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얼 발견하셨나요? 자기 인생인데 늘 초점이 맞지 않아요. 이런 상황은 이후의 삶에도 계속되지요. 나 자신으로부터 계속 도망 다니는 거예요.
마음의 주의를 다른 데 돌려, 지금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계속 보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있으면서도 계속 다른 곳을 쳐다보느라 중요한 것을 못 봐요. 이것은 인류의 삶에서 놀라운 비밀 중 하나랍니다!
명상은 나를 만나는 일이지요. 나에게서 도망가지 않고 화내지 않고, 어떻게 나를 만날 수 있을까요?
원래 진짜 중요한 것들은 잘 보이는 곳에 아무렇게나 있잖아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을 보세요."
(몸이 둔해서 느낌을 못 찾아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면) "마음으로 보세요."
(뚫어지라 보고 있으면) "부드럽게 보세요."
남들의 삶, 남들에게 받는 피드백 쪽으로 기울어 마음이 출렁출렁할 때마다 ‘시선이 어디 있나’를 점검해봐야 합니다.
또 악다구니를 쓰고 있을 때 ‘부드럽게 보고 있나’ 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돌려봐야 해요.
이 ‘지켜봄’은 명상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곧은 노도 물 안에서는 굽어져 보인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진심으로 자신을 칭찬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어요. 많이 받아본 적도 없는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칭찬해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등 뭔가를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면 지나치게 애를 써야 해요. 애써야 하는 일은 지치기 쉽죠.
그러니 그저 나를 친절하게 지켜보면 어떨까 합니다.
‘내가 또 이러고 말았어!’ 하고 자기를 호되게 야단치거나 비아냥거리려 할 때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친절한 어른이 하듯이 대해주는 거죠. 맞다 틀리다를 판단하지 않고 말이에요.
실수를 해도 ‘앗!’ 하고 부드럽게 웃어주는 식입니다. 어린아이가 넘어졌을 때 바보같이 왜 넘어졌느냐고 혼내기보다는 괜찮다며 따뜻하게 웃어주는 게 어른이잖아요
그러므로 판단 없이 친절하게 나를 지켜보는 연습을 해나갈 거예요.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람들은 ‘왜 아플까?’ 하고 궁금해합니다. 그 답은 내가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보통 분노에 싸여 있는 사람은 자신이 지금 분노에 빠졌다는 걸 모르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우울함에 갇혀 있다는 걸 몰라요. 술에 취한 사람이 절대 안 취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죠. 자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만약에 자신이 지금 분노에 들끓고 있고, 우울함에 먹혀버렸고, 이미 만취했다는 것을 스스로 안다면 엄청나게 후회할 일은 막을 수 있죠.
나는 나의 선생님이자 최후의 의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요
‘내가 이런 말을 나한테 계속하는구나.’ ‘이런 음식을 내게 먹이는구나.’ ‘이렇게 소리 지르는구나.’ ‘남들한테 웃어주는구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구나.’ ‘기분 나빴던 말은 계속 곱씹는구나.’
마치 타인처럼, 그가 어디 가서 누구와 있고,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밥을 어떻게 먹고, 옷을 어떻게 입고, 청소를 어떻게 하고, 속으로 자꾸 뭐라고 구시렁대는지 보세요.
비난도 칭찬도 하지 않고 지켜봅니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하는 거지?’라며 깊게 들어가서 분석하지 마세요. 단순하게 알아차리는 훈련을 합니다.
생각 정리를 하고 있는 나와 생각 자체의 속성을 보는 일 말이에요.
무엇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할까요? 유난히 잠들지 못하는 밤에 마음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잠들고 싶다 vs. 잠들기 싫다’라는 두 의지가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오늘 하루 무엇이 부족했나요? 무얼 더 했더라면 잠을 허락했을까요? 잠들기 전에는 ‘이걸로 충분했다, 잘했다’라고 해줘야 합니다. 이렇게 속말로 해도 좋지만, 몸의 언어로 해주면 더 좋지요
씻으면서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명상을 하기 좋아요. 물줄기가 몸으로 떨어지면, 그 물줄기가 몸을 타고 내려가는 느낌을 알아차리려고 해보세요
운동을 할 때 그렇듯이 워밍업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만 잘해도 일상에서 자잘한 고민이 흩어져요. 이 훈련만 계속해도 아주 좋습니다.
나이 들수록 엄마들 쪽이 산만함이라면 아빠들 쪽은 완고함을 강화해가는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해봤어요.
나름대로 이유를 추리해봤어요. 엄마라는 역할이 작고 사소한 일에 신경 쓰면서 지시하고 선택하는 일이 많으니까 ‘그건 그거야, 이건 이거고’ 하면서 상황마다 본인이 다 관리하려는 습관이 들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기가 몰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모으기가 어려워요. 자기 페이스를 잃고 소중한 시간에 급하지 않은 피드백을 하게 되죠.
이런 습관은 몸이 기억해요. 주의력이 약하고, 마음이 몸에 잘 붙어 있지 않는 습관이 생겨요.
몸과 마음의 연결이 곧 치유 과정인데, 치유의 반대쪽으로 가는 거예요.
엄마라면 ‘오롯한 자기 시간 갖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일종의 미션이 되어야 해요.
몸에는 건강 상태는 물론이고, 직업이나 성격, 최근의 스트레스 정도가 고스란히 새겨지거든요.
몸은 삶의 내력과 그 사람이 어떤 문화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다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전형성을 극복한다’, ‘삶의 태도를 좋게 한다’, ‘내 몸을 치유한다’는 어쩌면 똑같은 말이 아닐까 합니다. 본래의 자신을 되찾아가는 여정인 거예요.
다른 상황이나 요인으로 물들기 전의 마음자리, 상처가 아문 몸,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일 말이에요. 알아차리지 않으면 손쉽게 전형성 속으로, 산만한 태도 속으로, 완고한 태도 속으로, 불건강한 상태 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말지
문장에 민감한 사람들은 뜻만 따라가며 훅 읽지 않아요. ‘뜻만 통하면 오케이’가 아니죠.
문장에 조사가 알맞게 쓰였는지, 주어와 술어는 호응하는지, 논리가 제대로 전개되는지, 참신한 표현은 어느 부분인지 자기도 모르게 짚어가며 읽어요. 글을 읽을 때 잘 알아차리죠.
그런데 글과 친하지 않거나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논리가 좀 엉성하고 중언부언하며 주어가 빠져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해요. 낱말과 낱말 사이에서 마음을 놓치고 마는 거죠.
몸도 그래요. 몸을 잘 안 쓰던 사람이 요가 동작을 하면, 마음을 놓치기 쉬워요. 이때 만든 동작은 엉성한 문장과 비슷하지요.
골반의 균형이 맞는지, 어깨가 반듯한지, 가슴이 펴졌는지, 발뒤꿈치에 힘이 있는지 등을 예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를 자유롭게 하는 글쓰기, 몸 쓰기는 언제나 옳아요! 다만 어떻게 하면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깊이를 가질 수 있느냐가 좋은 질문이지요
어쨌거나 문장이든 몸이든 영어든, 잘 다루고 싶으면 시간이 쌓여야 해요. 그것도 잘 알아차리는 시간이 말이에요.
잘 알아차리는 시간이 늘면 어디 가서 신묘한 비법을 배우지 않아도 바른 것,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돼요. 그러면 바르고 좋은 것을 스스로도 취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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