 떠올리며 성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왜 나는 매번 그 애가 내민 손을 내버려두었을까. 얼마간 어색함을 감수해야 다시 시작되는 관계도 있다는 걸, 왜 나는 모른 척했을까

그럼에도 이들의 다정한 침범을 기꺼이 허락하는 이유는, 즐겁고 따듯한 기억은 마치 담요처럼 안 좋은 기억을 감싸 안아준다는 걸 책방을 운영하며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폴 마르셸이 부모의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해낸 후에도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처럼, 끔찍한 기억 위에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 가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 입에서 더 자주 발음되어지는 내 이름. 그래서 내 것이지만 완전히 내 것은 아닌 이름.

이따금 소나 닭소리가 전부였던 세상에 내가 있음을 알려주는 건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였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에세이를 쓰는 나도 하루에 수십 번씩 거짓을 지어낸다.

글을 쓰는 일은 나 자신을 꽤 그럴듯한 인간으로 윤색하는 일이기도 해서, 에세이에 등장하는 ‘이미화’는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미화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

때때로 취향은 그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게 만들어버리곤 하니까

어떤 일을 얼마나 어떻게 해왔든 내가 원할 때 그만둘 수 있다는 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고 했다.

통증 앞에서 무력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생생하게 신체 부위를 감각하는 사람이다.

신체는 아픈 틈을 타 발언권을 얻는다. 골반은 시도 때도 없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골반이란, 척추를 통해 아래로 내려오는 체중을 다리에 전달하는 중요한 부위라고. 끊임없이 소리쳤다.

익숙해진다는 건 옆 사람의 숨소리를 시계 초침처럼 들으며 잠에 드는 것, 한밤중에 옆자리를 더듬어 안정감을 되찾는 것, 2인분의 밥을 짓는 것, 눈에 띄게 치약이 빨리 줄어드는 것, 이 모든 과정을 의식하지 않고 반복하게 되는 것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New things get old."

 

새것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내가 나의 어린 날들을 잊어버렸다는 건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까지도 지워버린 거라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었을까.

"인생에서 단 하나의 추억을 고르려니 과거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질 않아서 어렵네요."

"떠나려는 거죠? 선택하려는 거죠?"

"처음엔 필사적이었어. 내 안의 행복했던 추억을 찾으려고. 그리고 50년이 지나서야 내가 누군가가 선택한 순간의 일부였다는 걸 알았어. 이건 정말 멋진 일이야."

익숙해질 법도 한데 상처에는 패턴이 없어서 매번 다른 길로 흉이 졌다

어쩌면 ‘만약’이나 ‘차라리’로 대신할 수 없는 현실의 고단함은 친구와의 대화로 얼마간 해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상처는 그 이후에 생겨났다.

오직 먹이고 입히고 재우느라 자식이 받은 상처까지 돌봐줄 여유가 없던 부모를.

그 시절에는 다 그랬다고 생각하는 편이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일까.

내 한마디에도 바로 무너져버리는 늙은 부모에게 이제 와서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왜 한 번도 괜찮은지 물어봐 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으면 나는 좀 괜찮아질까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이미 나는 10년도 더 전에 용서했다는 걸 알아버렸다.

물론 언제고 <벌새>와 같은 영화를 다시 본다면 유년의 기억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나를 찌르고 마음에 박혀 기어코 또 눈물을 뽑아내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부모를 미워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존경이 ‘당신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라면, 사랑은 완벽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 주는 거라서, 단편이 아니라 삶 전체를 끌어안는 거라서, 나는 부모를 존경하는 대신 사랑하는 쪽을 택했다

어릴 적 꿈이라는 게 쉽게 불타올랐다가 곧잘 식어버리는 속성이라면, 내게 책방 주인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은은하게 지속되는 모닥불 같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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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법칙 2 당신 자신을 도와줘야 할 사람처럼 대하라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법칙 4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법칙 5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싶다면 처벌을 망설이거나 피하지 말라

법칙 6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

법칙 7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법칙 9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당신이 꼭 알아야 할 것을 들려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라

법칙 10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

법칙 11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

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어쩌면 내가 제시한 인생의 법칙이 익숙한 것과 낯선 것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 덕분일 수도 있고, 그런 법칙에 함축된 의미에 독자들이 끌린 덕분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냥 사람들이 그런 식의 목록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다.

소련 강제 노동 수용소의 섬뜩한 현실을 치밀하게 기록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인간이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작업반장이 휘두르는 몽둥이로 한 대만 맞아도 사라질 한심한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조상은 세계를 사물들이 배열된 공간이 아니라 드라마 무대로 보았다.

나는 그 책에서 드라마적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혼돈과 질서라고 생각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나는 조심스럽고 특이한 성격이라 사람들이 내 말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주저하게 된다

사람들은 신념을 지키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싸우는 진짜 이유는 믿음과 기대, 욕망 등이 서로 일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기대와 사람들 행동이 일치하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런 것들이 서로 일치해야 모두 생산적이고, 예측할 수 있으며, 평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불확실성 때문에 생기는 고통스러운 감정의 혼돈도 줄어든다.

목표는 주로 긍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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