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 te quaesiveris extra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
인간은 그 자신이 별이고,
정직하고 온전한 인간을 빚어내는 영혼은
모든 빛, 모든 영향력,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은 어떤 것이 되었든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다.
우리 행동은
우리의 천사,
선 혹은 악이며
곁을 조용히 걸어가는 우리의 운명적 그림자다.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은밀한 마음속에서 당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진실이 된다고 믿는 것, 이것이 천재(genius)의 행동이다.
당신의 머릿속에 숨은 확신을 밖으로 드러내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한다.
가장 깊숙한 것은 적절한 때가 되면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에게는 음유시인이나 현자들에게서 나오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샘솟는 한 줄기 빛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을 별로 주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천재들이 남긴 모든 작품에서 우리는 스스로 거부해버렸던 생각을 발견한다.
낯설지만, 장엄한 모습으로 그 생각들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전문가는 전문용어를 사용해 더욱 전문가다운 면모를 갖추려 노력한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을 견디면서 힘든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내가 겪고 있는 아픔을 적확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남의 사유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우를 돌아보면,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생각으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무수한 사람들의 언어적 사유에 부단히 접속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주체적으로 재해석해보는 연습도 했다.
작은 실천이지만 진지하게 반복했다.
성공한 사람,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 남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들은 ‘그 사람다움’이 분명하다.
언어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이 언어로 판별하는 것이다
. ‘그 사람다움’은 어디서 드러나는 것일까? 각자의 다름과 차이를 드러내는 방법 역시 여러 가지겠지만, 뭔가 다른 사람은 뭔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그는 바로 자기 생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진부한 언어는 진부한 생각을 낳고, 언어가 틀에 박히면 사고도 틀에 박히기 때문이다.
돋보이는 사람은 똑같은 것을 봐도 색다르게 표현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늘 만나는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관찰해야 한다.
질문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고, 결국 또다시 틀에 박힌 언어만 습관적으로 튀어나올 뿐이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은 언어도 남다르다
낡은 생각을 날조하기보다 익은 생각을 어떻게 하면 색다르게 창조할 수 있을지를 고뇌한다.
언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언어가 없다면 인간은 다르게 생각하는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언제나 세상은 내가 가진 개념적 넓이와 깊이만큼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
‘언어의 한계가 생각의 한계’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뜻이 된다.
언제나 언어가 문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보면 된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을 보면 된다.
성실하게 좋은 재료를 축적해 언어를 디자인해 나가는 사람은 늘 신선하고 단단한 사고를 할 수 있다.
꿀벌은 밀랍으로 집을 짓고 살지만 사람은 개념으로 집을 짓고 산다. 니체
삶의 무대가 바뀌면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바뀐다
사람의 몸에는 그가 경험하면서 배운 언어적 상처가 아로새겨진다.
내가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개념이 내 생각을 결정하고 조종한다.
앎은 상처다. 몰랐던 의미를 깨닫는 순간, 기존의 앎에 생채기가 난다.
앎은 감각과 느낌으로 몸에 직접 전달되기도 하지만, 언어를 매개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전수되기도 한다
세상을 움직이려면 먼저 나 자신을 움직여야 한다. 소크라테스
사람은 자라온 환경과 하는 일에 따라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적 틀이 결정된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거나 성취를 이룬 사람은 언어를 탁월하게 디자인한 사람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삶의 격이 다르다. 잘 설계된 한마디에 촌철살인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경지에 이른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나온 지혜가 어떤 언어의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 - < 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 박용후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