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나라가 아니라 아픈 나라였다》는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행태가 부쩍 늘어가는 일본에 대해 품게 되는 의문에 가장 근본적이고 균형 잡힌 관점을 제시한다. 현장 취재와 다양한 현지 언론 보도, 각종 통계 자료 등을 토대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본질과 비밀스런 심층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 책은 단지 나쁜 나라가 아닌 깊이 병든 일본의 환부를 통해 한일 관계는 물론, 집단주의의 폐해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20.12.16---
나는 일본을 나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쁜 나라‘가 아닌 ‘아픈 나라‘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게 될 지, 반대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관점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무라하치부는 마을 전체가 특정 구성원이나 가족을 따돌리는 방식으로 징벌하는 행위를 말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를 제재하기 위한 마을 공동체의 ‘공동 절교’ 행위라고 보통 정의하는데, 한 가족 전체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우메보시와 일본도(梅干と日本刀)》(2000)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펴기도 했다.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와 이별하거나 불이 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만큼은 모든 마을 사람이 슬픔을 공유했다는 해석이다

절연을 하더라도 슬픈 일만은 나누자는 것이 무라하치부다. 이것은 일본의 의리, 인정의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겠지만 이렇게 마음씨 착한 징벌 풍습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우메보시와 일본도》 중에서)

일본 국민이 ‘집단의식’이 강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집단에서 떨어져 나가선 안 된다. 집단에서의 이탈은 곧 사회적 존립 근거를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선택이라는 잠재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지메의 경우 가해자에게 ‘모델’이 있다는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했다거나 다른 곳에서 이지메의 대상이 된 아이가 거꾸로 ‘가해자’가 된다는 것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면모를 함께 가질 수 있다는 관점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일본 사회의 여러 가학적 성향 속에서 아이들이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희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지메는 1980년대에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인식됐고, 해외에도 ‘이지메(苛め)’라는 일본어 단어가 ‘학교에서의 집단적 괴롭힘’이라는 뜻으로 그대로 전해졌지만, 사실 일본은 역사적으로 ‘무라하치부’라는 어두운 전통을 가지고 있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이미 일본 사회에 깃들어 있던 성향이 학교라는 특정 공간에서 또 다른 형태로 발현되기 시작한 현상이 ‘이지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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