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에게는 임종 전까지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마무리의 모습을 갖느냐에 따라, 남겨진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사별가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비단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말기 환자의 경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구나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의 사별 돌봄은 임종 이후부터가 아닙니다. 호스피스 서비스가 시작되는 시점부터입니다. 더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진실을 통보받는 순간에 환자와 가족들은 이미 ‘예고된 상실의 슬픔’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짧게나마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가 호소하는 다양한 고통 속에는 암성통증에 대한 아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이상의 적극적인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죽음 앞에서의 모든 상황을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들의 변화는 스스로 조절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점차 줄어드는 ‘예고된 상실’ 앞에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이별과 사별은 결코 유쾌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너무 아픈 사별 상실로 자해나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슬픔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별 상실의 슬픔이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사별가족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가족이벤트 시기를 정할 때 "가족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이번 주말 오후"라고 이야기합니다. 환자의 상태가 그때까지 버텨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데, 다른 사람들의 편리와 시간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환자 주위의 많은 이들은 아직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자의 ‘현재’를 보면서 ‘설마 당장 무슨 일이 생기겠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이 시간이 지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요.

멀리 있는 가족보다 ‘지금’을 공유하는 소중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등을 쓸어주는 마사지를 해드린 것도 아니고, 그저 침상 옆에서 환자가 들려주는 드라마 내용에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공유한 것밖에는 없었지만 호스피스 현장에서 꼭 필요한 ‘현재, 여기, 지금’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말기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을 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임종의 순간에 가족들은 말합니다. "오늘 가실 줄 몰랐어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가실 수가 있을까요?"라고 말입니다.

한 달만 더, 한 주만 더, 하루만 더…. 그렇게 살고 싶어하는 마음과 더 잡고 싶어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현재present’는 또 다른 이름의 ‘선물present’입니다.

많은 이들이 어머니를 잃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습니다. 어머니를 상실한 딸들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아주 오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고, 한정된 시간에 안타까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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