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면 우리의 미래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들은 가끔씩 길을 잃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고, 심지어 역주행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항상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향감각을 잃지 않도록 눈은 시대를 직시하고, 귀는 사람들에게 기울이며,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예측해야 합니다.
이렇듯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 혹은 학문을 우리는 흔히 인문학이라 하는데,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것 같습니다.
저는 인문학의 정의를 ‘사람에 대한 이해’라고 내리고 싶습니다.
지식도, 철학도, 역사도, 문화도, 사회도, 과학도, 기술도 모두 인간이라는 주체가 있기 때문에 생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가장 기본적인 물음은 모든 것의 주체인 인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총, 균, 쇠』는 "왜 백인이 세계의 주류가 되었을까?" 하는 원주민의 개인적인 의문에 대한 사회적인 대답을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인이 세계의 주류가 될 수 있던 건 사실은 그저 운 덕분이었다는 『총, 균, 쇠』의 환경결정론은 허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운명 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준엄하게 일깨워줍니다.
인류의 기록이 닿는 최초의 범위는 그리스·로마 시대입니다.
신화 속에서 신의 이름을 빌린 인간의 행적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사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역사 이전의 시대에도 인간은 살았습니다
인간이 남긴 인간의 기록들을 역사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왜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을 미래를 위해 역사를 남기려고 하는 걸까요?
인간은 왜 이미 지나가버려 다시는 오지 않을 과거의 일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이 시대를 살았던 한 철학자는 ‘이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는 ‘이상적인 인간’을 정의 내리는 것보다는 ‘이상적인 국가’를 정의 내리는 게 더 쉽다며, 그 국가와 닮은 인간상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논리 아래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생각을 펼쳐놓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은 이후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큰 뼈대가 됩니다.
신분제와 종교의 체제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거든요.
근대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이 철학자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꽤 유명합니다. 바로 플라톤입니다.
과연 플라톤이 국가에 진심으로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하지만 신의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보다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약속할 필요가 생깁니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사회 시스템 위로 올라온 법은 정의로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이라는 역할의 속성에 맞게 실제로 지켜지는가가 중요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법이란 무엇이며, 과연 그 법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만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법의 근본적인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이정표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입니다.
루소는 『에밀』에서 "인간은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고 선량하기 때문에, 그 본성이 잘 발휘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교육서이지만 민주주의로 발현됩니다. 루소의 평등 사상은 후일 프랑스혁명의 토대가 되고, 민주주의의 기초가 됩니다
이렇게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의 반대편에는 자급자족을 꿈꾸며 혼자서 살아가는 삶을 이상으로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의 평등, 개인의 자유, 이런 전제에 동의한다면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그대로 삶의 단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종교나 사회의 의무에서 벗어나 타인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와 사색의 결과는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와 ‘경쟁’ 때문에 지친 사람들에게 힐링의 마법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런 이상을 월든 숲으로 가서 현실화했습니다.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적어내려 간 『월든』은 시인지 에세이인지 체험담인지 장르가 모호하지만 이 메시지 하나는 확실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깐 멈추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기회를 가져보라 촉구합니다.
완독한 사람은 드물지만 한 번 읽은 사람은 최고의 책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입니다.
『월든』 역시 ‘삶’이 아니라 ‘실험’이라고 작가 스스로도 밝혔습니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자유가 인간에게 큰 부담이 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단체 속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모두 같이 행동하고 같이 생각한다는 것은, 시시각각 부딪히는 여러 상황 속에서 매번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되죠.
집단의 규율에 따르고, 집단의 생각에 동기화되면 안개가 깔린 듯 어슴푸레하던 자신의 인생과 미래가 꽤 뚜렷히 보이기도 합니다.
개인에게 자유를 보장할수록 인간들은 더욱더 자신을 묶는 틀을 갈구했습니다
신과 왕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권위와 가능성을 지금은 돈이 보장해줍니다.
많은 사람이 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돈이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전제가 생각에 깔려 있는 거예요.
현대 사회에 누구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당위성이 있다지만, 실제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뿐입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과연 인류는 원칙과 합의를 돈으로 사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걸까요?
이 모든 것들은 상상 속의 질서입니다. 명확한 실체가 있다기보다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저 약속에 불과한 것들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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